종말에 되어질 일들, 종말론(終末論) 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12/23 [15:46]

성도의 죽음의 의미

 

죽음을 곁에서 목도하게 되면 우리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한다. 특별히 가까이 지내던 친구나 친척, 또는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 아무리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도 그 슬픔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대로 고대 이래로 많은 왕들이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누구도 인간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인간은 죽음을 비켜 갈 수 없고,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죽음이 어디에서 왔을까?

 

죽음은 창조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인간은 불사하도록 창조된 존재였는데, 인간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체적 죽음을 부과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성경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죽음이 형벌로써 온 “죄의 값(롬 6:23)”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신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우리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고, 이미 죄책에서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신자들도 반드시 죽어야 하는가?

 

성도들은 정죄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그들에게 형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죽음의 공포스러운 경험을 통과하게 하시는가?

 

신학자들은 죽음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성화를 위해 제정하신 징계의 정점으로 해석한다. 죽음의 관념, 죽음으로 인한 인간들의 이별, 질병과 고난 등으로 말미암은 죽음의 그림자와 상념, 죽음이 가까워짐에 따라 느껴지는 여러 가지 의식 등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신앙의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생각과 실제 죽음을 겪는 일들은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고, 육체적인 욕심들을 억제하게 하며, 세상의 탐욕과 속된 생각들을 저지할 수 있고, 영적인 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분리된 영혼의 상태

 

인간의 육체적 죽음으로 인하여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한 몇 가지 견해들이 있다. 첫 번째는 육체적 죽음 후에 인간의 영혼은 수면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영혼수면설).

 

이 말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부활 때까지 무의식적 수면상태에 있다는 견해이다. 주로 재세례파, 안식일교,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죽음에 대해 영혼이 잠잔다(마 9:24; 행 7:60; 살전 4:13)는 성경의 표현과 죽은 자는 의식하지 못한다는 성경의 구절(시 6:5; 30:9; 115:17; 146:4)들을 들어 영혼 수면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죽은 자들을 잠잔다고 표현하는 것은 죽은 육체와 잠자는 육체의 유사성으로 죽음을 단순히 잠자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 영혼이 수면상태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죽은 자는 현세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없고 현세의 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죽은 자는 의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지 실제 성경을 보면 믿는 자가 사후에 즉시 의식적 생활을 향유한다고 표현하는 내용들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눅 16:19-31; 23:43; 고후 5:8; 빌 1:23; 계 6:9).

 

두 번째는 인간의 죽음 후에 영혼은 멸절된다는 견해이다(멸절설). 이 견해는 악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벌로 불멸성을 빼앗기고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다.

 

이 견해는 성경에 악인은 멸망하리라는 구절을 주장한다(시 52:5). 그러나 이 견해도 멸망을 멸절이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한 것으로 성경에 분명히 명시된 악인의 영혼은 지옥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교리에 반대된다.

 

세 번째 주장은 인간 영혼은 불멸한다는 교리이다(불멸설). 이것은 고대 이래로 내려오는 일반적 개념이다. 사람들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대체로 영혼의 불멸을 인정했다.

 

성경도 분명히 인간 영혼의 불멸을 증거한다(창15:15; 25:8,17; 35:29; 49:33; 민 27:13; 삿 2:10; 전3:20-21; 12:7; 마 10:28; 행 24:15; 히 9:27).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들의 몸들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며 썩는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들은 죽거나 잠자지 않는 불멸의 실존으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32:1).”

 

종말에 되어질 일들 : 사랑과 영혼 (Ghost)

 

아주 오래전 상영되었던 영화 중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밤길을 가다 강도의 습격을 받고 남자는 여자를 지키려다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계속 위험해 처해 있는 것을 알게된 남자의 영혼은 지상에 남아, 홀로 남겨진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여인의 주위를 맴돌며 끝까지 여인을 지켜주고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당시 많은 여자 들은 남자의 이런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들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와는 달리,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 육체와 분리된 인간의 영혼은 지상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의 상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앞의 내용에 이어 죽은 후의 분리된 영혼의 상태에 대해 더 살펴보자.

 

중간 상태

 

개인의 죽음과 일반적 부활사이의 중간기 동안 인간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교회역사에서는 오랫동안 학자들간의 다양한 주장이 있어 왔다.

 

그 중 첫 번째 견해는 로마 카톨릭에 의해 주장되는 연옥교리이다. 이 교리는 죽을 때 완전한 자들의 영혼은 바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마 25:46, 빌 1:23), 완전히 정화되지 못하고 가벼운 죄책의 상태에 있는 자들(대다수의 신자들은 죽을 때 바로 이런 가벼운 죄책의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정화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교리이다.

 

이 정화의 장소가 바로 연옥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영혼의 고통을 받게 되며, 이들이 연옥에 머물러 있는 기간은 개인의 경우에 따라 다르다. 연옥에 거하는 기간은 경건한 가족과 친척과 친구의 기도, 선행, 미사에 의해 단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 개혁가들의 개혁에 불을 붙이고 그들을 일어서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연옥교리였다. 루터는 이 연옥교리를 ‘사탄의 미혹’이라고 비평했다. 칼빈 역시 이 연옥교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오류” “사탄의 치명적 고안”이라고 강력히 반대했다. 〠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교수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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