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도대체 헤브론에 끌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글/김명동 사진/권순형·김신일 | 입력 : 2023/09/25 [16:13]

▲ 지난 2월 헤브론의료원을 방문한 본지 단기선교팀.(왼쪽부터 권순형,발행인, 이영돈 2대 원장, 김우정 초대 원장, 김신일 사진기자, 김명동 편집인) .©크리스찬리뷰     

 

“그래도 이런 의료선교를 하는 분들은 이미 많지 않나요? 특별히 헤브론의료원에 끌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헤브론의료원을 23차례 방문하며 사진선교를 하고 있는 본지 권순형 발행인은 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세가 인상 깊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현지인들에게 병원을 넘겨주기 위해 지도자 훈련에 집중하고 있고요.

 

사실 현지 직원들을 뽑아 병원 일꾼뿐 아니라 전도자로 준비시키는데도 많은 투자를 합니다. 또 프놈펜 주변의 가난한 마을로 이동진료를 나가서 심장병 어린이들을 찾아내 수술을 해주는데, 수술 전에는 반드시 가정방문을 통해 깊은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전도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헤브론의료원에 상주하는 장·단기 선교사들은 모두 자비량입니다. 병원에서는 점심밖에 제공하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 사용조차도 사용료를 지불하면서 이들은 예배, 상담, 전도, 자원봉사 등으로 조용히 돕습니다.

 

이들을 통해 놀라운 회복의 기적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이런 장면들을 사진으로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이런 섬김의 모습은 요즘처럼 자기를 들어내는 선교로 문제가 많은 때에 귀감이 되는 모델이지요.”(헤브론병원 24시 253쪽)

 

이 질문에 기자도 권 발행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기자가 헤브론의료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주목한 것은 ‘연합’이었다. 헤브론의료원은 캄보디아에서 사역해온 한국인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해 세웠다.

 

각기 다른 곳에서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이 힘을 합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사례다. 그리고 당시 생각한 것이 "가능할까?"였다. 그러면서 “힘들지”하며 고개를 저었었다. 그런데 몇 차례 방문하게 되면서 “어? 되네.”로 바뀌었던 것이다. 기자는 헤브론의료원 풍경에 매혹되었다. 그것은 실로 혁명이었다.

 

우리는 연합을 어려워한다. 왜 그럴까? 연합하고 협력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손해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은 아닐까. 자기가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은 아닌지.

 

헤브론의 큰 두 기둥 ‘병원과 학교’

 

사실 연합과 협력은 겸손을 의미한다. 연합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유익보다 공동체와 하나님나라가 우선하며 그것이 우리를 부르는 그분의 뜻이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님나라는 헌신과 손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일까. 이곳 선교사들은 현대라는 탁류를 거슬러 하늘나라의 목욕물로 목욕재계한 분들이랄까.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호주에서, 한국에서 안정된 터전을 뿌리치고 이곳을 찾아온 선교사들. 이들의 감동적인 헌신으로 현지인 일꾼들은 믿음의 토양 속에서 뿌리가 제대로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민족과 나라를 포용할 깊이와 넓이로 크고 있었다. 이웃을 향한 사랑도 이들의 생명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 헤브론의료원을 설립한 김우정 초대 원장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선교사는 “헤브론의료원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병원이고 또 하나는 학교다”라고 말했다.

 

“결국 목표는 학교나 병원 동일하게 사람을 길러 세우는 것, 크리스찬 리더들을 말씀 안에서 세워 그들에게 이양을 하는 것입니다.”

 

이어 김 선교사는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사람을 얻는 것은 선교사역의 자랑이요 열매라고 생각을 한다”면서 “사람을 길러 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는 마음을 주셔서 현재 간호대학과 의사 레지던트 프로그램, 그리고 캄보디아 직원 중간 관리자 세우는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 안에 잘 훈련된 능력있는 의료인들이 배출이 되고 그들 중에 일부는 다른 나라에도 진출하여 캄보디아에 유익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이 일에 꼭 필요한 분들을 준비해 주셔서 그분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작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김 선교사는 “캄보디아는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지금 선교사들은 모두 손 털고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간호사들을 키워간다면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 될뿐더러 크리스찬 리더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겠지요. 내과와 외과 비롯한 여러 파트를 책임지고 진료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한국의사들이 오도록 이를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 헤브론의료원 3층에 설치되어 있는 스튜디오에서 삐셋(가운데) 전도사와 본지 단기 선교팀. .©크리스찬리뷰     

 

간호대학에 졸업 앨범 선물

 

‘찰칵찰칵’

 

권순형 발행인과 김신일 목사가 셔터를 연신 누른다. 그들은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 학생들의 졸업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손을 부리고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조그만 내리세요.”

 

권 발행인이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학생에게 뛰어가 직접 옷깃을 매만져주는 등 프로다운 열정을 보였다.

 

“학생들이 이런데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서 어색할 거예요.”

 

“예쁘다”

 

▲ 금년에 졸업하는 31명의 간호대학 학생들에게 본지 권 발행인이 졸업 선물로 앨범을 제작해서 전달했다.©크리스찬리뷰     

 

▲ 졸업 앨범에 실린 간호대 학생들의 실습 장면들..©크리스찬리뷰     

 

누군가가 박수를 치면서 큰소리로 외치자 모두들 “까르르르” 웃으며 분위기는 금방 훈훈해졌다.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현재 헤브론의료원 간호대학은 캄보디아 정부가 독립학교 설립 인가를 허가하지 않는 대신 University Health Sciences와 MOU를 맺고 국제간호학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헤브론 간호대학’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현 상황에서는 ‘IPBN Hebron Campus’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학교측은 밝혔다. -편집자 주)은 그동안 사진 촬영의 제반 여건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졸업 앨범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같은 사연을 들은 권 발행인은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선뜻 내밀었고, 졸업을 앞둔 31명의 학생들에게 졸업 앨범을 선물할 수 있게 됐다.

 

▲ 간호대 학생들의 실습과 기숙사 생활 장면들..©크리스찬리뷰     

 

박순복 교수(간호대학장)는 “졸업 앨범은 캄보디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쉽지 않은 일을 자원해서 맡아주셨다”며 “학교와 학생들에게 역사적인 귀한 자료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연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캄보디아에서는 엘리트들입니다. 우리학교로 오는 학생들은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3%안에 드는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라 이들이 예수님께 붙잡히기만 하면 캄보디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재들입니다.

 

▲ IPBN 헤브론 캠퍼스 간호대학장 박순복 교수 .©크리스찬리뷰     

 

그런데요. 깜짝 놀랄 일은 이번 졸업생 31명중 23명이 세례를 받은 학생들이라는 겁니다. 우리학교 학생들이 처음에 저희들에게 올 때는 100% 불교입니다. 히잡을 쓰고 오는 이슬람도 있고요. 그런 아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세례를 받고, 히잡을 벗어버리는 모습을 볼 때 기쁘고 보람이 넘칩니다.

 

히잡을 벗는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잖아요. 이 일에 대하여 저희들이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화니타(Fanita) 이야기를 꺼냈다.

 

“화니타가 처음에 우리학교에 올 때는 히잡을 쓰고 왔었어요. 그런데 이 학생이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집에 방이 하나라 식구들하고 같이 쓰면서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양강용 처장님(간호대학 대외협력처장)이 그 학생을 집으로 데려와 머물게 하면서 공부를 하도록 했는데 이 학생이 영어도 짧고 해서 공부를 못했어요. 그런데요. 집에서는 돈이 없으니까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오라는 거예요.

 

▲ 히잡을 쓴 화니타(오른쪽)와 양강용 선교사..©크리스찬리뷰     

 

▲ 세례를 받은 화니타와 간호대학 학생들     

 

이 아이에게 장학금을 줬어요. 장학금은 1년 학비가 1천300달러니까 많지는 않아요. 장학금을 줘서 공부를 계속하게 됐는데 예수님 영접하고 성적이 상위권에 올라왔어요. 그러면서 히잡을 벗어던지고 교회도 출석하게 됐습니다.”

 

헤브론간호대학이 설립된 것은 2014년 10월이다. 캄보디아 왕립프놈펜대학과 연계하여 학위를 주는 과정으로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교수진도 쟁쟁하다. 기독교 선교의 비전을 가진 석사 이상의 박사학위와 고 경력자이고 모두가 자비량이다. 현재 재학생은 63명이다.

 

▲ 간호대 학생들이 헤브론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후 기념촬영.©크리스찬리뷰     

 

▲ 간호대학 대외협력처장 양강용 선교사.©크리스찬리뷰     

 

▲ 간호대학 교수 양명숙 선교사.©크리스찬리뷰     

 

헤브론 간호대학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는 대외협력처장인 양강용(77) 선교사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양강용 선교사는 미국에서 40년간 살면서 32년의 제약회사 경력을 갖고 있다.

 

마지막 회사인 아브라식스 바이오(ABRAXIS BIO Pharmaceutical)에서는 부사장과 Senior Director 자리에까지 올랐다. 간호대학 교수인 아내 양명숙(75) 선교사와 캄보디아에 온 것은 2008년 9월이다.

 

“저희 나이 또래면 역사 의식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근대사에 들어와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잖아요. 미개한 나라였고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선교사들이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복음을 접할 수도 있었고요. 이제는 한국 분들이 갚아야 되지 않느냐 그런 마음이 저희 세대가 많았던 것 같아요.”(인터뷰 2015년 4월)

 

▲ 교수 회의 중.©크리스찬리뷰     

 

▲ 박순복 교수와 양명숙 교수는 미국에서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되어 왔다. ©IPBN     

 

“한국에서도 영어로 강의하며 학생들을 자기 자식처럼 품는 학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물론 능력 있는 간호사들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이지만 간호대학 건물이 완공되면 기숙사를 통하여 신앙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인터뷰 2015년 4월)

 

청년들을 제자삼다

 

이날 촬영은 학생들의 개인별, 조별, 컨셉샷으로 작은 축제를 방불케 했다. 촬영 내내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헤브론 캠퍼스를 가득 메웠고, 박순복 교수도 예상을 뛰어넘는 학생들의 열기에 박수를 치는 등 벅찬 감동을 느낀 듯 했다.

 

박 교수는 외모나 말씨 모든 것이 차분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부러운 말투를 듣고 있으면 한 평생 화를 안낼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에 ‘간호’를 덧쓰면, 그는 학생들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르치는 조련사요, 칼날처럼 매서운 교수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간호’하면 그를 떠올린다. 그는 학문적 깊이와 행정 능력을 두루 갖춘 덕에 주변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경험과 리더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간호대학 재학생들의 다양한 활동들(강의, 한국 방문, 기숙사, 실습, 생일 파티 등).©크리스찬리뷰 ©IPBN

 

박순복 교수가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과학기술대학을 거쳐 헤브론 간호대학에 온 것은 2017년이다.

 

“2015년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 있을 때 헤브론 간호대학에서 3학년 학생들을 위한 강의 요청이 있어서 처음으로 왔었어요. 그 인연으로 2017년 9월 학기부터 미국 시민권자들의 북한 입국이 금지되자 자연스럽게 헤브론 간호대학으로 와서 풀타임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라. 기도하라’는 학생교육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자신을 키우신 부모님이 그렇게 하셨고 박 교수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기도와 성경 속에 묻혀 살았듯이 학교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박 교수는 어린 시절 자다가 눈을 뜨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꿇어 앉아 기도하고 계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사랑의 눈물을 평생 잊지 못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믿음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늘 새벽기도 다니시는 것을 봤고요.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가야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갈 때는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준비하고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보고 배웠고 그렇게 자랐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 학생들을 사랑하고 믿음 안에서 잘 자라도록 지도해서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모태신앙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교회가 전부였다. 교회는 소녀의 놀이터가 되었고, 피난처가 되었고, 꿈을 일깨워준 비전의 장소가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데요.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고등학교 때까지 했는데요. 대학교 때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주최한 리더십 트레이닝코스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그곳에 가서 훈련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죠.

 

그러면서 내게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이 예수님인데 이 선물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박 교수는 “이때부터 교회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면서 지도력을 배우고 비전을 갖게 됐다”며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자 그들의 인생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젊은이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감동이었죠.”

 

박 교수는 결심했다.

 

“그래, 청년들의 복음화다. 젊은이들을 신앙 안에서 잘 가르쳐 세우는 일이다.”

 

박 교수는 여기에서 인생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학부편입부터 대학원 박사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재밌고 신나게 공부했다.

 

“정말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예비 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제가 가는 길을 기뻐하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다 끝내고 간호학 교수로서의 배움과 경험을 쌓게 될 때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학교는 회피했어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강의를 준비해서 재미있게 잘 가르치고 학생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소명을 알고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박 교수는 “헤브론 간호대학의 교육목표는 정직하고 이타적인 기독신앙의 간호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이라면서 “선진국 수준의 교과와 특별히 인간과 세계관이라는 과목을 개설해서 음성적으로 신앙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 사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기숙사에 있어야 저희들이 학생들을 만나서 사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기숙사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큐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 ‘말씀’이 놓여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말씀읽기와 묵상을 통해 자신이 여기까지 왔듯이 자신의 사역도 큐티를 통해 계속적으로 전개돼 나가야함을 그는 믿고 있었다.

 

박 교수는 “세례 받은 학생들이 모두 주말마다 소그룹모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며 “방학 동안 신약성경 통독을 권유했는데 기숙사생 전원이 신약성경을 읽고 왔다. 이들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삶 속에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일꾼이 부족하다. 특히 영어강의가 가능한 장기 사역자가 필요하다”며 “아이들이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 2023년도 졸업생들이 간호대학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크리스찬리뷰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을 내다보니 어느새 목표지점에 가 있게 되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 박순복 교수.

 

“제가 박사학위 할 때에 저를 많이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셨던 미국인 교수님이 두 분 계셨는데 제가 월급을 주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했더니 이분들이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 미쳤냐!’.”

 

헤브론의료원을 다녀온 사람들은 감격하고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왜, 헤브론의료원이 어떤 곳이기에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격하게 되는 걸까. 헤브론의료원 분위기는 한마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에 감싸여 있다.

 

“그래도 이런 의료선교를 하는 분들은 이미 많지 않나요? 도대체 헤브론의료원에 끌리신 이유가 뭡니까?”

 

“영혼이 부르는 대로 가다보니 그 현장이 헤브론입니다. 그 현장이 저를 바꾸었습니다. 헤브론은 선교의 교과서입니다.”〠 <계속>

 

김명동|본지 편집인

권순형|본지 발행인 김신일 본지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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