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시작, 수메르 문명과 성서 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3/25 [16:46]

 ©Rodrigo de La Torre     

 

베일을 드러낸 수메르 문명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명이 그리스와 로마문명의 산실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보다 앞선 기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스스로 말해 왔다. 

  

그리스 문명에 앞선 다른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440년경 신 바벨론을 방문하고 나서 그의 역사에 바벨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도시는 넒은 평지에 서 있었는데 정사각형이었고 한 쪽이 120펄롱(1펄롱은 약 200m)이었으므로 주위 4방의 길이는 480펄롱이었다. 그 크기가 이러했는데 이에 비교할 만한 도시는 없었다.”

  

그리스 문명보다 몇 세기나 앞선 신 바벨론 문명(BC 5-6세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바벨론 문명보다 2000년이나 앞선 수메르 문명이 역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수메르 문명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잊혀졌던 고대 문명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 침략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중동지방을 여행하던 유럽인들이 신기한 고대유물을 수집해서 유럽으로 가져오기도 했고, 이것이 성서에 나오는 고대 제국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를 한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7세기 이후 이슬람교 세력이 중동에서 강성했던 시기에는 접근하기 힘든 땅이 되어 별 다른 연구가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동지역의 고대문화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 것은, 179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영국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특이하게도, 나폴레옹은 5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를 침공할 때 167명의 학자들을 대동하고 가서 이집트에 대한 각종연구를 수행하게 했다. 이때 로제타석(Rosetta Stone)이 발견되었고 1822년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cois Champolion)이 해독하면서 잊혀졌던 고대 중동역사의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기독교문명의 서양학자들은 고대 중동지역 발굴들을 성서에 나오는 지명과 기록들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는데 집중했고, 수메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수메르는 성서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에 앗시리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들 가운데 아카드어 (Akkadian)와 전혀 다른 형태의 언어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는 점토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초기의 학자들은 이 언어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1860대에 들어서 독일인 쥴 오페르트(Jules Oppert)는 ‘수메르’인들의 언어라고 추정했다. 

  

수메르 쐐기문자(설형문자) 뒤에 나란히 기록되어 등장하는 아카드의 위대한 왕 사르곤(Sargon)이 자신을 ‘아카드와 수메르의 왕’이라고 호칭한데서 착안한 것이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ACC(호주기독대학) 교수(Ph.D)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