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성도와 교회를 깨우는 선교 동원가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23/09/25 [15:59]

▲ 복음에 미친 이용남 선교사가 구세군 라이드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복음에 미친 이용남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잠자는 성도와 교회를 깨우는 선교 동원가이다.

 

미국에서 젊은이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이재환 선교사를 통해서 선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뜨거운 가슴으로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선교를 했다. 선교지에서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와 지병으로 오랜 사역은 하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은 더 뜨거워졌다.

 

지난 8월 27일 주일, 이 선교사는 요한복음 12:20-24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란 제목으로 구세군 라이드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는 선교사들의 노고와 희생을 통해 한국에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강조했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에 의해 뿌려진 복음이 알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으로 이어졌다. 구세군 사관인 나도 알지 못하는 초기 선교 사관의 사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복음에 미치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복음에 미치다’를 통해서이다. 그는 한국 초기 선교사들의 사역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고 글을 썼다. 책에는 조선 선교의 씨앗과 같은 역할을 했던 ‘가우처 목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 말씀을 전하는 이용남 선교사.©크리스찬리뷰     

 

“우리나라는 1882년 한미수호조약을 체결하고 1883년 5월 비준서를 교환했습니다. 그래서 고종 황제는 미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견미단(미국 방문단)입니다….

 

미군 해군 함정을 타고 7월 제물포를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 9월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까지 두어 달 동안 견미단 일행은 별의별 상상을 다 합니다….

 

배에서 내린 견미단 일행은 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미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 했습니다….

 

얼마 후 기차가 볼티모어 역에 정착하는 순간, 한 신사가 견미단 일행과 같은 칸에 올라탔습니다. 그들은 다른 미국인들과는 달리 견미단 일행을 보자마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그 신사는 바로 가우처 목사였습니다.”

 

가우처 목사는 민영익과 대화를 나눈 뒤에 조선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조선에 개신교 목사가 파송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조선 선교를 위하여 감리회 총회에 2천 달러를 보내고, 1주일 후에 3천 달러를 보내며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을 요청하였다.

 

총회 선교국에서 승인이 지연되자 1884년 1월에 일본 주재 선교사인 맥클레이 목사에게 직접 가능성을 타진했다. 맥클레이 목사는 김옥균의 도움으로 고종을 알현하게 되고, 의사와 영어 선생 3명을 보낼 수 있는 윤허를 받았다.

 

얼마 후 제물포를 통하여 1884년 9월 20일 알렌이 입국하고, 1985년 4월 5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여 한국 개신교 선교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이 선교사는 시드니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8월 28일 멜번으로 떠났다. 호주를 방문한 목적은 멜번의 선교지를 탐방하기 위함이다.

 

아래는 이용남 선교사와 인터뷰 내용이다.

 

- 호주를 방문한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까?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 중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들이 모두 호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선교의 뿌리가 있는 곳은 찾아가서 탐구하고 그 선교 이야기를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나누면서 선교 동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 동원 사역 프로그램으로 코로나 이전에도 여러 번 호주를 방문하였는데 문이 열리면서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 시드니 집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송선강 목사(시드니새순장로교회)께서 뉴질랜드에서 목회를 하고 계실 때, 여러 번 그 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하면서 은혜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호주 오는 일정을 아시고 송 목사님께서 한국선교 이야기를 나눠 달라고 하셔서, 새순교회 주일 예배 때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금요일에는 응답기도원 (원장: 윤영화 목사)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호주 방문 두 번째 주일에는 시드니 구세군 라이드 교회 (담임사관 김환기)에서 주일 메시지를 전하고 그 다음 날 바로 멜번 선교 역사 탐방을 떠났습니다.”

 

- 멜번 선교 역사 탐방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빅토리아 주 수도인 멜번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한국 선교와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빅토리아주 장로교회에서 한국 선교의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호주교회가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계기는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가 부산 땅에 묻히는 (1890년 4월 5일)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 경남 창원공원묘원에 조성된 호주선교사 순직기념비 앞에서 이용남 선교사가 호주 선교사들의 사역을 설명하고있다.    ©크리스찬리뷰

 

한 알의 밀알이 된 데이비스 선교사의 발자취만 살펴봐도 그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 그가 세웠던 학교(Caufield Grammer School), 목사 안수를 받았던 교회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을 방문하면서 감동적인 선교 역사 탐방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데이비스 선교사가 순직 후 빅토리아 주 여전도연합회와 청년 연합회가 바로 이듬 해(1891년 8월) 다섯 명의 선교사를 부산으로 파송하는데 그 다섯 명 중에 네 명을 파송한 교회가 멜번에서 한 시간 떨어진 발라랏이라는 마을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방문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눈물을 많이 주십니다. 당시 그 교회는 담임 목사 내외와 미혼 여선교사 두 명을 파송한 교회였는데, 부산에 도착한지 3개월 만에 사라(Sarah) 사모가 폐렴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슬픔을 딛고 더 많은 선교사를 우리나라에 파송하게 되는데 그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와서 수많은 한국교회가 세워지고 그 교회를 통해서 배출된 하나님의 사람들(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옥한흠 목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는 곳이 멜번에 있기 때문입니다.

 

▲ 본지 영문편집위원인 김환기 사관이 이용남 선교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그 외에도 한 평생 우리민족을 위해 사역을 하신 후하나님 품에 안긴 선교사들의 묘가 멜번에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호주 원주민 선교를 하고 있는 김종찬 선교사께서 직접 운전을 하고 멜번까지 가셨기 때문에 곳곳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성도들은 멜번의 역사적인 현장을 꼭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송선강 목사께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새순교회 성도들과 함께 멜번을 가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내년 초 저는 멜번에 머물면서 멜번 선교 역사 탐방을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도 한국 성도들도 모시고 올 것입니다. 그 기간에 호주에 살고 계시는 성도들이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 어떻게 이 사역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에서 한 평생을 드린 로제타 선교사가 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엄청난 눈물을 주셨습니다. 그냥 감동이 되어서 흐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엉엉 울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우리 나라에 오신 선교사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 분 한 분 선교사들의 삶을 연구하면서 정리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의 삶이 너무 아름답고 은혜가 되어서 먼저 우리 직원들에게 양화진을 안내하였는데 그때 양화진에 혼자 오셔서 선교사들의 묘를 둘러보던 한 분이 안내를 마친 후에 찾아와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선교사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또 다른 분이 저희 교회 성도들 에게도 나누어 달라고 것이 시작이 되어 정말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 성도들에게 양화진 선교사 묘역을 안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들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한국 선교 이야기를 한국교회가 알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들의 묘가 서울 양화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국 곳곳에 있기 때문에, 서울과 부산, 대구, 창원, 안동, 청주, 대전,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 여수, 강원도 제주도와 해외까지 선교역사 탐방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 양화진 선교사라는 닉네임을 가지셨던데 양화진은 어떤 곳인가요?

 

“양화진(楊花津), 어자적으로 풀어쓰면 버들강아지가 만발한 나룻터라는 뜻입니다. 지금의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일대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곳이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이름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은 수많은 선교사들의 자녀들과 선교사들이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외국인 묘지, 선교사 묘지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존 헤론 선교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고종황제의 시의였던 존 헤론 선교사가 수많은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다 본인도 이질로 인해서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1890년 7월).

 

당시 동료 선교사들이 헤론 선교사를 묻을 곳이 없었기에 고종 황제에게 요청해서 얻은 땅이 양화진 근처였습니다. 선교사 때문에 생겨 진 곳이고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묻혀 있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 모두가 감동을 받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을 믿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한국 교회 역사는 짧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부분 성도들은 1대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데, 1대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대부분 불교, 유교, 무속신앙의 가정 배경에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가족 배경에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족 친척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정기적으로 다니게 된 것은 교회 다니는 친구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부터입니다.

 

그 교회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삼애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받은 축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교회 기도하는 권사님, 집사님들이 저를 놓고 작정기도를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성령의 은혜를 모르고 다니는 제 모습을 보고 은혜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폐결핵 3기로 피를 토하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주셨던 권사님이 삼각산 기도원을 소개해 주셨고, 저는 피를 토하는 전염병이라 기도원에서 숙식은 하지 못했지만 야산에서 기도를 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죽음의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선교사가 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주님을 만난 후 간절한 기도의 내용 중 하나는 나처럼 교회만 다니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전도사 시절에 지도하는 학생들은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청소년 사역자가 되어 많은 곳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였고 미국에서도 젊은이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사역하시던 이재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젊은이 사역자가 필요해서 기도하던 중에 제가 생각이 났다면서 저를 아프리카로 초청하였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하면 선교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아프리카로 선교사로 가겠습니까? 그래서 저 대신 제가 지도하던 젊은이들을 보낸다고답장하였는데 후에 이재환 선교사가 안식년을 맞이한다는 글을 읽고 젊은이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해서 항공권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집회를 하면서 저는 그때 선교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영국에서 선교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로 갔던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실격된 선교사입니다. 오래 사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조성되어 있는 구세군 사관 묘원. ©이용남     

 

미전도 종족이 있는 마을로 예배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의식도 없이 병원에 실려갔고,지병까지 도지면서 선교사로서는 실격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나라에 오신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서 선교의 눈을 뜨게 하는 선교 동원가의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 두란노에서 발행한 이용남 저 복음에 미치다. ©두란노     

 

- 베스트 셀러인 ‘복음에 미치다’은 어떤 내용인가요?

 

“이 책이 나오게 된 동기는 제가 한 교회에서 강의한 테이프를 두란노 출판사에서 듣고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집필을 한 것인데 1세기 사도들의 선교 행전부터 중세 암흑시대, 그리고 19 세기 위대한 선교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민족에게 어떻게 복음이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 나라 각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 어떤 선교사들이 어떻게 사역하다가 한국땅에 묻혀 있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 나라 근대사를 알 수 있는데 우리 나라 근대사는 선교사들에 의해서 열려지고 열매 맺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현재 집필 중인 책이 있습니까?

 

“지속적으로 선교사들을 연구하다가 하나님은 알지 못했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흐느끼는 눈물이 아닌 통곡의 눈물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알려 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 CTS와 극동방송의 방송 선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CTS (기독교 TV) 프로그램 중에 4인 4색이 있습니다. 초창기 ‘선교사 인물 열전’으로 두 달간 방영이 되었습니다. 극동방송에서는 선교 행전 진행자로 3년 6개월 동안 선교사들을 모시고 그 분들의 선교행전 이야기를 좌담식으로 진행했습니다.”

 

-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지막 과업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4장 14 절). 그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복음의 빚진 민족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헌금해 주고 선교사로 왔기 때문입니다. 동일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의 영역을 넓히고, 헌금의 영역을 넓히고 삶의 영역을 넓히면 우리 민족처럼 또 다른 민족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선교란 무엇인가? 구세군에는 ‘한 손에는 빵, 한손에는 성경’이란 모토가 있다.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지만, 두 손으로 가면 '선교'이다. 전도는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만, 선교는 전인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님의 지상최대의 명령은 사랑이고, 지상최대의 사명은 선교이다. 성도는 사랑으로 선교하는 선교사이고, 교회는 사랑으로 선교하는 선교 공동체이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권순형|본지 발행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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