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원은 정말 신기하다

기이한 힘에 이끌려온 헌신된 선교사들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1/23 [18:42]

 

▲ 호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이 사진은 1881년 멜번대학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졸업할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크리스찬리뷰

 

‘크리스찬리뷰’ 창간을 준비하던 그해, 1989년 10월은 한·호 선교 100주년이었다. 당시 크리스찬타임즈 호주 지사장을 맡고 있던 본지 발행인은 한·호 선교 100주년 특집을 기획하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자료를 찾아 나섰다.

 

그때 호주 최초의 한국 선교사였던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1856. 8. 22-1890. 4. 5) 선교사의 일기 원본을 미첼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일반인에게는 열람을 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기증자인 호주연합교회 총회의 사용 승낙서를 먼저 얻어낸 다음 미첼도서관에 제출하여 사진촬영과 복사를 위한 열람을 할 수 있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호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땅에 발자국을 찍은 학식 있고 열정적인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1889년 10월 2일, 한국 땅에 발을 디딘 뒤 6개월 동안 선교사역을 하다가 병을 얻어 순직, 부산에 묻혔다. 그때 나이 33살이었다. 복음과 함께 한국 땅에 심기 위하여 태어났던 목숨.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을 삼켰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를 열람하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기를 받아든 순간 소름이 돋듯 전율했다. 일기를 읽으면서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깨달음이 충격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데이비스 선교사 이름이 불쑥 내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선교 일정 지도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 중) ©크리스찬리뷰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이런 마음과 눈물을 주시는 걸까?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작업을 하게 하시려고 이런 과정으로 인도하시는 건가?’ 마음이 우우 흔들렸다. 주님이 부르고 계심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데이비스 선교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개신교 선교초기 한국 땅에서 일한 언더우드, 아펜젤러, 닥터 헤론 등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에 대해서는 죄스러울 만큼 둔감했다.(*편집자주: 크리스찬타임즈 1989년 10월 호 취재 단상 중)

 

1990년 1월 호를 창간호로 발행한 크리스찬리뷰는 망설이지 않았다. 사명감을 갖고 한·호 선교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권 발행인과 함께 자료를 찾아 나섰고, 수없이 선교현장을 답사했다. 이후 ‘한국 근·현대 사진전’과 함께 한·호 선교 역사를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이다.

 

▲ 크리스찬리뷰사는 한·호 선교 120주년을 맞아 기념총서로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를 발행했다. ©크리스찬리뷰     

 

이 책은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총서로 한·호 선교 관련내용 가운데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어 명실 공히 발로 뛰어 쓴 ‘한·호 선교 백과사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내 가슴을 뭉클 흔들었던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으로

 

짧지 않은 취재 과정 동안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발자취를 되짚어 따라가며 지극한 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실천’을.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에 대한 소식이 은은한 향기처럼 번져왔다.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하여 세운 병원이며 무료병원이라 했다. 허다한 선교병원 중의 하나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2014년 9월 ‘캄보디아 선교의 밤’ 집회를 위해 헤브론의료원 김우정 원장이 시드니를 방문했다. 이때 ‘헤브론의료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 영혼을 흔들며 울려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만져지는 전율이었다. 사실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이란 이름은 나와 상관이 없었다. 헤브론의료원 원장인 김우정 선교사도 전에 만나 보거나 그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만남의 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뭐지?’ 헤브론의료원이란 단어가 내게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헤브론병원 김우정 선교사와 이철 선교사(왼쪽)가 오마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크리스찬리뷰사는 헤브론병원과 협력선교를 이어나가고 있다. (2014. 9)  ©크리스찬리뷰     

 

“대한민국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고 130여 년 전 조선 땅에 들어온 서양선교사들의 피와 땀이 쏟아진 곳이라는 걸 되새기게 됐습니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 중 4분의 1이 의료선교사였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으며 그들이 한국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줬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들이 하는 일을 따르는 것이며 사랑의 빚을 졌으니 이젠 그 빚을 갚으면서 살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거지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이 말이 미치도록 좋았다. 음성이 퍽 차분하고 예절 바른 김 원장은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에 대해서 소개했다.

 

“헤브론의료원은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하여 세운 무료병원입니다. 새벽 2시 이전부터 몰려와 줄을 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너무 환자가 많아서 제비뽑기를 해서 그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을 정합니다.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환자들을 볼 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앞으로 캄보디아 현지인들을 훈련하고 가르쳐 모든 것을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가방 하나 들고 훌훌 떠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오래전 외국의 선교사들로부터 우리가 받은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크리스찬리뷰 창간 25주년 기념예배에서 캄보디아 선교 파송식을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오랜만에 만나는 자기 비움의 고백. 다른 때 같으면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을 이 말이 또 나를 자극했다. 이때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했던 부산, 경남지방의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취재하면서 느꼈던 감동이 헤브론의료원에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갈 거야. 너무나 그곳에 가고 싶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불타는 확신이 생겼다. 2015년 2월 2일, 드디어 크리스찬리뷰 창간 25주년 기념예배에서 권순형 발행인과 함께 ‘캄보디아 선교’ 파송식을 가진 후 용감하게 캄보디아로 떠났다.

 

이것이 헤브론과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이 시대의 등대 하나

 

김우정 원장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충격을 주는 사역을 펼치는 선교사였다. 그의 일대기를 쓰려고 캄보디아에 세 번이나 갔고, 그를 여섯 차례 만나면서 그의 수고와 아픔이 내일처럼 다가와서 많이 울기도 했다.

 

김우정 원장은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손에 강권적으로 붙들린 사람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그가 그 많은 사역을 하자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나는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강하게 느꼈고 정말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김우정 원장은 1978년 2월 졸업과 함께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81년 4월 제대하고 서울성모병원에서 레지던트 수련의를 거쳐 85년 소아과 전문의가 됐다. 서울 북가좌동 달동네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목표도 정했다.

 

▲ 헤브론의료원을 설립한 소아과 전문의 김우정 원장  ©크리스찬리뷰     

 

“정직한 의사가 되자.”

 

병원은 잘 됐다. 15년간 열심히 일했다. 2000년 경기도 용인 수지 신도시로 병원을 이주했다. 목표도 다시 세웠다.

 

“환자 눈높이에 맞춰 서비스 잘하는 의사가 되자.”

 

평범한 의사로서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다 2004년 설 연휴를 맞아 떠난 캄보디아 단기 의료봉사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 새벽부터 환자들이 밀려드는 헤브론의료원의 현장 풍경((2015년 2월) 현재는 환자 대기실을 건축하여 하룻 밤을 그곳에서 지낼 수 있다. ©크리스찬리뷰     

 

▲ 걷기조차 힘든 환자가 지팡이를 짚고 병원 마당에 들어서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정형외과 전문의 박종후 선교사가 환자의 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김 원장은 당시 허벅지에 큰 종기가 있는 10살 남자아이를 만났다.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병을 오래 키운 상태였다. 열이 펄펄 끓어 맑은 눈망울이 초점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수술도구가 없어 멀리 병원이 있는 곳에 아이를 이송해 치료했다.

 

다행히 아이는 2주 만에 깨끗하게 나았다. 비용이 100달러(12만 원 가량)였는데 우리에겐 적은 돈이 누구에겐 생명이 달려있구나 싶어 오래 기억이 남았다.

 

김 원장은 2005년 12월 31일 폐업 감사예배를 드리고 문을 닫았다. 병원 입구에 “캄보디아 의료선교사로 떠납니다. 그동안 병원을 이용해 주신 환자, 보호자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캄보디아의 현지 클리닉에서 의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본 김 원장은 소량의 약품과 청진기만 챙긴 채 캄보디아로 떠났다. 낯선 나라에 적응할 새도 없이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김 원장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환자를 만나면서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가 단기성 활동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했다. 이러한 고민은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병원설립을 결심하는데 이르렀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캄보디아는 9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은 탓에 사회의 시스템들이 한국과는 많이 달라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다.

 

캄보디아는 경로사상이 강한 나라여서 가족이 전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우선권은 연장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개원 당시 환자들은 대부분은 성인과 노인들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로 인하여 김 원장은 선교병원이어도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체계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김 원장은 1년 4개월 동안 캄보디아 환자들을 돌보며 익힌 현지 상황을 토대로 2007년 9월 소아과 2명, 마취과 1명, 치과 1명의 한국인 의료선교사 4명, 캄보디아 직원 5명과 함께 수도 프놈펜 공항 인근 외곽 지역에 60여 평 남짓의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NGO병원을 설립했다.

 

▲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온 환자들. 헤브론의료원은 매일 아침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맨 위 사진)  ©크리스찬리뷰     

 

캄보디아 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을 딛고 개원된 병원은 차차 지역민과 내원한 환자들에 의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교병원’으로 입소문이 퍼지게 되어 전국에서 모인 환자들이 줄을 잇게 된다. 신앙이 순결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고, 의료 선교사들도 다른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순전한 분들이 싱그러운 희망을 안고 모여들었다. 헤브론은 히브리어로 ‘친구들의 마을’을 의미한다.

 

헤브론의료원은 현재 의사 28명, 간호사 35명, 임상병리사 5명 등을 포함해 1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 11개의 진료과와 심장센터, 안과센터 등 특화된 전문센터를 통해 연간 6만여 명을 진료하고 연간 1천여 건의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으로 발전했다. 2007년 개원 이후 44만 명이 넘는 환자가 이 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만여 명의 환자가 입원 치료로 건강을 회복했다. 1천200여 건의 안과 수술, 1천100여 건의 암 수술, 7천700여 건의 일반 수술이 이뤄졌다. 헤브론의료원은 초기에 저소득 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으로 운영됐지만 병원의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환자 형편에 따라 일부 유료로 진료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의대를 졸업해도 전공의 교육을 받기 어려운 현지 상황을 고려해 2014년 3년제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개설해 16명을 교육했다. 같은 해 캄보디아 왕립대학과 연계한 간호대학도 설립해 지금까지 7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캄보디아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위드 헤브론에서 보내온 소식

 

현재 헤브론의료원은 사단법인 위드헤브론과 함께 일하고 있다. 헤브론의료원이 세워질 때만 하더라도 ‘선교회’라는 단체가 설립되었지만, 임의단체여서 후원자가 보내준 기부금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2013년 공식적으로 사단법인 위드헤브론을 설립하게 되었다.

 

설립 후 다수의 파트너가 보내준 기부금, 현물, 방문 봉사 등 효과적으로 헤브론의료원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2018년 11월 위드헤브론이 헤브론의료원의 기획처를 총괄하게 되면서 체계적인 기획과 합리적인 시스템 구축을 통한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병원 시스템, 예산 및 지출관리, 사업관리 및 운영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 진찰을 받기 위해 하루 전날 밤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온 환자들. ©크리스찬리뷰     

 

▲ 헤브론의료원은 밤 9시부터 환자대기소를 열어 내원하는 환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또한 2019년 지정기부금 단체로 재지정됨으로써 투명하고 체계적인 경영을 통해 헤브론의료원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여러 협력기관에 효과적으로 헤브론의료원 소식과 사업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헤브론의료원 입구는 진료가 마감된 전날 밤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로 북적인다. 이들을 위해 헤브론의료원은 밤 9시부터 환자대기소를 열어 내원하는 환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휴식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빈곤층으로 코로나19는 이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캄보디아 각 지역에서 찾아오는 이들은 소형 승용차 한 대에 10명 이상 탑승하여 교통경찰이 없는 늦은 시간대에 출발하거나, 먼 거리를 도보로 이용하여 진료가 끝난 시간에 도착한다. 무료진료를 받기 위하여 환자대기소에서 머문 후, 다음날 아침에 진료를 받는다.

 

특히 캄보디아 GDP 71%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 의류봉제, 건설 주요 3개 사업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실직자는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빈곤층에게 의료비지출은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국제사회의 의료지원은 미약한 상황이다. 헤브론의료원 역시 의료봉사팀의 방문은 줄어들고 무료 환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헤브론의료원의 운영 또한 큰 난관을 겪고 있다.

 

▲ 캄보디아는 최근에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헤브론의료원 직원들도 코로나에 재감염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그간 후원금과 더불어 일반 환자에게 받는 소액의 진료비를 모아 소외계층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고 수술해왔지만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코로나는 12월말에 들어서면서 다시 기승을 부려 병원 직원들도 코로나에 또 다시 걸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거의 재감염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꾸준히 단기봉사자들과 방문객들이 찾아와 수술을 하고 수술에 필요한 의료기구들을 기증했으며 캄보디아 의사들을 위한 현장실습 컨퍼런스를 열었다.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도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강의가 진행 중이다.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은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며 사람을 길러 세우는 병원’이라는 헤브론의료원의 비전을 공유하며 의료인 양성을 위해 2014년 7월부터 현재까지 캄보디아 왕립대학과 연계하여 정규 4년제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 교육과정이 있는 헤브론 간호대학 수업은 미국과 한국의 교수진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캄보디아는 의료인 양성교육 커리큘럼이 매우 취약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선 유학을 가야 하지만,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은 캄보디아 내에서 국제 커리큘럼으로 직접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 간호학도가 많다고 한다.

 

▲ 2020년 병원장 취임 이후 코로나19로 힘ems 시기를 보냈던 이영돈 전 원장(왼쪽)에게 감사의 화환을 전한 오석규 부장. ©크리스찬리뷰     

 

한편 지난해 12월 30일 헤브론의료원 이취임식이 진행되었다. 병원장이었던 이영돈 원장이 현지 환자진료 및 교육에 집중하고자 사임 의사를 표명하여 배기안 부원장이 새로운 병원장으로, 이치훈 진료부장이 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원목 취임식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오랫동안 헤브론의료원에 원목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보스턴장로교회 원로목사이자 2021년부터 CAP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전덕영 목사가 새로운 원목으로 취임했다.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들

 

김우정 원장은 현재 망막박리 및 전립선암과 싸우고 있다. 그런 불편한 몸으로 헤브론의료원을 찾아 헤브론의료원의 대표 프로그램인 선천성심질환 수술 아동지원사업(CAP)센터에서 지원받고 있는 아동들과 만남을 가졌다.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공부 중인 넴 라코(Nem Lakona), 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우수한 성적을 유지 중인 치어 테비(Chea Tevy), 그리고 KBS 다큐멘터리 ‘어꾼 헤브론’을 통해 소개되었던 제이 콴 유(Jay Kwan You).

 

넴 라크나는 심장 수술 후,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CAP센터를 통해 지속적인관리를 받으며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여 2020년 캄보디아 국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큰 성과를 이루었다.

 

치어 테비는 2016년 심장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테비는 뒤쳐졌던 수업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읽고 쓰는 것이 어려운 크메르어 과목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다. 과학과 수학 성적이 낮았던 테비에게 CAP센터는 보충수업에 필요한 학습비를 추가 지원하였고, 그 결과 30명 중 17등이었던 테비는 8등을 하며 현재까지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테비의 새로운 꿈은 의사.

 

▲ CAP는 헤브론의료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어린이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건강 상태와 교육 상태 등을 점검하는 프로그램이다. ©크리스찬리뷰     

 

제이 콴 유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유치원에 들어갔다.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치원에 걸어 다니지만 이제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최근에는 유치원에서 크메르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알파벳을 쓰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읽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CAP는 심장수술과 시술을 통해 건강한 회복된 아이들을 선별하여 전인적으로 돕는 프로그램이다. 병원으로 찾아오기 힘든 캄보디아의 낙후지역에 찾아가 해주는 치료는 이동진료 및 캄보디아 지역개발을 위해서도 도움을 주고 있다.

 

7년간 총 450여 건의 수술이 진행됐고, 큰 수술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심장 수술팀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캄보디아인들의 친구가 되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헤브론 사람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 열악한 땅, 불편한 환경으로 불러들였을까. 가장 큰 요인이야 신앙심이겠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을 그들은 진정으로 알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애당초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자기 것을 타인에게 주기보다 타인으로부터 받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간혹 헤브론 선교사들같이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

 

▲ 본지 권 발행인은 헤브론병원 24시 사진전을 개최한 이후 병원을 찾아 오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진촬영을 해주는 사진선교에 주력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자기 것을 타인에게 주기를 가장 좋아했던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 또 당신의 육신마저 주셨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목숨. 이 얼마나 지극한 사랑인가! 이것을 깨달았기에 헤브론 선교사들은 안정된 삶의 터전을 버리고 가시밭길 같은 삶을 자청했으리라.

 

아, 병들고 가난한 환자들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지극한 실천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세상을 밝혔다. 이것이 진정 주는 기쁨이며 거룩한 마음이다.

 

진정 성공한 인생이라면 남에게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리라. 축복받은 사람이라면 남에게 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가진 사람이리라.

 

그동안 수많은 낯선 땅을 찾아 길을 떠났었다. 중국으로 일본으로 몽골로 뉴질랜드로 그리고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를 찾아서 부산과 경남지방으로 캄보디아로 선교여행을 떠났었다. 그 선교현장에서 누린 은혜와 진리가 내 '심장'에 있다.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이고 진정한 교회인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됐다.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오는 곳이다. 구제 불능의 사람들이 구제 받는 곳이다.

 

▲ 본지 권 발행인은 헤브론병원 24시 사진전을 개최한 이후 병원을 찾아 오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진촬영을 해주는 사진선교에 주력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헤브론 사람들. 아, 선교여행을 통해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길 권하고 싶다. 헤브론의료원을 방문하여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에베소서 5장 10절 말씀을 시험해볼 수 있다. 그곳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재료로 성경의 말씀을 실험해볼 수 있다. 기자가 경험한 교훈이다.

 

우리는 2월 초 호주맥켄지의료선교회와 크리스찬리뷰가 공동주관하는 ‘캄보디아 제4차 단기선교팀’과 같이 또다시 헤브론의료원으로 떠난다. 권 발행인은 20번째, 기자는 이번이 네 번째다.

 

꿈을 가져본다. 복음으로 변화될 캄보디아 땅에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은혜로 또 만날 수 있기를. 〠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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