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협력선교의 모델 ‘헤브론’

“쉽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시는 길”

글/김명동 사진/권순형·김신일 | 입력 : 2023/07/24 [15:00]

▲ 헤브론의료원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레지던트들.©크리스찬리뷰     

 

한국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호리스 G 언더우드(1859-1916) 선교사는 장로교 외에도 감리교회 개혁교회 등 교파를 초월한 협력을 우선시했다. 그는 성경번역위원회를 이끌고 대한기독교서회를 설립했으며 기독교청년회(YMCA) 서울지부를 조직하는 등 연합사업에 헌신했다.

 

특히 초교파로 공동 교육기관을 모색했는데 그중 조선기독교대학(현 연세대학교)은 4개의 서로 다른 선교회가 협력한 사업이었다.

 

연합과 협력에 앞장섰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현재 헤브론의료원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헤브론의료원은 시작 초기에 몇 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시작했다. 이러한 연합의 배경은 지속적으로 선교사들의 연합과 협력으로 이어졌으며 의료선교사들의 협력뿐만 아니라 행정과 의료지원 영역에서 선교사들의 협력, 단기봉사 팀들과의 협력, 후원교회와 후원자들과의 협력, 한국과 미국과 캐나다, 대양주의 의료선교협의회와의 협력, 한국의 여러 병원들과의 협력, 캄보디아 정부 보건부와의 협력, 캄보디아의 한인선교사회와의 협력, 서구 NGO단체들과의 협력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어 왔다.

 

김우정 원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혼자 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기를 원하시고 사람의 손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참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며 “특별히 말씀(엡 2:22)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과 손을 연결해서 우리가 참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협력하고 연합해서 주님이 시키신 일들을 해나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과 협력은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시는 길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야 할 중요한 방향이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교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의료선교사역을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개인 의료선교사만의 역량으로는 부족하며 필수적으로 팀 사역 또는 협력사역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탕 선교사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배기안 선교사(67. 헤브론의료원 3대 원장. 정신과 전문의)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엇인가 봉지에서 꺼내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장님, 무엇을 나눠주고 계세요?”

“네, 사탕입니다.”

“사탕이라고요?”

 

“네,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밤새도록 와서 지금 대기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침을 대충 싸오는 환자들도 있지만 굶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아침이 되면 보통 병원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밥을 사먹기도 하는데 2천 리알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인데 자기 한 사람 같으면 사먹는데 어떤 경우에 가족을 데리고 올 경우 사먹기가 어려워요.

 

눈물이 찡해요. 사탕이 그래도 칼로리 좀 있지 않습니까? 크리스마스 때나 부활절 같은 경우에는 특별히 초코바도 주는데 그렇게 행복해 할 수 없습니다.”

 

배기안 원장은 사탕을 나눠주는 큰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은 사탕을 나눠주면서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제가 사탕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환자들에게 나눌 수 있겠다 그 마음부터 시작했고 그래서 환자들에게 한 100여 명 나눠주고 남는 사탕 가지고 우리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줍니다.”

 

지난해 12월 헤브론의료원 3대 원장으로 취임한 배기안 원장은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접대와 환자들의 진료, 상담, 큐티 인도 등으로 쉴 새 없이 복도를 오가며 그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 신앙을 전해주고 있었다.

 

배기안 원장은 “이곳 의료 현실들, 시스템이나 장비, 인적자원들이 부족하다보니까 손을 쓸 수없는 환자들이 너무 많다”며 “그런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많이 의기소침이 되고 내내 마음이 무겁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정신분열증 환자도 많지만 알코올이라든지 마약중독자도 있는데 그런 환자들은 입원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치료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보람도 많다.

 

▲ 크마에예배에 참석한 헤브론의료원 제3대 원장 배기안 선교사.©크리스찬리뷰   

 

“25세 캄보디아 남자환자인데요. 조현병환자입니다. 죽고 싶다고 소리치며 난리를 치니까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 한국에서 정신과 의사가 왔는데 데려가 보라고 해서 왔대요. 약을 처방해서 준 후 그 환자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한 적이 없어요.

 

이 환자가 잘 치료되어 헤브론의료원이 좋은 병원으로 소문이 나서 캄보디아에 있는 환자들이 찾아오게 해달라고요. 정신병 환자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 후에 이 환자가 다시 찾아왔어요. 보니까 죽을상이 아니에요. 아, 하나님이 도와주셨구나, 그래서 상태를 물어봤어요. 환청도 안 들리고 좋아졌대요. 그런 후 한 달이 지나서 만났는데 그때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복음을 전하니까 자기는 불교 신자라 못 믿겠다고 그래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복음은 내가 전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요.

 

18세 고등학교 남학생인데 마약중독자입니다. 2년 동안 마약을 해왔다는데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는 캄보디아 아주머니의 아들입니다. 보통 마약중독자의 치료기간이 최소 3개월인데 한 달이 됐는데 스스로 마약을 끊었다는 겁니다.

 

▲ 정신과 전문의인 배기안 원장이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실제로 4개월 만에 완치가 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이런 것들이 선교사의 행복이지요.”

 

배기안 원장이 맑은 샘 광천교회의 파송으로 헤브론의료원에 온 것은 2018년 8월이다.

 

“젊은 시절엔 북한 선교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지도를 계속 보여주셨거든요. 하나님이 나보고 평양에 가라는 거구나. 평양에는 정신과가 없을 테니까, 그래 기회가 되면 평양으로 가서 환자들을 돌봐야겠다,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또 어려운 분들을 위한 의료봉사의 꿈도 가지고 있었고요. 그걸 까먹고 지내다가 나이 들어 의료선교대회에 참석했어요. 그때 하나님은 옛날에 기도했던 것을 생각나게 해주시면서 선교에 대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배 원장은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만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선교의 길을 이야기했고 아내 엄희숙 선교사(66)도 기꺼이 순종했다.

 

왜 헤브론일까?

 

“기도하면서 사역할 곳을 찾았어요. 아무래도 정신과전문의다 보니까 종합병원을 찾게 됐어요. 없더라고요. 그런데 한 매체를 통해 헤브론병원을 알고 난 후 김우정 원장님을 만났죠. 김 원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결정하기 전에 본인이 여기에 있을 만한 곳인지, 적성에 맞는지를 부부가 함께 와서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요. 그렇게 해서 한 달 정도 헤브론의료원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고민할 필요 없이 결정을 했습니다.”

 

배 원장은 꿈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대학교 때 길을 가다가 넘어졌어요. 40일이 넘도록 의식을 잃어버렸었어요. 공사장이었는데 나무토막을 밟았는데 2m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 겁니다. 뇌를 다쳤는데 그 당시에는 수술하면 위험하다고 해서 수술도 못하고 거의 1년 동안을 바보처럼 살았죠.

 

다친 후에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욕을 해대고 아무에나 대들고 발작도 하고요. 그러니까 정신 질환자가 되어버렸죠.

 

▲ 헤브론교회 주일예배에서 특별찬양하는 배기안 선교사 부부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어느 날 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흰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대화를 하게 됐어요. ‘너는 죄인이다’ 평상시 같으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그게 다 기억이 되는 거예요.”

 

그때 이후로 신기하리만치 몸 상태가 점차 호전 되었다.

 

“마음이 편해지고 기억력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서툴지만 말도 하게 되고요.”

 

자신이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십자가의 형틀에 매달렸다는 예수님의 삶이 떠올랐다.

 

“지금도 사진을 찍어보면 뒷부분에 죽은 세포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사실은 전 교만한 사람이었어요. 대학교수를 할 거라고 꿈을 갖고 있었는데 인턴 레지던트 한 것만 해도 기적이지요. 이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없었겠죠.

 

이일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해주셨어요. 저에게 겸손을 알게 해준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잘 감당해야죠.”

 

시절에 따라 우로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리라고, 그는 돌이켜 생각한다. 지금의 자리 역시 세월의 풍상을 두루 겪어 모난 부분이 깎인 후에야 허락하신 사역이다. 의욕과 혈기만으로 감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선교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배 원장은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교회를 나가면서 예수님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저 가깝게 지내던 친구를 따라 교회구경이나 한번 해보자고 나간 거지요. 그런데 처음 가는 교회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푸근했어요. 내내 평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간 이후 그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변했다.

 

배기안 원장은 “환자 치료도 하지만 영혼구원도 중요한 일이다”며 “자연스럽게 말씀을 전하며 전도를 한다.”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마을 순회도 하면서 상황을 살펴가며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고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병이든 사람도 많아요.”

 

배 원장은 “하루하루가 은혜다”며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합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연합과 협력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헤브론의료원입니다.”

 

페인트 선교사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은 더위다. 그런데 아랑곳 하지 않고 병원외벽 페인트칠에 몰두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인환 집사(63. 서울 현대교회 안수집사)다.

 

“아니, 집사님 이 땡볕에 괜찮습니까?”

 

▲ 선교사 아파트에서 페인트 작업중인 조인환 집사 ©크리스찬리뷰     

 

“덥긴 덥네요.”

 

햇볕에 그을린 조 집사의 피부는 이미 붉게 변해있었다.

 

"약방에 가셔서 치료해야겠는데요?”

 

“쓰라리긴 하네요. 괜찮아요.”

 

“괜찮긴요. 많이 탔는데요. 저기 알로에가 있네요. 따서 바르세요.”

 

조 집사의 얼굴에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렇게 봉사하면 참 보람이 있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페인트칠 후 달라진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봉사를 실천하는 것은 조 집사의 큰 에너지 중 하나다. 그래서 바쁜 일정에도 매년 헤브론의료원을 찾는다고 했다. 그에게 자원봉사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 캐나다에서 페인트 사업으로 성공한 조인환 집사는 매년 헤브론의료원을 찾아와 한 달여 동안 머물며 페인트 칠은물론 건물 시설 관리를 위해 헌신한다.©크리스찬리뷰     

 

“하나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 짤막한 호소가 12년 전 조인환 집사의 가슴을 두드렸다. 하나님의 터치였다.

 

“캐나다 밴쿠버 한인장로교회에서 김우정 선교사님의 선교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어서 세우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세우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 손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셨는데 우리들을 서로 연결시키셔서 협력하게 하시고 연합하게 하셔서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나라는 지어져가고 확장되어간다.

 

우리는 모두 그 하나님 나라 확장에 참여하고 일하고 있는 주님의 일꾼이다’ 여운이 남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창 바쁘게 페인트기술자로 사업을 하던 그는 돌연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린 곳이 헤브론의료원이다.

 

“곧바로 보따리를 싸가지고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캐나다에서 캄보디아로요?”

 

“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하나님 일이니까요.”

조 집사는 60이 훌쩍 넘긴 노인이건만 하나님의 일꾼으로 계속 함께 해온 까닭인지 아기처럼 수줍고 조심스럽기만 한 너무 조용한 사람이었다.

 

“처음 이곳에 와보니까 할 일이 많더라고요. 유리창 선팅, 간단한 가구 제작, 책장 수선, 페인트칠 등등 제 손길이 좀 갔었죠. 그런 후 매년 왔는데 지난 3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올 수가 없었어요.”

 

조인환 집사는 캐나다에서 성공한 이민사업가였다. 2003년 캐나다 밴쿠버로 건너갔던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한 그는 페인트 기술로 개인사업체를 차리는 등 비교적 빠르게 이민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다 커서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60이 넘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래도 태어난 고향이 좋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도 페인트 기술자로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이곳에 오면 고향처럼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다고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가 처음 헤브론의료원을 섬기면서 마음에 담은 말씀이다.

 

“이 말씀처럼 헤브론의료원에 들어맞는 구절이 또 있을까요. 헤브론의료원의 핵심 사역은 분명 의료입니다. 캄보디아 사람을 치료해주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헌신하는 협력 선교사가 총무, 인사, 대외협력, 시설관리, 주방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교단과 교회, 직분, 직업, 나이도 다르지만 목적은 같아요. 캄보디아 복음화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 그대로 이름도 빛도 없이 섬깁니다.”

 

▲ 헤브론의료원 김우정 이사장 (초대 원장) ©크리스찬리뷰     

 

“보통 이곳에 오시면 얼마나 머무시나요?”

 

“한 달 정도지요. 힘은 들지만 마치고 난 뒤 얻는 보람과 감동이 큽니다. 체력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헤브론의료원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허허”

 

조인환 집사가 처음으로 유쾌하게 웃으니 기자도 따라 웃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김우정 원장은 결코 선교사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마음에 새길 만큼 선교사를 꿈꿔보지도 않았다. 선교사라는 이름은 그에게 오랫동안 낯설고 아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캄보디아 헤브론의료원에 거처를 정하고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아왔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말로 감사했다.

 

“헤브론의료원이 시작될 때에도 그리고 병원 새 건물을 건축할 때도 사실은 아무 능력도 없이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모른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일을 이루는 것을 보기만 하라’고 응답하셨던 역사가 헤브론의료원에도 있을 줄 믿고 지나온 날들이었습니다.”

 

▲ 크리스찬리뷰 단기선교팀은 배기안 원장에게 물리치료기 3대를 전달했다.©크리스찬리뷰     

 

김 원장은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도하게 하시는지 모른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 하신다”며 “현지에 있다 보면 130여 년 전 한국에 들어온 외국선교사들이 한 사람을 살리려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을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후회는 없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후회는 안 해봤어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감사하고요. 아내와 둘이 앉아서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런 이야기를 가끔 나눠요. 선교사가 되려고 그렇게 애쓴 사람들도 아니고 선교사 꿈을 꾸고 키우고 훈련한 사람들도 아니고 먹는 것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고 똑같이 그렇게 살던 사람들인데요.

 

지금까지 저희들과 헤브론의료원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그 평안이 내심 탐이 난다. 〠 <계속>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김신일|본지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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