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산다. ‘노력하면 된다’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런 신성시 하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노력하는 자세를 우리 안에 스스로 세팅해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부지런하고 노력을 많이 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우리 대한민국은 세상에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룬 것도 사실이다.
노력? 우리 삶을 발전시켜 주는 정말 가치 있는 자세이다.
예전에 나는 호주에 처음 와서 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아이들 발표회 한다고 갔다가 솔직히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이게 무슨 발표회인지?’ 준비하느라 노력한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공허한 박수를 치다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것을 보는 호주 학부모들은 열심히 박수를 쳐주며 편안하게 앉아서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때 그렇게 어색했던 모습이 그후로는 오히려 무엇을 준비하느라 아이들에게 크게 스트레스 주지 않는 이곳 방식이 더 좋다고까지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노력. 특히 한국사회는 노력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퇴보하기에 노력을 안 할 수가 없다. 노력이 인생에 참 중요하지만, 그런데 이런 노력에 대한 강조와 더 나아가 다그침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스트레스 제일 많이 받는 나라로 만든 것 같다.
세계 술 소비량에서 한국이 1996년에 2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조금 감소 추세이기는 하지만 음주 소비량이 제일 많은 러시아권 나라들이 추운 날씨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과 비교하면 겨울 빼고 그렇게 춥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술 소비량이 많은 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의 하나로 한국 나름의 음주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냥 술도 아니라 두 가지 술을 섞어 먹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 한국이 압도적인 1위를 하고 있는 것이 자살률이다. 10만 명당 24.1명으로, 옆 나라 일본의 14.6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오히려 예전보다 경제적으로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예전에 못 살았을 때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다. 국민들이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공항에 내려 느끼는 것은 사람들의 얼굴이 ‘뚱’해 있는 것을 본다. 우리가 사는 호주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일에도 잘 웃고 땡큐도 잘하고 농담도 잘 한다.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한국보다는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
얼마 전 차를 타고 나갔다가 차의 창문을 내렸는데 갑자기 창문이 올라오지 않았다. 요새 비도 자주 와서 창문이 열린 채로 운행 할 수가 없어 급하게 정비공장을 찾았는데 정비사는 자신이 지금 바빠서 고쳐줄 수 없고, 호주에서 항상 기다려야 하는 예약(booking)을 하라는 것이었다.
며칠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 혹시 주변에 다른 정비소를 알려 줄 수 있느냐고 하자, 기름이 묻어 있던 손을 휴지에 닦으면서 종이와 펜을 가져와서 그림까지 그려가며 다른 가게 위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알려 준 그 정비소에 갔다가 정말 친절한 정비사를 만나서 긴급 조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손님이 어느 가게에 갔는데 그 물건이 그 가게에 없으면 친절하게 주변의 다른 가게를 안내해 주는 이곳 모습이 익숙해진 것은 호주에 와서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한국 같으면 방문한 가게에 물건이 없다고 다른 가게 알려달라고 물어 보았다가는, (분명 모를 수가 없는 것을) 모른다거나 알아서 가라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들이 많고 그런 경험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가게와의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다른 가게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리라.
한국은 모든 면에 경쟁이 치열하고 어렸을 때부터 노력을 가르쳤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경도 사람의 노력과 열심을 강조하며 노력하는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하고, 노력 이전에 있는 그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이란, 바로 ‘은혜’(grace) 이다. 노력 이전에 이미 은혜가 있었다.
누군가 열심히 일한다. 그러면서 거기서 오는 열매를 자신의 성취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팅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의 은혜가 있었다. 잘 돌아가는 일터가 있었고 협력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건 은혜다.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한다. 물론 가상한 일이지만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고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거기에 대부분의 누군가에게는 학교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우는 부모의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헌신이 있었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그렇게 해 주신 은혜다.
오히려 이런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거나 헛수고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력만 하고 은혜를 모르면 부모에게도 ‘부모님이 내게 해 준 것이 뭐냐?’고 따지기도 하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이다.
농부가 밭에서 노력하여 일해서 열매를 얻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땅이 있었고 햇빛이 있었고 비도 있었다. 이것들이 없다면 농부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 안되는 어찌 보면 그 노력에 의미를 주고 열매를 주는, 노력보다 더 큰 은혜라는 것이 있다. 그 은혜 안에 노력은 한 부분인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아지고 또 실질적으로 관리하면서 한국 사람의 평균 수명이 2020-21년 기준 일본 다음으로 세계 2위라는 뉴스를 보았는데 물론 건강관리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크게 보면 작은 우주라고 불리는 우리의 몸 자체가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은 조물주 되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은혜를 모르고 자기 노력만으로 해내려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자기 스스로 했다고 여기며 감사할 줄도 모르고 당연히 여기는 것에서 나아가 교만해지기까지 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행복하자고 했던 노력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전 우리나라가 6.25전쟁 이후 많은 것이 파괴되어 못 살 때 새마을운동의 구호가 ‘잘 살아보세’였다. 그 덕분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러나 거기서 오게 된, 사람보다는 물질이, 방법보다는 결과가 우선시되는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제는 ‘잘사는 것’에서 나아가 ‘바르게 사는 것’으로의 삶의 무게중심의 전환이 필요한 것처럼 물론 노력은 해야 하지만, 노력중심에서 은혜중심으로의 전환이 있어야 하겠다. 그 은혜 중심의 삶이 될 때 노력을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아닌 평안으로, 당연함이 아닌 감사로 교만함이 아닌 겸손으로 자기중심이 아닌 모두를 위한 열매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크리스찬이라면 노력 이전에 그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과 그 노력에 대한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고, 그럴 때 우리의 노력이 의미 있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원영훈|케언즈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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