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초 플라잉 닥터 켄욘 웰치

Kenyon St. Vincent Welch (1884-1942) first ‘flying’ doctor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3/27 [15:50]

 

▲ 호주 최초의 플라잉 닥터 켄욘 웰치. ©University of Sydney     

 

호주는 땅이 아주 넓고 사람들은 이 넓은 땅에 띄엄띄엄 흩어져 살고 있다. 사람들이 적게 사는 외딴 마을에는 사회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의료 시설이 전무하다. 의사나 간호사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갑자기 아프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병원에 가야할 응급한 상황이 닥치면 정말 속수무책이다. 왜냐하면 병원이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호주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플라잉 닥터(flying doctor) 서비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들이 헌신해 외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호주 최초로 플라잉 닥터가 되어 호주의 외딴 마을들을 방문한 의사, 켄욘 웰치(Kenyon St Vincent Welch)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928년 어느 날, 호주의 한 의학 잡지에 플라잉 닥터 (Flying Doctor)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플라잉 닥터의 임무는 사고가 나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비행기를 타고 즉각 현장으로 출동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 호주의 외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라잉 닥터. 환자를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또한, 병원이나 의사가 없는 지역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당시 봉급은 1천 파운드였다. 플라잉 닥터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경우에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이 광고는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가족을 떠나 외딴 곳에 가서 근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무려 22명의 의사들이 플라잉 닥터가 되기 위해 지원을 했다. 지원자들 중에서 켄욘 웰치(Kenyon St Vincent Welch) 의사가 호주 최초로 플라잉 닥터가 선정되었다.

 

▲ 콴타스 DH-50A는 1928년 5월 클론커리(Cloncurry)에 기반을 둔 최초의 플라잉 서비스 항공기였다. 켄욘 웰치 의사가 최초로 이 항공기(DH-50A)를 조종했다.©Qantas     

 

그는 자기 집과 가족들을 떠나 플라잉 닥터 센터에서 근무하며,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비행기를 타고 출동했다.

 

1928년 5월 15일은 그가 플라잉 닥터로 첫 번째 비행을 한 날이다. 그는 퀸즐랜드 주의 클론커리(Cloncurry)에서 의료 항공기를 타고 줄리아 크릭(Julia Creek)까지 약 100km를 날아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가 탑승한 비행기는 DH50이라는 소형비행기였는데, 시간당 80마일 미만의 속도로 날 수 있었으며, 비행기 조정사와 4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이 비행기에는 길을 안내하는 자동항법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지도를 펼쳐 놓고 도로나 하천을 보며 위치와 방향을 확인해야 했다.

 

줄리아 크릭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줄리아 크릭 부쉬 양로원(Julia Creek Bush Nursing Home)에는 두 명의 환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들 중 한 명은 자살하기 위해 자신의 목을 칼로 찌른 환자였다. 웰치 의사가 그에게 응급 처치를 해 무사했다.

 

1929년 4월 어느 날, 퀸즐랜드 케이프 요크 반도(Cape York Peninsula)에 위치한 쿨라타 (Koolatah)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워낙 외딴 곳이라 통신 수단이 없었지만, 원주민 사업가가 홍수가 난 지역을 뚫고 무전기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 응급환자의 소식을 전했다. 응급환자는 급성 위염에 걸린 6살 난 어린이였다.

 

▲ 1900년 경 세인트 조셉 칼리지 졸업기념사진. 켄욘 웰치가 뒷줄 맨 왼쪽에 서 있다. ©University of Sydney     

 

당시 비가 내리고 있어서 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웰치 의사는 지체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출동했다. 도착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임시로 활주로를 만들었다.

 

웰치는 무사히 착륙한 다음 어린이 환자와 환자의 어머니를 태우고 다시 본부로 돌아와 어린이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치료해 주었다. 다행이도 어린이 환자는 무사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매번 이렇게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플라잉 닥터 센터에 응급환자 발생 소식이 너무 늦게 전해져 웰치 의사가 도착했을 때 이미 환자가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곧 넓은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무전기가 호주 외딴 지역에 보급되었다. 이 무전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플라잉 닥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 호주 외딴 지역의 응급환자들을 긴급히 운송하고 있는 플라잉 닥터 대원들.     

 

▲ 플라잉 닥터 서비스는 호주 전 지역에 79대의 비행기와 180대의 자동차가 외딴 마을을 방문, 연간 33만여 명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웰치 의사는 새벽에 300km를 비행해 수술하고 본부로 돌아온 날도 있었고, 응급환자를 위해 야간비행을 감행한 날도 있었다. 또한, 활주로가 없는 지역에서는 농장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 착륙하기도 했다.

 

광범위한 호주 북동부 지역을 담당하는 플라잉 닥터로 그가 일하는 동안 2백25명의 환자를 치료했고, 응급 환자들을 위해 50번 비행을 했는데, 그가 비행한 전체 거리는 약 3만 2,000km나 되었다.

 

그의 헌신이 밑거름이 되어 로얄 플라잉 닥터 서비스(­­­­­가 출범되었다. 이 단체를 만든 호주의 항공 의료 서비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플린 목사(Rev. John Flynn)도 웰치 의사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웰치 의사가 플라잉 닥터로 일할 때는 비행기가 1대 뿐이었지만, 지금은 79대의 비행기와 180대의 자동차가 호주의 외딴 마을들을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연간 약 33만 명 정도가 플라잉 닥터가 제공해 주는 의료 서비스의 해택을 받고 있다.

 

월치 의사는 자신의 집과 가족을 떠나 플라잉 닥터 센터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응급 환자들을 위해 비가와도 비행을 감행했고, 야간비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그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의 헌신과 노력과 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며 또한 본 받아야 할 것이다.〠

 

정지수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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