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세요, 그곳에서 성경 말씀을 시험해 보세요

글/김명동 사진/권순형·김신일 | 입력 : 2023/06/26 [12:18]

▲ 말씀을 전하는 헤브론의료원 원목 전덕영 목사.     

 

선교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서 우리가 은혜 받고 왔어요.”

 

그 말에는 진실함이 있다. 기도와 말씀으로 선교를 준비하고 현장에서는 진리와 사랑을 나누다보면 그 은혜에 본인이 더욱 빠져드는 것이다. 마치 가르치면서 더욱 지혜로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자 역시 선교여행에서 누린 은혜와 진리가 내 ‘심장’에 있다.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지, 진정한 교회인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게 됐다.

 

선교여행을 통해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보길 권하고 싶다. 여행지에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늘 시험하여 보라’(엡 5:10)는 말씀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기자가 경험한 교훈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끌려온 사람들

 

오전 11시. 헤브론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병원본관 3층에서 드리는 예배는 2015년 7월 시작됐다. 헤브론의료원에서 헌신하는 선교사 가족들이 늘어나서 한마음으로 한 장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사람들도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

 

▲ 연변과기대 교수로 헌신하다 사역의 부름을 받고 남편 전덕영 목사와 함께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으로 온 김현순 선교사. 한국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온 리타 군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고 있다.     

 

예배당은 소박하기보다는 질박했다. 꾸밈도 장식도 호들갑도 없었으나 주께서 머물고 계신 교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 예수님의 지체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있는 교회.

 

이날 예배는 양성모 장로(에스엠 글로벌 대표이사)가 사회를, 헤브론의료원 원목 전덕영 목사가 로마서 2장 1-3절을 본문으로 ‘판단’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설교를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란 제도와 건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믿음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간단하지만 현대교회들은 쉬이 잊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교회가 화려한 예배당 건축과 갖은 예배 프로그램이 횡행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밖에서도 진정한 진리의 삶을 살게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재 할까 묵상해 본다. 뜻대로 살든지 삶에서 뜻을 발견하든지.

 

그러나 기자는 헤브론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게 되니 참 감사하다. 경건의 모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신학 이론에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말씀을 듣고 실천이다.

 

전덕영 목사는 지난해 12월 헤브론의료원 원목에 취임했다. 2021년부터 헤브론의료원 CAP(Care After Program 선천성심장질환수술 아동지원) 센터장으로 사역하고 있는 그는 미국 보스톤장로교회 원로 목사다. 전 목사는 연세대학교, 연세대학원, 총신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고 보스톤장로교회의 부름을 받고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보스톤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0여 년간 목회해온 전덕영 목사는 2017년 6월 원로목사로,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뉴잉글랜드노회에서는 공로목사로 추대되었다.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30회 총회장을 역임한 전 목사는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 교수로 차세대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선교에 비전이 있었던 전덕영 목사는 은퇴 후에 북방신학교와 농촌지도자 교육에 힘을 쏟았고, 사모 김현순 선교사도 연변과기대 교수로 헌신하다 사역부름을 받고 함께 캄보디아로 왔다.

 

이어 김우정, 이영돈 선교사의 듀엣 찬양, 뉴욕심포니교회 신동기 목사의 트럼펫 연주가 있었다. 감동적인 하모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깊은 여운이 남는다.

 

김우정 원장은 현재 전립선암과 싸우고 있다. 한국에서 치료 중인데 그런 불편한 몸으로 잠시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왔다. 이영돈 선교사도 건강이 좋지 않아 검사를 받기 위해 곧 한국으로 출국한다.

 

“하나님 아버지” 그 두 마디 외에 무슨 말을 입에 담으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서일까. 상한 마음을 만져주고, 뜨거운 감동을 줬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꿈과 인생의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날 때 스스로가 설계했던 꿈과 청사진을 모두 버리고 오직 예수 이름 하나 의지하고 캄보디아로 달려왔다.

 

그 불꽃은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그 기쁨, 당당함, 그리고 순종과 용기... 그 모든 것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고 있는"(고전 4:1) 그 분들의 비밀을 열어보고 싶은 간절함에 사로잡힌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

 

그 비밀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 헤브론교회 주일예배에서 김우정, 이영돈 선교사의 찬양(오른쪽).     

 

그런데 아아, 세상에!

 

다음 날, 병원 앞에는 여전히 새벽부터 캄보디아 전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갓난아이를 안고 온 어린 엄마부터, 주름에 삶의 고단함이 짙게 밴 노인까지 대기소와 마당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았다.

 

“눈이 아파서 왔습니다.”

“배가 아파서 왔습니다.”

“보세요, 걷지를 못합니다.”

 

평생 동안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는 환자들도 있었다. 장애인들도 많았다. 가슴이 저려왔다.

 

문득 이런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세상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면 나를 돌보는 것과 같다’는 이 말씀은 기자의 영혼을 흔들며 울려왔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제대로 된 병원 진료를 받을 돈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헤브론의료원은 정말 생명이었고 희망이었다.

 

대기소에서 조봉기 목사가 인도하는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는 정말 지독한 신념으로 매일 크메르어로 복음을 전한다. 그런데 아아, 세상에! 총총한 눈! 눈! 눈! 그들은 예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삶에 대한 신비를 더 알고자 하여 눈을 빛내고 있었다.

 

▲ 김웅식 선교사가 진찰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온 몸이 불편한 환자를 휠체어 태워 안내하고 있다     

 

일찍이 이렇게 신선한 분위기를 만나본 일이 없었다. 박수를 치고 기도하며 아멘을 소리쳐 외치고 그들은 감동에 인색하지 않았다. 감동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쁜 수확이다. 그들은 수확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반응하며 유쾌하게 구김살 없는 웃음을 자주 웃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조봉기 목사를 친구로 삼았다. 그리고 복음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는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반기는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있다. 한 사역자의 변함없는 열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이제는 유럽인들조차 귀를 막는 그 복음을 말이다.

 

그때 한 명이라도 놓칠 새라 열정적으로 전도지를 나눠주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웅식 선교사였다. 그는 선비의 나라 한국의 자손답게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때였다. 대기소로 손녀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함께 들어왔다.

 

지병 때문인지 그는 몹시 야위었고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의 느린 걸음을 김웅식 선교사가 재빨리 손을 덥석 잡고 보조를 맞춰 걸으며 휠체어로 안내했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장면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이제는 십자가 아래에서조차 점점 보기 힘들어져 버린 우리의 마음이 아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리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인사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그를 맞았다. 몸이 불편한 이들이 어느 계층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 헤브론의료원의 시설 관리, 자재 관리, 차량 관리 등 3개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김웅식 선교사     

 

그 어느 곳보다 사랑이 가득해야 할 작금의 한국교회에서조차 우리 중 누군가 조그만 핸디캡을 가져도 선입견으로 그리 환대받지 못하지 않는가. 다르다는 것을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불편하고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의식들이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다.

 

“날마다 전도지를 나눠주는 겁니까?”

 

“그래요. 대기소에 있는 사람이 어림잡아 200명이 넘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매주 1천여 명, 1년이면 5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들이 복음을 듣는데 이곳이 바로 황금어장이지요. 한국에서는 전도지를 나눠줬을 때 거의 안 받는데 이분들은 다 받아요.”

 

“잠깐 인터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지금은 이 분들을 도와줘야 되거든요. 그러면 나중에 병원 2층사무실로 오세요.”

 

김웅식 선교사는 진지한 표정에다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한편, 대기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의 진료가 시작됐다. 진료는 우선, 외래진료실로 안내되어 환자들의 아픈 부위를 검사한다. 여기서 대부분 투약치료냐, 수술이냐를 결정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뾰족한 해결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환자들은 간단한 상처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제때에 치료를 하지 않아 상처가 크게 곪은 사람들도 많았다. 눈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서 혹은 백내장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기생충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빈곤한 삶속에서 건강을 챙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호사였다.

 

의료진들은 진료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하며 전도한다. 수술을 해야 하는 등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에게는 개별상담을 하고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병이 더 중한 경우에는 집을 일일이 심방해 처한 상황을 살피며 기도하고 말씀을 전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고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병이 든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의사와 환자’로만이 아닌 인격과 인격이 깊이 만나 사랑하고 섬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옥구슬 같은 눈망울을 가진 어린애가 울어댄다. 김승기 집사가 준비해간 코알라 인형을 주자 울음을 딱 그쳤다. 아이 엄마가 ‘어꾼찌란’(캄보디아어로 ‘많이 감사하다’라는 말)하며 합장을 했다.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이러한 장면이 왜 그렇게 감격스럽던지,

 

이때 아이들이 금방 김승기 집사 주위로 몰려들었다. 김 집사는 메고 있던 가방 속에서 널따란 보자기를 꺼내 땅바닥에 펼쳐 깔았다. 그리고는 가방 속에서 미술도구를 주섬주섬 하나씩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미술도구는 김 집사가 시드니에서부터 직접 구입해 준비해온 것들이다.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아이들은 김 집사 팔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눈치 보는 모습도 꽤 귀엽다. 멀리서 수줍게 웃어 보이다 김 집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이내 엄마 품에 안기는 개구쟁이 녀석도 있다.

 

“초콜릿 줄까?”

 

철없는 막둥이 녀석이 잽싸게 과자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하나 더 달라는 얼굴로 기자를 본다. 누나가 얼른 어깨를 잡고 말리는 시늉을 한다.

 

“괜찮아, 하나 더 줄까?”

 

신난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주는 기쁨일까,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부모의 운명을 물려받아야 할 이 조그만 아이들.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며 꿈조차 제대로 꾸지 못하는 아이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까?

 

▲ 전도지를 읽고 있는 환자들.     

 

진실로 예수그리스도의 깊은 위로와 만지심이 있기를 기도했다. 짐을 같이 질 수 있는 의미 있는 고민에 빠진 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행복합니다.

 

김웅식(65)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 본관 2층 그의 사무실로 갔다. 김 선교사는 수줍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아이고, 사무실이 넓어졌습니다. 그전에 왔을 때는 아래층 창고 같은 데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좁고 어두웠었는데요.”

 

“아, 그래요? 지난번 4, 5층을 증축할 때 부속건물도 넓혔습니다. 사실은 시설장비 사무실은 아래층에 있고요, 제가 여기에 와서 일하다보니까 차량관리까지 맡게 되고 또 여기 2층으로 올라온 이유는 자재관리, 재고 관리까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금은 3개 파트를 맡게 됐습니다.”

 

헤브론의료원은 2019년 병원본관 4, 5층을 증축하면서 부속건물도 넓혔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병동과 신장투석실을 기존 진료과목(내과, 일반외과 등 총 12개) 외에 추가하였고, 70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3개의 수술실과 건강검진실, 내시경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웅식 선교사(포항 나무돌교회 장로)가 포스코(POSCO)에서 정년은퇴한 후 아내 류상식(66. 포항 나무돌교회 권사) 선교사와 함께 헤브론의료원에 온 것은 2021년 12월 2일이다. 김 선교사는 시설관리팀의 책임자로 시설관리, 건물, 장비, 수도라인, 에어라인, 가스라인 등을 담당하고 있고, 류 선교사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 아이들과 땅바닥에 앉아 미술지도를 하고 있는 김승기 집사(왼쪽)     

 

“그렇게 병원의 모든 궂은일을 하시면서도 매일 이른 아침부터 환자 대기소로 나가 환자들을 돌보며 전도하시는데 피곤하시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은혜 받고 감사하지요.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인데요, 새벽에 막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잠을 깼어요. 나가보니까 환자분들이 코로나 때문에 실내는 못 들어오고 정문 앞 길가에 쭉 앉았는데 거기에서 조봉기 목사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부터 망설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불편함이 없는지 살피면서 안내해 주었는데 너무 기쁜 거에요.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일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또 하나의 비전으로 받아드렸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생각하고 이분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김 선교사는 “몸이 불편한 분들은 좀 편안한 자리로 안내해 드리고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한 휠체어에 앉게 해드려 편안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면서 “종종 예배 도중에 전화를 하거나 옆 사람하고 큰소리로 얘기를 하면 자제를 시키고 말씀이 끝나면 바로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이분들의 눈을 보게 되는데 눈이 참 선해요. 마음도 착하고요. 그래서인지 전도지를 주면 받아가지고 합장하며 웃어줍니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 전도지를 나눠주면 쳐다보지도 않고 받는다하더라도 읽지도 않고 금방 버려버리잖아요.

 

그리고 헤브론의료원에서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오전 7시 30분에 모든 직원이 큐티를 한 후 업무를 시작하는데 이시간이 저한테 새 힘과 용기를 얻는 시간이지요. 그리고 매일 진료를 와서 아침에 진료순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분들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한테는 너무나 귀한 일들입니다. 그런 후 맡겨진 일을 하고 있는데 참 기쁩니다.”

 

김 선교사는 깊은 곳에 활화산과 같은 정열을 지니고 있었다. 환자들에 대한 눈물겨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다.

 

“현지인 이 친구들이 일에 대한 준비나 방식들이 훈련이 안되어 있었어요. 설비 관리자 4명이 있는데 두서가 없이 일하면서 서로 불평불만들도 많았어요. 어느 땐 자기한테만 힘든 일을 시키는 것 같다면서 불평을 하는 거예요.

 

보니까 그동안 사전 모임도 없이 한국식으로 말로만 작업지시를 하다보니까 무질서하고 서로 소통이 안 되니까 불평들이 터져 나온 것 같더라고요. 이때 느꼈지요. 그래서 저는 할 일들을 모두 모인데서 화이트보드에다가 그날 일을 일일이 써가면서 설명을 해주고 의견을 듣고 일을 하니까 지금은 행복해 하는 거예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요.”

 

김 선교사는 “이곳에 오기 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캄보디아 사람들은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부정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그런데 와서 이 사람들과 생활해보니까 이곳의 문화와 관습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소홀이 여기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확실히 느끼는 것은 살아왔던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곳 문화와 생활방식을 익히면서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때때로 우리 한국식은 무조건 빨리빨리 하며 서두르는 게 많잖아요. 사람을 함부로 대할 때도 많고요. 예를 들어서 신입사원이 오면 우리는 고참사원이 신입사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고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아래 위 따지지 않고 비교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 어떤 것은 우리가 배워야 되겠구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무조건 다그칠 게 아니라 친절하게 대해주고 또 기다려주는 풍토를 만들어 가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김 선교사는 “대기업에서 일했던 노하우로 현지인들에게 일하는 방식, 일의 순서, 기획 등등을 컨설팅하면서 리더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편안하게 노후를 즐길 수 있는 그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장된 미래를 단칼에 끊어버리고 그리스도께서 가리키는 곳을 향해 떠나왔다.

 

“제가 포스코에서 35년 일하면서 신우회에서 활동했고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학생회를 열심히 섬겼는데도 항상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 무렵 직장 신우회를 통해서 아내와 함께 해외단기봉사를 다녔는데 자연스럽게 선교사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된 거죠.

 

가난한 나라에 가서 내가 가진 기술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복음과 함께 꿈을 심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지요. 우리 아이들이 잘 자라고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되지 않느냐, 그런 마음이 생기면서 은퇴하고 나서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지요. 그런 후 어느 선교사님을 만나 협력선교를 하게 되면서 미얀마로 탐방을 갔었어요. 그런데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이들의 꿈은 미얀마 선교를 다녀오면서 더욱 구체화됐고 선교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왜 캄보디아일까.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선교사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여 5개월간 선교사 집중 훈련을 받았어요. 합숙훈련인데요, 선교사의 삶, 그리고 공동체의 삶 등등 영적인 훈련을 받고 난 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역지 두 곳에서 요청이 왔어요. 그중 한 곳이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이예요.

 

사실 2018년 저는 캄보디아를 방문하면서 헤브론의료원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헤브론 가족들의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 여기서 섬기면 행복하겠다, 그런 마음의 감동을 받았어요. 예배를 드린 후 일을 시작하는 모습, 크마에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뜨거운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지요.”

 

▲ 김웅식 선교사(왼쪽)가 헤브론의료원의 크고 작은 시설들을 괸리하는 시설부 현지 직원들과 함께했다.     

 

김 선교사는 어릴 때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을 만난 것은 군대에서였다.

 

“어릴 때 누나가 교회를 다니면서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교회가 참 좋았어요. 그런데 누나가 결혼하면서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논산훈련소 연무대교회에서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세례를 받았지요. 그런 후 부대에 배치되고 마침 조그만 교회가 부대 안에 있었는데 군종병과 함께 부대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섬기게 됐어요.”

 

그의 꿈은 현지인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자동차 정비라든지 오토바이 수리, 용접기술이라든지 또 기계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기술 등등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서 경제적으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크리스찬 가정을 이루게 하여 이곳저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 하시는 방향으로 묵묵히 최선을 다할 겁니다.”

 

김 선교사는 “이곳의 주인은 캄보디아 사람이다. 그들을 존중하면서 섬겨야 한다.”며 “우리 헤브론이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현지인 크리스찬 일꾼들을 잘 길러내서 이분들에게 이 병원을 이양하는 것이다.

 

▲ 대기업에서 일했던 노하우로 현지인들에게 일하는 방식, 일의 순서, 기획 등등을 컨설팅 하면서 리더를 키우고 있는 김웅식 선교사.(가운데)     

 

이 분들이 존중을 받아야 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잘 섬기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이 말 끝에 그는 한마디를 보탰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은 진하고 향기로웠다. 망고나무에도 망고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망고나무들은 병원 건물을 지을 때 심은 망고나무들이어서인지 헤브론 가족들이 무척 애착을 갖는 듯 했다.

 

김우정 원장은 나무를 가리키며 “올해도 망고가 많이 달렸다”며 “캄보디아 과일은 개량된 적이 없는 토종에 유기농으로 정말 맛있습니다. 식사 때 후식으로 맛을 보라”고 말했다.

 

연합과 협력으로 심겨진 헤브론의료원이 꼭 망고나무와 닮았다. 눈물로 씨를 심으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씀대로 초창기에 몇 선교사가 헤브론이라는 씨앗을 뿌렸더니 이제는 그 헤브론이 어느덧 자라서 캄보디아인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계속>

 

글/김명동 | 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 |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사진/김신일 | 크리스찬리뷰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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