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전환점이 된 가평 전투

빌 먼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8/28 [12:52]

▲ 한국 참전비 제막 행사에서 환영사를 전하는 빌 먼로 회장. ©크리스찬리뷰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대한민국을 처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고 전쟁이 선포되었습니다. 호주는 지원 요청에 빠르게 응답함으로써 지원을 결정한 첫 번째 나라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1만 7천 명 이상의 호주군이 참전하여 3백40명의 용감한 군인들이 전사했습니다.

 

한국전쟁은 이전의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에 눌려 ‘잊혀진 전쟁’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서부호주의 35명의 전사자들의 가족과, 전쟁으로 인한 수 많은 심적, 육신적 고통을 받은 분들, 1천916명의 남녀 참전용사들에겐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페이 듀다(Fay Duda-대한민국 서부호주 명예영사)와 이진길 회장(서부호주재향군인회)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서부호주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듀다 명예영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였고, 오늘 우리는 이분들의 노력의 결과 앞에 서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투 중의 하나는 가평전투입니다. 캐나다의 프린세스 왕립 보병대대와 뉴질랜드의 왕립 포병포대의 지원을 받은 호주 보병대대 총 1천500명의 용맹스러운 전사들은 엄청난 역경과 싸웠습니다.

 

최악의 여건 속에서도, 이들은 중공군들의 힘을 입은 북한군 6천여 명을 격퇴하였습니다. 격렬한 전투는 며칠간 계속되었지만 호주군은 승리를 함으로써 북한군을 후퇴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은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가평전투는 한국전쟁의 전환점이 되었고, 대한민국이 큰 무역국가 및 민주국가가 되는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본 기념비의 중심에 가평군에서 관대한 마음으로 보내준 ‘가평석’이 있는데, 이것은 가평에 있는 산에서 절단한 5톤 무게의 거대한 암석입니다. 기념비의 바닥은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의 이미지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의 미묘한 상징들은 벽과 통로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벽에는 해군, 육군, 공군 및 유엔의 상징과 명예명단 및 전몰용사들에게 드리는 시가 담긴 명판이 영어와 한글로 자랑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벽의 뒷면에는 한국전에 참전한 서부호주 1,916명의 명단이 한반도 지도와 함께 이 용사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기념비의 뒷면에는 방문객과 가족들이 전쟁의 참상을 회상하고 전몰용사를 기리기 위한 조용한 장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면에는 우리 군인들이 대한민국에서 보여준 용기와 영웅적 모습을 기념하는 장소로써 두 나라 사이에 지속적인 혈맹 관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대한민국에서 싸우고 전사한 서부호주인들의 희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우리의 깊은 감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증진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서부호주의 지속적인 유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문화를 기념하는 장소 (pavilion)가 건립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휴전협정 서명 70주년을 맞이하여 이 기념비를 통하여 ‘잊혀진 전쟁’이 기억되고,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잊지 맙시다!

 

빌 먼로|서부호주 한국 참전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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