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문화관 그리스도인은 현대 문화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9/25 [16:34]

▲ 4인조 보이 그룹 루미너스의 TV 공연  

 

문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

 

우리는 앞에서 문화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견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면, 근본주의나 보수주의자들일수록 문화에 대해 분리(Isolation)와 은둔(Retreat)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리와 은둔’의 태도란 문화는 너무 오염되어 있고 세상은 악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에 대해 분리하는 태도를 취하거나 세속에 물들지 않게 피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실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을 우리는 교회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막의 교부들, 중세의 수도원 운동등은 세상과 담을 쌓고 세속과 분리된 장소에서 신앙을 추구하고자 했다.

 

세상 문화는 악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멀리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운둔하는 태도들을 취했던 것이다.

 

16세기의 재침례파나, 17세기의 경건주의, 19세기 부흥운동, 20세기 근본주의자들도 세상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사회 속에서 세상과 분리하거나 은둔하려는 태도들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분리와 은둔’의 태도는 불편하다고 보고 역설적으로 세상과 그리스도의 나라 두 곳에서 다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한 태도가 바로 동화 (Assimilation)와 항복(Capitulation)의 태도들이다.

 

문화에 대해 ‘분리와 은둔’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신앙에서 분리시키려고 하는 반면에 ‘동화와 항복’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이 대립을 불편시하고 역설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 보려고 과도하게 세상과 짝하는 경우다.

 

이 역설적인 접근은 ‘그리스도의 나라’”와 이 ‘세상’나라 양쪽 모두에서 다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굳이 이 ‘세상’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하고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오용하고 과도하게 적용시켜 버렸다.

 

교회사를 볼 때 중세기의 로마가톨릭, 16세기의 영국과 프랑스의 이신론(Deism), 19세기의 윤리적 자유주의, 20세기의 사회 복음주의 등은 세상에 적응하고 동화된 예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는 앞의 두 모델이 결코 성경에서 요구하는 태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도피를 하는 태도도 아니면 세상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 모두 바른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결코 세상에 대하여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협소한 의미의 양자 택일을 하라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이것과 저것을 다 같이 요구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로 감사히 받아야 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이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문화와 세상이 어떻게 죄로 오염되어 있고 왜곡되었는지 선지자의 눈을 가지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차드 니버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를 보면 문화에 대한 5가지의 견해를 볼 수 있다. 그의 책에서 니버는 다섯 번째 문화의 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바람직한 대안으로 내놓는다.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태도는 세상에서 도피를 하든지 아니면 무조건 받아들이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를 그리스도를 통해 변혁 (Transformation)시키고 문화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개변(conversion) 시키는 것이 문화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인

 

분리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은둔이나 도피의 견해도, 동화나 항복주의 자들이 때로 빠져드는 적응의 견해도 문화에 대한 바른 태도는 아니다. 세상 문화에 대해 성경이 요구하는 바른 태도는 모든 문화에 대해 변혁의 태도를 견지해서 세상 전체를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복종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드신 이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어떻게 오염되고 왜곡되었는지 가슴 아픈 눈으로 살펴보고 오염되고 죄로 왜곡된 문화에 침투해 들어가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모습으로 변혁시키는 것이다.

 

교회사를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복음에 의해 변혁시켜 나간 것을 볼 수 있다. 로마가 쇠퇴하고 퇴폐적인 문화로 신음하고 있을 무렵 바울이 기독교를 소개함으로 로마에 문화혁명이 일어났고, 불모의 봉건주의 사회가 백성을 노예의 상태로 만들고 문화의 퇴폐를 가져오게 했을 때 루터나 칼빈의 올바른 성경관은 서구의 문화전체를 변혁시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개인주의 영성과 신앙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문화를 바라볼 때 어떻게 이 문화가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을 왜곡하고 사람들을 부패에 빠지게 하는지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시대의 문화의 오염과 과오들을 깊이 통찰하고 삶의 전영역과 정치, 경제, 사회의 전 영역에서 문화의 왕 되신 그리스도의 주권 (Lordship)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열정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면 하나님을 떠나 탈선된 문화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려 놓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의 명백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교수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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