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에서 울려 퍼지는 복음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2/27 [16:11]

▲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기간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장한 헤브론교회 크마에 주일예배 전경. ©크리스찬리뷰     

 

호주맥켄지의료선교회와 크리스찬리뷰가 공동 주관한 ‘캄보디아 제4차 단기선교팀’이 지난 2월 4일부터 14일까지 헤브론의료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4명의 팀원들이 다양한 사역을 펼쳤다.

 

단기선교팀은 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김신일 목사(J-One Electrical Solutions 대표), 김명동 목사(크리스찬리뷰 편집인), 김승기 집사(열린문교회) 등이 참여했다. - 편집자 주

 

캄보디아는 국민의 95%가 불교 신자여서 땅 끝 가운데 하나이다. 캄보디아의 국토 면적은 남한의 1.8배이고 인구는 1천7백4십만의 인구 중 30세 이하가 절반으로 젊은이 비중이 높은 국가이다. 이유가 있다.

 

폴 포트가 이 나라를 송두리째 망가트린 장본인. 1975년 폴 포트가 정권타도에 성공한 후 중국 모택동 식의 ‘이상적 농경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앞세워 도시인구를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리고 화폐와 종교, 사유재산을 없애고 집단농장을 만드는 등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실행했다.

 

그가 강제노역, 고문, 대학살 등으로 희생시킨 국민의 수는 약 2백만 명에 달한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8백만 명이었으니 국민 1/4 이 사라진 셈이다. 주로 전직 군인, 공무원, 지식인, 부자와 그 가족 등이 대상이었다.

 

당시 안경을 썼다는 것과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엘리트를 포함한 지도층 한 세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1천6백 달러(2021년 기준)로 오늘날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다.

 

길을 떠나다

 

여행은 사람을 사랑하게 해준다. 그 길 위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만남들이 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이런 만남을 통해 사역했으리라.

 

우리 일행도 처음 대면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끈에 매이고 이끌려온 사람들일 뿐이었다.

 

2월 4일 시드니공항에서 오전 6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했던 시간에 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 중 김신일 목사는 한국 방문 중이었기에 2월 2일 한국에서 프놈펜으로 미리 출발해 합류하기로 했다. 오전 9시 5분 싱가포르 항공편에 몸을 싣고 싱가포르를 거쳐 프놈펜 포첸통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다. 장장 9시간 비행기를 탔다.

 

프놈펜 국제공항은 지난번 들렸을 때와 비하면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광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데 예전처럼 불안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세관원 또한 위압적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그러나 엄격했다. 공항에는 이미 이틀 전 미리 와 있었던 김신일 목사와 헤브론교회 삐셋 전도사가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헤브론의료원을 향해 출발했다. 헤브론의료원은 2007년 9월,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해 세웠다. 캄보디아 환자를 위한 무료병원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을 딛고 개원된 병원은 차차 지역민과 내원한 환자들에 의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교병원’으로 입소문이 퍼지게 되어 전국에서 모인 환자들이 줄을 잇게 된다. 헤브론은 히브리어로 ‘친구들의 마을’ ‘연합’이란 뜻을 갖고 있다.

 

헤브론의료원은 현재 의사 28명, 간호사 35명, 임상병리사 5명 등을 포함해 1백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 11개의 진료과와 심장센터, 안과센터 등 특화된 전문센터를 통해 연간 6만여 명을 진료하고 연간 1천여 건의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으로 발전했다.

 

2007년 개원 이후 44만 명이 넘는 환자가 이 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2만여 명이 넘는 환자가 입원치료로 건강을 회복했다. 1천200여 건의 안과 수술, 1천100여 건의 암 수술, 7천700여 건의 일반 수술이 이뤄졌다.

 

헤브론의료원은 초기에 저소득 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으로 운영됐지만 병원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환자 형편에 따라 일부 유료로 진료하고 있다. 2014년 캄보디아 왕립대학과 연계한 간호대학도 설립해 지금까지 7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캄보디아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5층으로 증축된 헤브론의료원 전경.©크리스찬리뷰     

 

▲ 단기선교팀은 물리치료실에서 사용할 마사지 기구 3대를 배영돈 원장(왼쪽)에게 전달했다.©크리스찬리뷰     

 

기자는 빨려 들어가듯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시내 도로는 여전히 좁지만 많이 단장을 끝낸 풍경이다. 곳곳에 새 빌딩들도 세워지고 있다.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 활력이 넘치고 자유스러워 보였다. 놀라운 사실은, 외국인 여행객이 캄보디아 화폐로 환전할 필요 없이 시내 어디에서든 달러를 자유롭게 쓴다는 점이다. 캄보디아는 이른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미국 달러를 자국 영토처럼 쓰는 경제정책)을 실행에 옮긴 대표적 국가다.

 

골목골목을 지나 드디어 헤브론의료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긴 시간 여행으로 잠잠하던 마음이 갑자기 두근거렸다. 옷깃도 마음도 저절로 여며졌다.

 

크마에 주일예배에 참석하다

 

▲ 헤브론교회 크마에 예배 찬양팀.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하는 싸디 씨 ©크리스찬리뷰     

 

▲ 말씀을 전하는 삐쎗 전도사. ©크리스찬리뷰     

 

다음날 크마에 주일예배(현지인 예배)에 참석했다. 9년 전 시작된 크마에 예배는 병원건물 3층에서 예배를 드려오다 정문 입구에 신축된 환자 대기실에서 드린다. 크마에 예배에는 병원 직원들뿐 아니라 입원중인 환자들, 간호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과 동네사람들도 참석하고 있다.

 

이날 예배에는 1백여 명이 모였다. 병원이 있는 지역은 한 눈에 봐도 고단한 삶이 반복될 것 같은 빈민가이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해 가는 것은 분명 기적 같은 일이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사찰뿐이기 때문이다.

 

헤브론의료원 내에 크마에 교회가 세워지자 의료원 측은 현지인 자신들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먼저 지도자들을 세워 가르쳐서 봉사하고 섬기도록 했다. 교회 운영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자립하도록 가르쳤다.

 

찬양하는 목소리는 우렁찼다. 은혜로 다가왔다. 기타를 치며 찬양을 인도하는 싸디(30) 씨는 헤브론의료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반갑기 그지없었다. 처음 그녀를 만난 건 5년 전, 깜뽕스프 지역으로 함께 어린이 사역을 하러 갔을 때였다. 그때 기자에게 한 말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선교사님들이 우리에게 꿈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축복을 받기만 하고 그대로 있을 순 없잖아요. 꿈이 현실이 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분명히 우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한 미소로 찬양을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날 예배에는 다니엘(29)이 사회를, 밋쓰 라이 르앗(30)이 기도를, 삐쎗 전도사(43. Hem Piseth)가 ‘창조하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삐셋 전도사는 예수를 믿기 전 세상적인 야망이 컸던 사람이었다. 그는 금세공 기술자였다. 그러나 금 세공업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노동자로 한국으로 갔다. 제주도로 가서 3년 동안 배를 타며 고기 잡는 일을 했는데 험한 대우를 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 캄보디아로 돌아왔다.

 

그러다 이듬해 다시 한국으로 나가 김포에서 주방기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외국인 근로자교회의 캄보디아인 모임에 참석, 큰 은혜를 경험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삐셋은 현재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 재학 중이다.

 

예배는 다 같이 일어나 ‘좋으신 하나님’ 찬양으로 마쳤다. 우리는 준비해간 인형, 캔디, 문구류 등을 3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했다. 아이 엄마가 ‘어꾼찌란’(캄보디아어로 많이 감사하다는 말)하며 합장을 했다.

 

예배 후 간단한 음식이 곁들어진 친교의 시간도 있었다. 다들 행복한 하나님의 사람 얼굴이었다. 이들에게는 적어도 사역자에게 또 성도들끼리 상처받고 관계가 틀어지는 일은 적을 성 싶었다.

 

헤브론 현지인교회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캄보디아인들의 마음의 안식처이자 사랑을 알게 해주는 둥지이다. 삶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펴주는 곳이기도 했다. 동시에 지역 아이들의 교육기관이 되어 자기 자녀를 보내며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 강단 앞으로 나와 헌금하는 캄보디아 성도들.©크리스찬리뷰     

 

▲ 주일예배를 마친 후 어린이들에게 코알라 인형을 선물하는 단기선교팀의 김승기 집사. 코알라 인형 등의 선물들은 최갑성 장로(시드니영락교회)가 후원했다.  ©크리스찬리뷰     

 

처음 교회가 생겼을 때 눈을 돌리며 냉담했던 사람들이다. 이젠 한 결 같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헤브론가족들을 친구로 삼고, 아, 복음을 듣기 시작했다.

 

기자는 이곳에서 한참 머물렀다. 좀 더 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공급되는 곳에서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다.

 

새벽 2시부터 전국에서 몰려드는 환자들

 

밤 11시경에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도란도란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환자들이 대기실 안에서 모기장을 치고 거적 담요를 깔고 누워 있다. 대기실 밖에도 많은 환자들이 삼삼오오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갓난아이를 안고 온 어린 엄마부터, 주름에 삶의 고단함이 짙게 밴 노인까지 마당에 늘어선 줄이 끝이 없다. 무료다보니 대부분 전날 밤부터 자리 잡는다. 선착순으로 진료받기 때문이다.

 

▲ 진료받기 위해 시골에서 온 환자들은 하루 전날 환자 대기실에서 모기장까지 설치하고 하루 밤을 지샌다. ©크리스찬리뷰     

 

▲ 진료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몰려드는 환자들.©크리스찬리뷰     

 

이들 대부분은 시골 마을에서 새벽 한 시경에 출발하여 새벽 서너 시경에 병원에 도착한다고 한다. 간혹 마을에서 헤브론의료원으로 향하는 차량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많은 사람들이 한 차에 탑승해 새벽시간에 출발한다.

 

정원이 초과된 상태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 교통경찰도 없고 차량 이동이 적은 새벽시간에 출발을 하는 것이다. 새벽에 출발이 어려운 경우에는 헤브론의료원 진료가 끝난 오후 6시에 병원 앞에서 기다린다.

 

헤브론의료원은 이들을 위해 밤 9시부터 환자대기실을 열어 환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해주고 있고, 비를 맞거나 찾아오는 동안 먼 길에 지친 환자를 위해 샤워시설과 화장실도 만들어 환자가 마음 편히 오도록 했다.

 

정문 앞도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경비원은 환자들을 일일이 열 체크를 한 뒤 들여보내주었다. 경직된 표정의 사람들이 눈만 마주치면 합장하며 수줍게 웃는다. 평생 동안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는 환자들도 있었다. 가슴이 저려왔다.

 

▲ 시골 마을 캄퐁짬에서 낡은 승합차를 타고 헤브론병원까지 4시간 30분 동안 달려온 환자들.©크리스찬리뷰     

 

▲ 승합차에 환자들을 싣고 운전하고 온 싼 김 세이 씨. 한국말이 능통한 그는 9년 동안 한국에서 일했다.©크리스찬리뷰     

 

그때 낡은 승합차 한 대가 환자들을 가득 싣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뒤쫓아 뛰어갔다. 싼 김 세이(52) 씨는 능숙한 한국말로 “캄퐁짬에서 출발하여 4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한국말을 잘 하시네요”

 

“한국에서 9년 동안 일을 했어요.”

 

“정원이 몇 명인데 이렇게 많이 사람을 태워도 됩니까?”

 

“정원이 12명인데 18명 태우고 왔습니다. 할 수 없어요. 올 사람은 많고 차량은 부족하고요. 오늘도 많은 사람이 못 왔어요. 교통순경한테 안 걸리려고 새벽에 출발해서 지금 도착한 겁니다.”

 

“언제 돌아가나요?”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모두 태워 가야합니다.”

 

“한국에서 돈 좀 벌어 왔습니까?”

 

“돈 벌어 가지고 와서 집도 사고 이 차도 샀습니다.”

 

“헤브론의료원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한국에서 2014년에 돌아와서 보니까 마을 사람들이 돈도 없고 거리도 멀어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못해요. 그런데 한국 사람이 세운 헤브론병원이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소문이 이 마을 저 마을에 퍼졌어요. 그래서 차를 사가지고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헤브론병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친절하고 잘 치료해주는 병원입니다. 한국사람 최고입니다.”

 

“교회 다녀요?”

 

“다닐 겁니다.”

 

▲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하는 환자들.©크리스찬리뷰     

 

기자가 활짝 웃었더니 그도 웃는다.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웃음이다. 사람을 향해 웃어주는 것, 이보다 더 큰 기도가 있을까.

 

새벽 4시반 경이 되자 대기실에서 잠자던 환자들이 모두들 일어나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줬다. 휠체어에 의지한 할머니도 웃으며 ‘안녕’이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세상에! 헤브론의료원에서 현지인으로부터 한국말을 듣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감동이 몰려왔다. 이것이 헤브론 가족들이 캄보디아에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이었다.〠

 

김명동 본지 편집인

권순형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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