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에베소서 4:11-12)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7/24 [15:19]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이어서 사명자로 부르셨다. 성도로의 부르심이 신앙의 시작이라면 사명자로의 부르심은 신앙의 전 과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난 이후에 우리 인생 전부는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세도 사명자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고, 여호수아, 베드로, 바울도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명자로 살았다. 그렇게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사명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명자로 삼으신 것일까?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하나님이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신 데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성도를 온전하게 하도록, 둘째 봉사의 일을 하도록,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먼저 성도를 온전하게 하시려고 사명자로 부르셨다. 이 말씀은 사명 없이는 온전한 성도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던 중에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다. 온전함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며 모든 성도가 이루어야 할 영적인 상태다.

 

우리는 온전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온전함이 무엇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가? 사명이다. 사명자로 헌신하는 것이다. 사명에 헌신할 때 우리는 온전한 성도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그물을 던지고 낚시하던 베드로를 당신의 제자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예수님이 부르시는 순간 그는 성도가 되었고,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온전한 성도나 온전한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겠다고 나선 사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부르시고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하셨다. 사울이 분명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당장에 온전한 사도 바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나 바울이 온전한 성도, 더나아가 온전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헌신했을 때였다. 주님이 주신 사명에 자신의 몸과 시간과 물질을 헌신하고, 그 사명에 자신의 삶을 던졌을 때였다. 그렇게 사명에 헌신했을 때, 위대한 사도 베드로와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수많은 죄인들 가운데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구원해주셨다. 하지만 당장 온전한 성도, 온전히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명에 헌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명에 헌신할 때, 온전한 성도로 자라갈 수 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두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신 목적은 봉사의 일을 하도록 위함이다. ‘봉사의 일’이란 낮은 자리에서 주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명자는 높은 자리에 앉아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대접을 받는 자가 아니다.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자가 사명자다.

 

세상은 앞자리에, 화려한 자리에, 높은 자리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포트 라이트 받기를 원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명자는 다르다. 비록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일지라도,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게 아니라 소외된 곳, 후미진 곳일지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자가 참된 사명자다.

 

사명자의 본이 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하루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간청했다.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크게 화를 냈다.

 

왜? 자기들도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었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물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예수님을 쫓지 않았던가! 제자들의 공동체는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싸우면서 곧 깨어질 판이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

 

참으로 혁명적인 메시지다. 세상과는 정반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큰 사람이 섬김을 받는다. 높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섬김을 받는다. 으뜸이 되는 사람은 종이 아니라 상전 중의 상전이 되는 게 세상의 논리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큰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누구든지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는 으뜸인 사람이 절대로 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큰 사람은 섬길 줄을 모른다. 하지만 주의 나라에서는 큰 사람일수록 많이 섬겨야 한다. 주의 나라에서 으뜸이 되려면 반드시 종이 되어야 한다.

 

주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곳이 어디인가? 교회다. 교회는 주의 나라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공동체다. 그리고 그 원리를 세상에 전파할 의무가 있다. 그 원리가 ‘섬김’이다. 종이 될 때까지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섬기는 그 사람이 큰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람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유의 주이시며, 온 세상의 왕이시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도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큰 사람은 힘이 세거나 지위가 높거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섬기는 사람이다. 나를 낮추고 희생하면서 공동체와 타인을 섬기는 사람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고 우리를 큰 자가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교회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다. 몸이 건강하고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서야 한다. 그리고 건강하고 바르게 세워지는 교회가 성장한다. 숫자만 느는 게 영적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훈련과 배움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배우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3년 동안 가르치고 훈련시키셨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매일같이 가르치셨다.

 

기도하는 법도 가르치셨고, 전도하는 것도 가르 치셨고, 남을 대접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도 가르쳐주셨다. 또 말씀을 가르치시고, 설교하고, 예물을 드리는 법도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셨다.

 

그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고 훈련 받은 그들은 사도가 되어서 최초의 그리스도의 몸인 초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그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갔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 날로 부흥하는 교회,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온 세계로 확장되어 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온전한 성도가 되어 봉사의 일을 하며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자. 샬롬!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