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상)

백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7/24 [15:05]

▲ 일 선교 역사 학술 탐사팀. ©백학     

 

알파 쿠루시스(Alphacrusis) 신학대학교(이하 알파)의 필드 스터디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한동안 교실에서 공부를 한 다음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역사를 확인한다는 점이 대단한 흥미를 더한다.

 

일반적으로 성지순례라고 하면 이스라엘, 중동, 유럽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번에는 한국과 일본이 학술탐사의 주 무대가 된다는 점에 솔깃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인으로 살아왔지만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 복음에 관하여 지역별로 소상히 알아본 적이 없었다.

 

한편 이민자, 디아스포라로 보낸 세월이 워낙 길었다는 변명을 덧붙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한∙일 선교 역사 학술 탐사는 팀원 모두에게 영적으로 발돋움하는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특히 일본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복음의 불모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

 

순교의 역사, 그 중에서도 규수 지방이 궁금하였다. 실제로 기독교가 우리보다 400년 이상이나 앞서 전수받은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학술탐사팀은 알파 최성렬 교수를 포함하여 모두 24명이다. 참가자들은 학술탐사를 위하여 평소보다 더 많은 기도로 무장하였다. 떠나 있는 동안에도 사역과 직장에 아무런 차질이 없도록 주변을 챙기느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였지만 비행기에 몸을 맡긴 후에는 안정감을 찾고 드디어 12박 13일의 대장정에 올랐다.

 

일본 규수 지방의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지역

 

둘째 날(6월 14일) 오전 6시 이른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 비행기에 탑승했다. 역사 이래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후쿠오카까지는 한 시간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은 6천8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중 4개의 섬 혼슈, 규수, 시코쿠, 홋카이도가 전체 국토의 97%를 차지한다.

 

▲ 일본 규수 지방의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지역 지도 (하단 표시 부분) ©백학     

 

탐사 팀은 규수 섬의 대표적인 도시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기독교 유적을 둘러보았다.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1549년 예수회 신부인 프란치스코 자비에르(Francisco Javier, 1506-1522) 스페인 선교사가 일본 규슈 지방에 들어와서 ‘예수회선교사단’을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의 일본은 사무라이 계파 간의 내전으로 통일왕국을 이루지 못한 전국적인 혼란의 시기였다. 일반 시민들은 삶의 기력이 없던 와중에 희망이 필요했다. 집단의식과 사무라이 칼날에 시민들은 몸서리치는 환란 중에 주님의 복음은 한 줄기 빛과 희망이 되었다. 그렇기에 일본 신앙인들에게 그렇게 많은 순교자가 일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동양의 사도

 

▲ 동양의 사도로 불니는 성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기념교회 ©백학     

 

가장 먼저 ‘동양의 사도’라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히라도 카톨릭 성당을 방문했다. 프란치스코 자비에르 기념교회는 1918년 5월 14일에 헌당되었다. 해안 길 언덕길을 버스로 올라가면 마치 동화속의 성처럼 아름다운 교회를 만날 수 있다. 맑고 푸른 하늘과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항만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정경을 이룬다. 벽돌과 목재의 조화, 아치 창문 등이 그 당시 신자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신앙심이 전해져 온다.

 

자비에르 선교사가 처음으로 이곳에 뿌리내릴 즈음에는 영주의 호의 아래 포교가 어렵지 않았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은 이래로 이 종교가 정치적인 세력이 되는 것을 우려해 금교령이 내려진다. 자비에르 선교사는 이 지방을 세 번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 느슨했던 금교령이 차츰 가혹해지면서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지 40여 년 만인 1579년부터 순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마당에 세워진 자비에르 선교사의 청동상에서 온화한 미소가 느껴진다.

 

자비에르 선교사 기념교회는 중세 성당이나 우리가 사는 호주에서 볼 수 있는 예배당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밝은 색상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정면 중앙에는 큰 탑이 있고 좌우로는 작은 탑을 배치하여 하늘로 향하는 수직성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연회색 회 반죽 기법의 외벽은 미장공의 높은 기술을 볼 수 있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이동하는데 버스로 약 2시간이 걸린다. 호텔에서 저녁식사 후 온천욕을 즐겼다. 온천수로 유명한 일본 특유의 환경이 멀리 호주에서 날아온 여행자들의 피로를 풀기에 아주 적격이었다.

 

▲ 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백학     

 

셋째 날, 소설 ‘침묵’의 무대 소토매 마을로 이동했다. 일본의 소설가 ‘앤도 슈사쿠’의 기독교 소설로 유명하며 현대 종교소설 부문에서 명작으로 평가된다. 1966년도 작품이며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창작품이다.

 

소설의 간략한 내용은 예수회의 이름난 신학자 크리스토방 폐헤이라 신부의 배교 소식에 로마 교황청이 놀랬다. 그의 제자 호드리구와 가흐프가 이 소식을 듣고 확인을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나가사키에 도착한 호드리구는 배교한 스승 페헤이라를 만났다.

 

호드리구 신부 역시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배교를 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지 궁극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스승 폐헤이라도 이같은 이유로 배교했음을 알게 되며 호드리구 역시 배교에 이른다.

 

다음의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나는 ‘침묵’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너희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다. 배교가 순교보다 괴롭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원폭 참상과 재해 현장

 

원폭의 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원폭 자료관 운젠으로 이동했다. 광장 중앙에 원폭으로 그을린 모습의 흉상이 서 있고 중앙에 1945. 8. 9. 11: 02 양각의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원폭으로 거슬린 성당의 벽을 옮겨와 야외 넓은 광장에서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 원폭의 참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원폭 자료관 운젠 광장 중앙에 원폭으로 그을린 모습의 흉상이 서 있고 중앙에 1945. 8. 9. 11: 02 양각의 날짜가 새겨져 있다. ©백학     

 

이 성당은 1914년에는 동양에서 제일 가는 장대함을 자랑하는 성당이었다고 한다. 한 켠에 한국인 원폭피해 위로비가 거북 등상 위에 세워져 있다.

운젠 지코쿠 온천지대는 지코쿠(지옥)라는 이름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바로 옆에 푸른 솔나무가 자라고 산새들과 풀벌레들이 가까이서 살아 움직이니 신기할 따름이다.

 

넷째 날, 운젠을 떠나 드높은 산과 푸른 바다의 도시 시마비라로 이동했다. 이번 탐사의 일정에서 순교자의 기념비 앞에서는 숙연하기도 하지만 어디를 가나 우거진 녹음과 산야와 규수 지방 특유의 시원한 바다를 끼고 이동을 하게 되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화산재가 지붕까지 뒤덮었던 마을 미즈나시 혼진을 방문했다. 화산재로 온 마을이 폐허가 된 곳,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가사키 시마바라 남부지역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가 들어서면서 금교령이 내려지며 배교를 거부한 신자들에게 극심한 탄압과 고문 처형이 이루어졌다.

 

배교를 거부한 신자들

 

우리 팀이 방문한 곳은 1613년 10월 7일, 영주민 2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끝내 배교를 거부한 3명의 가신과 그 가족 5명(12살 소년을 포함)을 8개의 십자가에 매달아 화형을 시킨 장소이다.

 

이들의 유골은 신자들에 의해 나가사키로 운반되었고, 이후 추방되는 선교사들이 마카오로 반출되었다가 1995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2008년에 복자품으로 시복되었다. 순교 터, 바로 옆 푸른 잎 은행나무 한 그루가 신앙의 절개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추모하는 위령비 ©백학     

 

‘기리스탄’은 일본에서 금교 정책이 실시되면서 ‘잠복 크리스찬’을 일컫는 역사적 용어이다. 선교사가 추방되는 부재 속에서도 ‘기리스탄’은 일본의 정통종교나 일반 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은밀하게 그리스도 신앙을 지켜 나가는 독특한 전통을 만들었다.

 

1873년 메이지 유신 정부가 들어서며 금교령이 철폐되기까지 약 250년간을 ‘취락’ 구조로 신앙을 지켜 왔다고 알려져있다.

 

다섯 번째 날, 오늘은 일본 최초의 순교가 있었던 시마바라 아리마가의 순교기념공원을 방문했다. 버스가 큰 길에서 우회전할 때 거리 교통 표지판에 일본 26성인 순교지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에는 칸지체 일본 한자어와 영어, 한국어로 표기 되어있다.

 

언덕 위 공원 안에는 교황 바울 5세가 1981년 2월 26일 방문했다는 기념비가 있다. 공원 정면에 26성인이 청동 양각으로 나란히 옆줄로 장엄히 펼쳐져 있다.

 

▲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추모하는 위령비 ©백학     

 

▲ : 니시자카 순교자 언덕에 새겨져 있는 26인의 성인 ©백학     

 

학술탐사 팀은 규수의 관문인 후쿠오카 공항으로 다시 갔다. 한국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본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언제나 긴장감이 없다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의 토막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번 학술탐사를 통하여 일본 기독교 역사가 우리보다 400여 년이나 앞섰으며 순교자의 신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권면하는 것 같다.

 

어떤 선견자의 말이 기억된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 공주제일교회를 방문한 학술 탐사팀 ©백학     

 

여섯 째 날, 한국 도착하는 첫날 묵었던 같은 호텔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주님의 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호텔 컨퍼런스 룸에 팀 전원이 모였다. 최성렬 교수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태 14: 22-27)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모두가 은혜의 시간을 보냈다.〠

 

백학|시니어 선교 한국 파송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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