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교회를 향한 기억

조향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1/23 [19:30]

 

▲ 폴리갑 기념교회, 서머나(이즈미르)  ©AC     

 

‘다시 복음 확장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도바울의 2차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온 알파쿠르시스대학교 37명의 학술 탐사팀은 찬란한 문화를 안고 있으나 영적으로 어두운 터키의 중심부 이스탄불에서 두 번의 밤을 보내고, 이제 복음 확장의 역사의 현장과 사건들 그 흔적의 유물과 유적이 남아 살아 숨 쉬는 성경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터키의 중심 도시 이스탄불에서 이즈미르(서머나)를 향해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작은 힘으로 충성했으니 (계 2:8-11)

 

칭찬만 받았던 서머나교회가 있는 곳. 이즈미르는 ‘서머나’의 현대 이름으로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 지역의 7개 교회 중 하나다. 인구 300만으로 터키에서 이스탄불, 앙카라 다음으로 세 번째 큰 도시이며, 지금의 모습은 2세기 때 형성된 것으로 인구 20만에서 30만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버스로 이동하여 서머나의 대표적 유적지 아고라 시장으로 향했다. 지금은 거대한 돌덩어리들만이 널려 있지만 2000년 전에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으로 상‧하수로가 남아 있고 당시 성황을 이뤘던 시장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터키의 외진 지방으로 왔으나 유적지와 근처의 현대생활 환경에 별 시간 차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터키를 너무 기대했던 나의 편견 때문일지 모르겠다.

 

▲ 가죽공장 패션쇼, 쿠시다시  ©AC     

 

요한계시록의 서머나교회 터는 지금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이 지역에 사도 요한 이후 2대 교부로 순교한 폴리갑을 기념하는 교회가 서 있다.

 

아쉽게도 현재 공사 중이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내가 86년 동안 주님을 섬겼고 주님을 내게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가 있겠소”라며 화형으로 순교한 폴리갑의 경건한 신앙이 배어 있는 곳이다.

 

해 질 무렵 모슬림들의 기도 소리가 다시 도시를 휘감아오고 칭찬받았던 교회의 터 위에서 ‘나는 이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주님께 드리는 기도가 무거워진다.

 

이즈미르(서머나)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쿠사다시(에베소)라는 해변 도시에 이르렀다. 에게해가 보이는 이곳에서 유럽이 바로 앞에 있다는 기대와 흥분의 밤을 보내고 소아시아의 수도였던 에베소를 향했다.

 

가죽 점포에 들려 입구에 마련된 사과 티 그리고 레드 와인에 마음이 녹아 멋진 남자와 늘씬한 여자들의 런웨이에 꼭꼭 잠가둔 지갑의 안전 기능은 해제되었다. ‘그래, 클레오파트라도 쇼핑을 즐겼다는 에베소에서 나도 한 번 객기를 부려볼까?’

 

▲ 알파크루시스대학교 학술탐사팀, 에베소  ©AC     

 

첫사랑의 기억 (계 2:1-7)

 

에베소는 현재 셀츅이라 불리며, 바울 당시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무역과 교통 정치, 경제의 중심이고 로마의 행정관이 다스렸던 곳이다. 로마의 재판소가 있었다고 하며, 이미 발굴된 고대도시 잔해들만으로도 에베소는 광활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곳이 바로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마무리에 들렸다가 3차 때 찾아와 가장 오랫동안 사역했던 곳이라는 생각에 우리가 걷는 길 위에서 사도 바울과 요한의 발자국을 찾아본다.

 

에베소 유적지에서는 나이키 상표의 원본인 니케아 여인상, 테라스 하우스, 켈수스 도서관,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2만 5천 명을 수용한다는 야외 음악당을 길을 따라 만나게 된다.

 

특히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아데미 신전은 당시 건축물의 규모와 발달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풍요와 다산이 철저히 신앙이 되었던 시대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에베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적이라는 셀수스 도서관은 1천2백여 권의 도서를 소장했다고 하는데, 로마 통치 시대의 유적으로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아퀴라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햇빛과 습기로부터 보존을 위해 이중벽으로 지어졌고 그 전면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 사역을 하였고 예수님께 사랑받던 요한이 뒤를 이었으며(에베소의 아야솔루크 언덕에 사도요한 기념교회가 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거리를 걸었을 텐데, 에베소도 결국 ‘첫 사랑을 잃어 버렸다’는 책망을 받는다.

 

두란노 서원을 중심으로 말씀을 듣고 믿는 이들이 자복하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던 에베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사도바울의 설교가 귀가에 쟁쟁히 들려오는 듯한데…

 

그때 기도하며 크게 울고 바울의 목을 안고 입 맞추었던 장로 리더들 그들의 사랑의 마음과 열정이 그새 식었었나 보다. 첫사랑을 잃은 교회, 훌륭한 리더가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로 세워 짐을 다시 한번 새긴다.

 

뜨뜻미지근한 온천욕 (계 3:14-22)

 

▲ 온천수를 끌어오는 수로 히에라폴리스 ©AC     

 

에베소가 있는 쿠사다시를 떠나 약 2시간을 달려 라오디게아에 이른다. 일곱 교회 중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하셨던 라오디게아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환전과 금융의 부유한 도시이자 주변의 광산에서 금은이 생산되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도시였다고 한다.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라오디게아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아테네, 헤라를 섬기는 자유로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부유한 라오디게아였지만 물이 부족하여 북쪽 7km 지점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에서 뜨거운 온천물을 공급받았고, 물이 유난히 차다는 골로새로부터 찬물을 끌어왔다.

 

특별히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히에라폴리에서 끌어온 온천수는 라오디게아에 도착했을 때 미지근한 물이 되었고 이러한 지역 환경을 빗대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는 비유로 책망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부를 가졌어도 믿음 안에 바로 서지 않을 때 토하여 버리시겠다는 말씀이 울리는 듯하다. 나의 신앙의 온도는 몇 도일까 돌아본다.

 

▲ 사도 빌립 무덤, 히에라폴리스 ©AC     

 

물이 부족한 라오디오게아에 온천물을 공급했다는 파묵칼레(목화의 성)라 불리는 이곳에는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유적지로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골로새서에 한 번 나오는 지명 히에라폴리스(4:13, 히에라볼리)는 유명한 온천으로 천연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데 터키에 있는 23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하나이며, 유네스코 세계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치 눈이 쌓인 것같이 하얀 동산에 석회질이 녹아내려 장관을 이룬 히에라폴리스에서 20대에서 80대까지의 탐사팀 일행은 피곤한 발을 온천물에 담그고 긴 여정을 함께하는 ‘동지애’와 말씀 안에 ‘우리라는 형제애’를 나누며 지는 해 너머로 피곤을 날려 보냈다.

 

골로새교회는 사라졌지만 이곳이 사도 빌립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고고학자들이 이 언덕에서 빌립과 그의 아들의 무덤을 발견하였다.

 

‘여호와 이레!’

 

우리 탐사팀은 빌립 기념교회뿐 아니라 그 무덤까지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모든 일정을 순적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와 믿음의 선조들의 헌신과 희생에 한없는 부끄러움이 지금 우리에게 열려진 값진 구원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큰 숙제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형제를 향한 아름다움 (계 3:7-13)

 

빌리델비아는 서머나-사데-빌리델비아로 연결되는 크몰로스 산맥 아래로 흐르는 헤르무스강 옆 언덕에 자리 잡은 리디아왕국의 한 도시였다. 서머나교회와 더불어 책망받지 않은 교회였던 빌라델비아는 아시아로 가는 무역의 통로였고 헬라권의 경계선 역할을 했다.

 

‘형제의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이름처럼 협력을 잘하는 도시로 알려졌었고, 주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켜 칭찬받았다. 이곳의 현대 지명은 ‘아라쉐하르’이다.

 

▲ 빌라델비아  ©AC     

 

해석하면 붉은 도시 또는 신의 도시란 뜻이다. 투르크인들이 빌라델비아를 점령한 후 이슬람교로 개종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빌라델비아의 만은 끝까지 개종하지 않아 목숨을 저버리면서까지 기독교를 지켜 내는 모습에 감명받은 투르크인들은 “이곳은 진정한 신의 도시”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라는 도시 이름도 이곳 소아시아의 이름을 딴 것이란다. 하나님 나라는 부와 명예나 자연이 아닌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실한 신앙만이 승리함을 보여준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여운이 깊다.〠 <사진= 알파크루시스대학교>

 

조향희|크로스네스트 일본인 크리스찬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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