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의를 행하라

서을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3/25 [16:4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 (예레미야 22:3)

 

티브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 시가지 장면이 계속 나왔다. 잠깐 다른 일을 하고 돌아와 화면을 보니 처참하게 불탄 집안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18채의 집이 불탔다고 했다. 

  

‘전쟁이니 무슨 일이 못 일어나겠는가!’ 하고 보다가 순간 가재도구를 보고 뭔가 연속성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집중했다. 사건이 달랐다. 내가 나중에 본 장면은 서부호주 퍼스에서 화재로 탄 집들이었다. 

  

상황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었는데, 나에게는 별 시간적 차이 없이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 삶의 공통된 고통과 상실을 접하는 경험이었다. 

  

똑같이 불타고 있는 화재 장면이었지만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전제했을 때는 다소 무덤덤하게 느껴졌는데 내가 살고 있는 호주의 다른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인지하는 순간 급박함과 안타까움이 배가됐다. 

  

실상은 산불보다 전쟁이 훨씬 더 혹독할진 데도…

  

이념이 무엇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에 따라 갖게 되는 선입관이 얼마나 우리를 둔감하게 또는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지 알게 됐다. 다 같은 사람이고 모두에게 소중한 삶인데 말이다. 

  

신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 당하는 직후인 B.C. 586년까지 약 4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레미야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성구다. 

  

한편으로는 놀랍다.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개념이 가장 절망적인 시대적 위기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나 싶어 율법서의 가르침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출애굽기 23:9).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신명기 16:20). 

  

지금 이스라엘은 나그네 되었던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방 나그네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공의만을’ 따르지 않고 있다. 

  

강물처럼 흘러야 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누가 뭐라 해도 사랑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고, 만약 그렇게 하면 그 피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신명기 19:10).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피흘리기를 서슴지 않으니 그 피는 결국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세계가 이스라엘을 향해 이번 전쟁처럼 노골적으로 차가운 시선을 보낸 적이 없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가자 지구에 쏠렸던 세계의 이목이 흐트러질 즈음 구호식량을 취하기 위해 몰리는 주민을 향해 발포한 이스라엘로 인해 다시 세계가 들끓고 있다. 

  

생각해 보라. 헬기를 통해 투하되는 식품, 몰려드는 굶주린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총질하는 군인들, 비극적 참상이다. 아무리 전쟁이 배고픔, 고통, 죽음을 당연시할 만큼 양심을 접어둔, 전제된 극단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접하는 생지옥 같은 이런 장면을 누가 비난하지 않겠는가? 

  

단 하나, 철저한 두 얼굴, 즉 이스라엘은 선민, 이방인은 유기된 자로 대하는 지독한 교만과 위선을 전제하면 달라진다. 요즘 세상에 이런 가치로 무장한 나라가 존립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사족이다. 고국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가 누구인가? 채 상병 사망사건 핵심 인물로 탄핵소추 압박을 받다가 사임한 인물 아닌가? 다른 핵심 관계자들까지 이번 선거에 공천했다니, 이는 전형적인 입막음용이다.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출국 금지된 핵심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해 국외로 도피시키고, 공모자들을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으로 보호하려는 행위임이 명백하다. 이런 대사를 어떤 자세로 맞아야 할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자는 거창한 구호는 아니더라도, 박정훈 대령이 용기 내어 지키려 했던 참 군인 정신이 더럽혀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한다. 〠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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