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해야 들리는 지혜자의 말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11/27 [15:26]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 (전도서 9:17)

 

차가 아우성친다. 하루 종일 괴로웠다. 일단 출발하면 다시 멈출 때까지 차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머플러 끝에 멋스럽게 덧댄 부분에 유격이 생겼나 싶어서 나사를 조였으나 소용없었다. 소리를 녹음해 지인에게 들려줘도 무위로 끝났다. 

  

정비사에게 맡겨야 할 듯해 차에 있는 짐을 다 꺼냈다. 자잘한 것들을 제하고도 플라스틱 박스, 접이식 야외 테이블, 낚시 배낭과 장비 통, 낚싯대 등이 끝없이 나왔다. 차 안에 이토록 많은 물건을 싣고 매일 끌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짐을 덜어낸 후 평소에 가족이 이용하는 차고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조용하다. 신기하게도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에 체험한 고요한 평화를 잊을 수 없다. 내 차가 이렇게 좋았나 싶어 고맙기까지 했다. 

  

새삼스럽게 조용한 삶의 축복에 대해 생각했다. 별일 없으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대체로 잠잠하다. 특별히 자신의 존재나 활동을 알리는 시끄러운 신호음을 보낼 필요 없이, 정연한 질서가 지켜지는 일상에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나 여기 있어. 알아줘.”라는 소리는 그 이전에 이미 상처받았고 많은 신음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찬으로 우리는 조용해야 들리는 조용한 지혜자의 말을 듣기 위해 침묵을 적극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침묵은 자신을 대면할 용기를 지닌 사람이 내면의 자아를 찾고 만나 대화하며 자신을 덜어내고 채우는 경험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헤아리는 적극적 경청을 통해, 나의 관심과 돌봄이 남의 잔을 채우기 위해 흘러가는 이입이다. 또한 엘리야처럼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 가운데가 아니고, 세미한 소리로 임하는 여호와를 만나는 경험이다. 

  

이리 보면 말의 절제 또는 침묵은 다양한 인격을 만나게끔 현재의 나를 다른 여러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여행이다. 대면과 성찰을 통해 참된 나를 만나고, 판단을 유보하거나 거절하는 적극적인 청취를 통해 참된 너를 만난다. 

  

급기야 기다림과 앙망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됨에 이른다. 조화로운 세상살이의 질서와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영혼의 고요한 평화가 침묵의 세계 안에 존재한다. 

  

비워내니 조용한 축복이 찾아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짊어지고 산다. 내 삶에 저마다 사연을 갖고 온갖 이유로 더해진 액세서리들이 나를 감싸고 뒤덮어 불편하게 한다. 소유이든 사람이든 서로 부대끼면서 듣거나 들려오는 크고 작은 소음에 신경 쓰며 살다 보면, 나의 나된 삶을 살기 어려워진다.

  

여행 가방 챙기는 일이 서툴면 필요한 물건을 챙겨 넣다가 다시 필요 없는 물건을 덜어낸다. 물질과 관계가 넘치는 시대이기에 차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빼내듯 아끼지 말고 하나둘 미련 없이 덜어내는 빼기 연습이 필수다. 

  

사물이나 생명이나 앞에 두니 유혹이고 움켜쥐니 욕심이고 짊어지니 짐이 된다. 소유해야 안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탐욕은 미화되고 점차 자유는 상실된다. 그러니,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고 때론 끊어내야 한다. 

  

세례 요한의 광야의 영성은 필요라는 최소한에 기초했다. 최소주의는 청빈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청빈을 무소유나 자발적 가난으로 단순히 정의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소유임을 잊고 함께 나누는 부요함이다. 

  

각자가 소유를 제한하고 포기할 때 모두의 소유가 생기고 모두가 풍요롭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좋은 말을 ‘금 보기를 돌처럼 하라’는 달리 쓰면 좋았을 다른 좋은 말로 경박하게 상쇄시켜 버리는 세대가 낯설지 않다. 혹 우리가 삶도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주변에 각양 소음이 넘치고, 작게 반짝이는 금이 사라진 자리에 날카롭게 깨진 돌이 널려 상처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매자의 호령보다 지혜자의 조용한 말에 귀 기울이려면 잠잠하자. 그리하여 예수님을 따르려다 되돌아선 한 부자 관원 청년의 명확한 반대편,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고 따르는 자유인의 삶 한가운데로 걸어가자. 뚜벅뚜벅 그리고 또박또박.〠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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