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눈뜨는 젊은이들 ‘어꾼’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3/27 [15:54]

▲ 조봉기 선교사는 헤브론의료원 창립부터 현재까지 15년 이상을 매일 아침 5시 30분부터 유창한 크메르어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환자 대기실에서는 병원 문이 열리기 전 아침 5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예배가 시작된다. 일주일에 네 차례 조봉기 선교사(73.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교목실장)가 크메르어로 말씀을 전하고 직접 피아노를 치며 찬양도 인도한다.

 

대기실에 있는 캄보디아 사람은 어림잡아 2백여 명, 매주 1천 명, 1년이면 5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들이 복음을 듣는 셈이다. 헤브론의료원이 설립된지 15년이 넘었으니 적어도 75만 명은 예수님을 알게 됐다. 전 세계 어느 선교단체가 매일 2백 명에 가까운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환자 대기실 예배 ‘쿵’하면 ‘짝’

 

조 선교사의 막힘이 없는 크메르어 설교, 대기실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아! 그리고 그 열렬한 박수소리. 조 선교사는 모여 있는 환자들과 어찌나 쿵 짝이 잘 맞는지 ‘쿵’하면 ‘짝’한다.

 

“뿌레엉 쓰럴린 네악!”(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뿌레야 예수 끄릿 찌어 뿌레야릭찌어뻗뜨라”(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멘?”

 

“아멘!”

 

“뿌레야 예수 끄릿 반 쏙꿋 너으 처으 치캉 담바이 어똑 너의 엄뻐으 밥 로벗 네악!”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아멘?”

 

“아멘!”

 

“빠이 틍아이 크리오이 뿌레엉 미은 뿌레야쭌 루엇 랑응빈”

 

(3일 후에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영 미은 쯤느으 너으 뿌레야 예수끄릿 따에 모이 디엘 앗 성꾸루어”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멘?”

 

“아멘!”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이러한 장면이 왜 그렇게 감격스럽던지. 이날 김신일 목사와 김승기 집사가 앞으로 나가 열심히 연습한 ‘좋으신 하나님’을 크메르어로 부르자, 세상에!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해면에 물을 빨아들이듯 그렇게 찬양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 조봉기 목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양하는 김신일 목사와 김승기 집사  ©크리스찬리뷰     

 

“쁘레야 뜨롱 러어 나 (좋으신 하나님)

 

쁘레야 뜨롱 러어 나 (좋으신 하나님)

 

쁘레야 뜨롱 러어 나 (참 좋으신)

 

뜨롱 러어 나 덜 크뇸 (나의 하나님)”

 

▲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조봉기 선교사.©크리스찬리뷰     

 

3년 만의 재회

 

열대기후가 사람을 쉽사리 늙게 만든다더니 조 선교사가 꼭 그 모양이다. 어깨가 예전보다 한 뼘쯤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러나 악수를 나누는 오른손은 사뭇 기운찼다.

 

“주로 어떤 설교를 하시나요?”

 

“복음 설교죠. 처음에는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두 번째로 죄의 값은 사망이다. 세 번째로 죄를 가지고 죽으면 지옥이다. 이런 주제로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마태복음 1장21절 말씀을 소개하고 마지막에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소개하면서 따라하라고 합니다.

 

그런 후 같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난 다음에 주일마다 동네 교회에 나가라 얘기하고 요한복음 14장 14절 말씀을 따라하라고 소개하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니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창조부터 해서 구원까지 쭉쭉 나가는 거죠.”

 

조 선교사는 “캄보디아 각 지역에 말씀 전파자로 부름을 받고 나아갈 때 설교의 주제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십자가 구원’으로 했는데 나름대로 참석자들이 은혜가 되었다는 피드백이 있었다”며 “나는 내 일생 마칠 때까지 예수그리스도와 그 죽으신 십자가만 증거 하다가 주님 앞에 서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헤브론이 황금어장

 

▲ 본지와 인터뷰중인 조봉기 선교사가 할짝 웃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매일 똑같은 설교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매일 똑같은 설교를 반복해도 이 사람들은 처음이니까요. 거의 대부분이 처음 오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반복해서 듣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돼요. 그리고 반복해서 듣는 사람도 또 들어야 돼요. 복음이니까요. 그래서 여기가 황금어장입니다.”

 

“어떻게 여기에서 설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병원이 시작되면서 와보니까 환자들의 숫자가 제법 많은 거에요. 그리고 환자들이 일찍 병원에 와서 할 일없이 진료시간을 기다리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또 진료가 끝나도 그냥 돌려보내기도 아쉬움이 있어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제 아내와 일주일에 두 번했는데 하루라도 놓치면 수백 명을 놓치니까 일주일에 네 번으로 늘린 겁니다.”

 

조 선교사의 얼굴은 뭐랄까, 좋아서 죽겠는 그런 얼굴, 아니 새벽잠을 설쳐가며 환자를 만나는 것이 기쁨이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지극한 실천이다.

 

“캄보디아어를 하시는 걸 보니까 현지인 같아요.”

 

“처음에 캄보디아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왕립대학에서 1년 코스 언어를 배웁니다. 나는 거기 한 번도 안 갔어요. 동네 아이들 모아가지고 밤에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중에 한 아이를 뽑아가지고 캄보디아어 선생으로 삼았어요. 이 아이하고 성경 마태복음을 크게 카피를 해가지고 거기다가 발음을 써서 매일 공부했죠. 새벽기도 때는 아이들은 영어로 성경을 쓰고 나는 캄보디아어로 쓰고 그렇게 해서 승리했어요.

 

성경구절을 반복해서 쓰니까 자연적으로 외워지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설교나 강의는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해요.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지혜죠.”

 

“캄보디아 사람들의 성격은 어떠한가요?”

 

“신실한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학교에서 책상에 돈을 놓고 나갔다 돌아오면 돈이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캄보디아 사람들을 그렇게 찾는데요. 성실하니까요.”

 

▲ 조봉기 선교사는 매일 아침 200명 이상의 캄보디아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정말 지독한 신념으로 매일 같은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는 조 선교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선교에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열매지상주의시대’에 조 선교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옆에서 보니 알겠다. 열매 맺는 일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선교사는, 그리스도인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아시고,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열매에 대한 조급증과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당신의 이름은 ‘봉톰’

 

▲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교 전경 ©크리스찬리뷰     

 

캄보디아 사람들은 조봉기 선교사를 ‘봉톰’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에 폴 포트라고 있었잖아요. 그 사람 별명이 봉톰이에요. 봉은 형님이고 통은 큰 형님이란 뜻인데 조직사회에서 두목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 이름이 봉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를 봉톰으로 부르더라고요.”

 

저희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사랑해주는 어른에 대하여 지극하게 존경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이해됐다.

 

조 선교사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8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주총신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1985년 총신신대원을 졸업했다. 미국 가든그로브에서 첫 교회를 개척한 후, 22년간 목회를 하던 중 남미 가이아나로 첫 선교 사역을 가게 된다.

 

아내 조귀흠 선교사(68)와 캄보디아에 온 것은 2005년도. 당시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대학이 개교한지 막 3개월째 되던 해였다. 마침 영어로 강의가 가능했던 조 선교사는 즉시 동참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수가 되었다. 조 선교사는 여기에서 조직신학, 구약학, 히브리어, 설교학 등을 가르쳤다.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대학은 한국 및 미국 개혁주의 장로교 17개 교단이 연합해 일구어낸 합작품이다. 현재 교수는 45명 정도이고, 학생은 230여 명이다. 캠퍼스는 2에이커 정도의 대지 위에 큰 건물 5개동을 갖춘 학교로 성장했다.

 

조 선교사는 6시 30분까지 말씀을 전한 후 성경말씀이 기록된 달력을 나눠준다. 조 목사가 사비로 제작한 전도지로 지금까지 50만 부를 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테니스장으로 직행한다.

 

“보통 몇 시에 일어납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여기에 5시까지는 와야 되니까 그전까지 기도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준비가 안 되면 감당을 못해요. 여기에서 설교가 끝나면 곧 바로 테니스를 치러갑니다. 건강관리도 중요하니까요. 그 후에 아침식사를 합니다.

 

▲ 조봉기 목사의 건강비결은 매일 아침 테니스를 치는 것이다.©크리스찬리뷰     

 

사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테니스 선수였거든요. 우리 테니스 회원이 23명이 되는데 아침에 모여 테니스를 치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제 이름으로 테니스대회를 개최합니다. ‘봉톰 테니스대회’인데 상도 줍니다.”

 

그가 활짝 웃으니 기자도 따라 웃었다.

 

▲ 헤브론의료원 3층에 있는 헤브론 스튜디오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무료로 사진을 촬영해 주고 있는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 헤브론스튜디오에서 촬영한 가족사진.©크리스찬리뷰     

 

조 선교사는 2020년 70세가 되어 은퇴했다. 하지만 그에게 실제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이 모두가 말씀사역이기 때문이다. 조 선교사의 가장 큰 보람이자 자랑이 바로 16년 내내 캄보디아의 젊은 일꾼들을 말씀으로 직접 키워낸 것이다.

 

“앞으로 생이 남은 날 동안 캄보디아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여기서 생을 마치고 싶은데 그때까지 현지 언어로 설교집을 내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말씀이 너무나 약합니다. 현지 언어로 된 성경은 있지만 제대로 된 서적이나 자료가 없습니다. 그러니

 

현지인 사역자들의 설교는 수준이 낮아요. 그리고 이단이 판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착안한 것이 ‘설교 은행’서적입니다. 이 책에는 설교 한편에 캄보디아어, 영어, 한국어 등 세 개의 언어로 출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참 기뻐하실 것이다.

 

‘헤브론 스튜디오’

 

우리는 권순형 발행인이 병원 3층에 마련해놓은 ‘헤브론 스튜디오’를 청소하기로 했다. 권 발행인의 이번 헤브론 선교는 스무 번째이다.

 

▲ 헤브론 스튜디오에서 환자들에게 촬영해 주고사진 밑에는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을 크메르어로 적어서 사진을 전도의 매체로 사용한다.©크리스찬리뷰     

 

청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스튜디오는 그동안 비워놨던 터라 먼지도 쌓이고 냄새도 났다. 노트북과 프린터, 조명, 배경용 블라인드 등의 먼지를 털어내고 닦고, 물건들이 쌓여있는 구석구석을 들어내어 깔끔하게 정리했다.

 

권 발행인은 2017년 5월 ‘헤브론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스튜디오에 필요한 장비는 호주와 서울을 오가며 사비를 털어 일일이 실어온 것들이다. 장비를 갖춘 뒤 ‘헤브론 스튜디오’라고 이름을 짓고 작은 간판도 달았다.

 

스튜디오는 촬영부터 보정, 인화까지 모든 게 무료다. 복음을 전하는 스튜디오답게 A4용지 크기의 사진 하단에는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이 크메르어로 적혀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 말씀은 ‘환자 고객’에게 전하는 축복의 기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환자의 가족들과 직원들 사진도 찍어주고 인화도 해준다. 우리에게는 흔한 사진이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가족 사진 한 장 갖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현지인들은 이 가족 사진을 기념품으로 또 장식으로 벽에 걸어두게 되는데 사진에 성경구절이 있으므로 사진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성경말씀을 접하게 되므로 지속적인 복음 전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쓸고 나니 벌러덩 드러누워서 잠을 자면 딱이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스튜디오에서 김신일 목사가 권 발행인의 나름 조수 역할을 잘해 모든 사진 편집 등등이 업그레이드 됐다.

 

김 목사도 사진작가이며 전기 기술자로 자비량 선교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 선교는 이번이 네 번째이지만 헤브론의료원 사역은 처음이다.

 

상쾌한 마음으로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있는데 이영돈(69. 2대 원장. 외과 전문의) 선교사가 불쑥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이 선교사님 어서 오세요”

 

2020년 헤브론의료원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 선교사는 현지 환자진료와 의료진 교육에 집중하고자 작년에 사임했다. 1979년 서울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가천의대 교수로 길 병원 진료부 원장과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갑상선암 집도 건수가 8천여 건에 달하는 명의다. 2013년에는 갑상선 수술관련 논문이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어 수상했다.

 

이 선교사는 의대생 시절부터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의료봉사활동을 생활해왔다. 길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빈민 의료봉사와 외국인 환자진료는 물론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등 15차례 이상 해외의료 봉사를 실천했다.

 

아내 김혜경(67) 선교사와 헤브론의료원에 온 것은 2017년 12월이다. 김혜경 선교사는 그동안 헤브론의료원 경리회계, 심사, 숙소관리 등을 맡아 헌신해왔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제31회 ‘여의대상 길봉사상’을 수상했다.

 

▲ 헤브론 스튜디오에서 삐셋 전도사와 본지 편집진이 함께 했다.(뒷줄 왼쪽부터 김신일 목사, 권순형 발행인, 김명동 목사) ©크리스찬리뷰     

 

▲ 헤브론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을 병실로 찾아가 전달하는 권 발행인.©크리스찬리뷰     

 

“권 작가님, 우리 병원 직원 신분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주셔야겠습니다. 오래되어서 바꾸려고 그럽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위드헤브론에서 요청서를 카톡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영돈 선교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순형 발행인의 모발폰에서 카톡이 울렸다.

 

“권 작가님 편안하신지요? 사진부탁 요청이 늦었습니다. 가능하신 부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인물 및 활동 중심의 사진이 필요하고 각 항목 당 최소 5장 정도의 사진이 필요합니다.

 

1. 치료 (건강검진센터, 안과 등 진료과)

 

- 담당 선교사와 전문의 일하는 모습

 

- 환자 모습

 

- 입원병동 모습

 

- 약국 활동 모습

 

- X-ray, 병리검사, 검사실, CT 등의 장비로 환자 검진하는 모습

 

2. 장학

 

- 레지던트 강의 모습

 

- 간호대 수업 청취나 실습모습

 

- CAP

 

3. 병원 행정부

 

- 시설자재관리, 원무, 행정실 직원 일하는 모습

 

감사합니다.”

 

사실 전문인 선교사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사진선교사는 기자에게도 낯설었었다. 하지만 그동안 권 발행인의 사진선교를 옆에서 지켜본 기자로서는 카메라와 장비가 귀한 나라에서 사진을 통한 선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실제로 사진 한 장에 연신 ‘어꾼’(감사합니다)이라며 기뻐하는 그들을 보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컴퓨터 사진 작업을 도와주고 있던 김신일 목사도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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