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속에서 평화 지키기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7/24 [15:1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사회에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국경처럼 눈에 보이는 물리적 장벽도 있고, 유리 천정같이 보이지는 않으나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장벽도 있다. 구분과 질서를 위해 일정한 경계를 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 그어진 경계선 위로 장벽이 세워지고 불통이 일상화, 분리가 공고화, 차별이 영구화된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세상에 당연시는 가당치 않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참 다양하다. 이외에도 벽을 세우기로 하자면, 설마 명분이 부족하랴. 단절, 그래서 혼자 남기 원한다면, 그도 나쁘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결국 혼자니까.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삶이 편해지고 기대와 의존, 실망과 배신의 비참함도 경감시킬 수 있다. 특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침묵, 묵상, 수덕, 양선의 삶을 조용히 실천하기에 용이하다.

 

하지만 존재론적인 단독자를 벗어나, 공적인 영역에서 편을 가르고 끼리끼리 뭉치는 결집은, 친목하고 연대하는 듯 보이나, 사실은 벽을 세우고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익 집단화되면, 그 폐해는 심화한다.

 

양극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함에도, 정치와 종교의 분리, 성직자의 중립 의무(?) 등 어느 정도 합의된 윤리강령이 강제하는 틀을 벗어나, 요즘은 스님의 볼멘소리, 신부님의 쓴소리, 목사님의 쉰소리, 혹자의 생소리까지 곳곳에서 새 나온다. 숨죽이던 민중은 숨 쉬고 살기 위해 더 넓은 공간을 찾아 나와 광장에서 외치는 함성을 점차 높이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인간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늘 성구가 이야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 자유인과 종,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한국 사회에서 이념 갈등, 노동 탄압, 성차별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니, 낯설지 않다. 성경 시대의 사회적 단면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판박이다.

 

문명이 진보하면 집단의 평균적 기준이 상향되는데, 도리어 하향 조정되고 있다. 구호는 앞으로 전진인데, 분명 역사를 거슬러 거꾸로 가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 내가 20대에 경험한 군사정권의 매콤한 최루탄 냄새가, 왜 이 정권 들어, 코끝에 다시 아른거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세상 속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시민, 자유인, 남자라는 정체성이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점차 헬라인에 휩싸인 유대인, 자유인에게 감시당하는 종, 우월적 사고에 경도된 남자에 의해 내몰리는 여자에 가깝다는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는 걸까?”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자의 인권을 변호하고 싶고, 차별받는 종의 행복권을 지켜주고 싶고, 소수가 된 유대인의 권리를 주장하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참 별난 일이다.

 

지도층이 막무가내로 사고 치는 행태는 차치하더라도, 사람이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에 대한 배신이 잦고 실망이 일상화되면서 “이민 가고 싶다”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단순히 한 나라에 살기 싫어서일까?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한 그들의 말을 안 전해 듣고 하는 짓을 안 보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살아도 한민족이기에 한국 뉴스 보게 된다. 이 정도면 정신적 피해다. 우울증과 분노, 울화가 치밀어 화병(火病) 걸리기 딱 좋다.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래도 하나다. 이는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 사이에 양을 먹이는 우물로 다툼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 친척 골육 형제임을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문제를 그대로 덮어버리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는다. 그들은 갈라선다. 아브라함은 선택을 양보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했다.

 

그때는 땅이라도 넓고, 소비도 적었고, 자급자족이 기본이라 가능했다. 요즘은 얽히고 설켜 불가분의 관계이니, 이도 어렵다. 분단의 아픔이 해결되지 않고 갈등을 넘어 결별과 전쟁으로 치닫는 남북의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한민족이 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일-중-러가 각기 한발씩 올려놓으려 들 터인데, 어찌 감당하려는가? 자칫 강제로 찢겨 나뉜 가정처럼 될 수 있다. 하여, 내부의 분열이 무섭다. 하나 되기 어려워도,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큰 사람이 먼저 양보하면서, 평화를 지키자.〠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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