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후손이 함께 잘되는 복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6/26 [12:27]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12:1-2)

 

오늘 성구는 ‘자녀가 강성하게 잘 되는 복을 소개한다’고 해석할 소지가 있다. 설교자에게 이런 유혹은 늘 있다. 왠지 잘 먹힐 것 같다. 자녀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DNA가 여타 민족보다 깊이 뿌리 박힌 한국인, 특히 자녀 잘되는 일이라 하면 못 할 일도 없고, 못 갈 길도 없는 듯 보이는 헌신적인 부모에게 딱 들어맞는 현실성과 실용성을 지녔다. 그래서 잠시 멈춰 갈등한다.

 

이때 마주치는 과제가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이다. 제목은 방향을 바꾸는 바로미터다. 이런 합리화가 가능하다. “나는 학자가 아니다. 단지 학도일 뿐이다. 만약 학자라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비판적이어야 하지만, 학도이니 적당히 비판적이면 된다.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보이나, 강단에 서면 사람이 보이는 설교자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 어려운 의인이 아닌, 사람 앞에서 잘될 후손에 초점을 맞춰, ‘후손이 잘되는 복의 비결’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의인과 후손이 함께 잘되는 복’으로 수정한다. 부담이 훨씬 덜하다. 적어도 명백히 존재하는 진리에 눈감고 빙산의 일각처럼 보이는 흐릿한 사실을 확실히 말하는 편에 서지는 않은 듯하다. 자~이제 내용 정리에 들어가자.

 

오늘 성구에 복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의인과 의인의 후손에게 각각 적용됐다. 여호와께 복을 받은 의인의 후손들 역시 복되다.

 

누가 의인인가? 세 가지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둘째,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 셋째, 정직한 자. 시편 121편을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여기에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5절), “의인”(6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한 자”(7절),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는 자(9절)가 추가된다. 복된 의인이 사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음으로, 어떤 복이 언급됐는가? “부와 재물”(3절),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음”(3절),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남”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과 “영원히 기억”됨(6절),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7절),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게 됨”(8절)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림”(9절). 복된 의인이 누리는 복이다.

 

복된 존재가 있고, 복의 내용이 있다. 복된 존재는 되는 것이고, 복된 내용은 뒤따라오는 것이다. 존재와 내용 모두를 주재하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4절),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 편에 서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재권을 따라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부분은 복된 기준에 합당한 자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책임 있게 우리 삶을 사는 일이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며, 정직하게…우리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는가? 우리 이런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이것이 내 자녀가 “강성”(2절)하게 잘되는 방법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우선권을 여기에 두라.

 

내가 잘되어야 후손이 잘된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복이 있는 사람의 후손 또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고 명료하게 말씀한다. 후손은 직계 2세 만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자손들이다. 혹 지금 당장 내 자식에게 희망이 안 보이더라도 길게 보고,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잘되는 집안은 마지막 결과와 최후 승리를 굳게 믿는다. 복이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과 별도로, 복된 의인과 후손을 대적한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진다.”(10절) 하나님의 심판하는 공의는 악인에게 불처럼 진노로 내리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정의는 의인에게 불꽃처럼 은혜로 쏟아져 내린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명령을 마지못해 최소한으로 준수하는 율법적 접근을 버리자.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삶을 위한 명령으로 받아 크게 즐거워하며 기꺼이 순종하자. 행보가 거침없으니, 그 앞에 무슨 거침이 있겠는가? 초대 교부들이 즐겨 이 시편을 애송하며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었다고 하니,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목숨 걸고 순종의 한 길을 가는 용기 얻기를 소원한다.〠

 

서을식 | 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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