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중)

글/성재효 사진/권순형·박태연 | 입력 : 2024/04/23 [12:17]

▲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한호 선교 135주년을 맞아 멜번 코벅(Coburg)에 위치한 맥켄지 선교사 가족묘지(Fawkner Crematorium Memorial Park)를 찾아 헌화하고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크리스찬리뷰     

 

맥켄지 선교사 가족 묘지 헌화

 

오늘 일정은 멜번 시내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코스였다. 첫 번째로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Frind of Lepers)로 불리는 맥켄지 선교사(Rev. James Noble Mackenzie, 한국명 매견시) 가족 묘지를 찾아 나섰다. 

  

묘지에는 매견시, 켈리(Mary J. Mackenzie) 선교사 부부가 나란히 장미나무 아래 안장되어 있었고, 맏딸 매혜란(Dr Helen P. Mackenzie), 둘째 딸 매혜영(Catherine M. Mackenzie) 자매가 뒷편에, 셋째 딸 루시(Lucy G. Lane) 부부, 막내 딸 실라(Shiela Krysz) 부부가 인근에  안장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각각의 묘지에 헌화했다. 

  

맥켄지 일가의 한국을 향한 헌신은 눈물겹기도 하다. 맥켄지는 페이튼 목사의 전진 정책에 따라 1910년 45세의 나이로 파송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결혼 후 오지에서 선교하다 아내를 잃고 호주로 건너와 한국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그리고 29년이란 세월을 한센병 환자를 위해 헌신했다.

  

한국에서 사역하던 중 1905년 파송 받아 사역하던 켈리 선교사(Deaconess Mary Jane Kelly)와 재혼했으며,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장남은 1922년 2살의 나이로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망했고, 부산진교회 묘지에 묻혔다. 첫째 딸 헬렌(매혜란)은 의사로, 둘째 딸 캐서린(매혜영)은 간호사로 6·25 동란 중 52년도에 부산에 와서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설립하고 한국의 산모와 영아를 돌보는데 평생을 헌신했다.  

 

▲ 매견시 선교사의 비문에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라고 적혀 있다. 매견시 선교사 부부 묘지(위 왼쪽) 매혜영 선교사와 매혜란 선교사 묘지(위 오른쪽), 셋째 딸 루시 부부 묘지(아래 왼쪽), 넷째 딸 실라 부부 묘지(아래 오른쪽) ©크리스찬리뷰     

 

▲ 맥켄지 선교사 가족묘지 앞에서 경남성시화운동본부 탐방단과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는 민보은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이날 묘지 방문에는 매혜란 선교사의 후배이자 의사로 일신기독병원에서 일생을 바친 91세의 민보은 선교사(Dr. Barbara Helen Martin, 1964~1995)가 함께 했다. 

  

민보은 선교사는 산부인과 수련의 선배인 매혜란 선교사의 안식년을 위해 일 년 예정으로 한국으로 떠났으나 차일피일 귀국을 늦추다가 일신병원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채 31년을 넘겼다. 은퇴 후에는 멜번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고 방문했다. 오찬 모임에 초청받은 민 선교사는 식사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휴 커를(거열휴) 선교사 가족 묘지

  

▲ 휴 커를(거열휴) 선교사의 가족묘지 ©크리스찬리뷰     

 

▲ 박스힐 공원묘원에 잠들고 있는 휴 커를(거열휴) 선교사의 가족묘지를 찾은 경남성시화 탐방단이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두 번째 찾은 곳은 멜번 시가지에서 남쪽 박스 힐 공원묘원에 있는 거열휴 선교사(Dr. Hugh Currell) 가족묘지에 헌화했다. 가족묘지에는 선교사와 부인 에델 커를(Ethel Currell, 본명 Anstey), 아들 휴 다니엘, 두 딸 에델과 프랜시스, 그리고 에델의 딸 쥬디스 프랜시스의 딸 피오나가 합장되어 있 있다. 

  

거열휴 선교사의 묘지 방문은 경남성시화운동본부로서는 처음이었다. 

  

거열휴 선교사는 영국 태생으로 의학을 전공하고 1899년 호주로 건너와 1902년 한국으로 파송됐다. 1905년 진주로 옮겨 선교지부를 세우고 초기에는 전도에 힘써 진주교회, 하동교회 등을 세우고 지방 순회 사역을 감당했다. 

  

▲ 호주 선교사와 가족(후손)들을 초청해서 가진 오찬 모임에서 민보은 선교사가 인사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 경남성시화에서 마련한 한식 뷔페로 사랑의 오찬을 함께 나누었다.©크리스찬리뷰     

 

▲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이경은 목사가 쉐론 포드 씨에게 백서를 전달했다.©크리스찬리뷰   

 

▲ 모나쉬대학 미디어학과 한길수 교수에게 백서를 전달하는 이경은 목사.©크리스찬리뷰     

 

그리고 1910년 호주 빅토리아주 장로교 해외 선교부의 페이튼 목사가 주도하는 전진정책에 따라 진주에 배돈병원을 설립하고 초대 병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경남에서의 선교사 생활은 오래하지 못하고 부인의 질병으로 1915년 호주로 귀국하였으며, 이후 멜번에서 여생을 보냈다.

  

선교사와 가족 초청 오찬 모임

 

이날 세 번째 방문지는 선교사와 가족 초청 오찬 모임을 멜번순복음교회(담임목사 최주호)에서 가졌다. 오전에 만났던 민보은 선교사가 조카(Kate Verghese)와 함께 참석했고, 노승배 선교사(Rev. Barry Maxwell Rowe, 1965~1977 서울과 울산)의 딸 쉐론 포드(Sherrin Ford)와 남편(Graham Ford)과 그녀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모나쉬대학 미디어학과 한길수  교수가 배석했다.

  

▲ 노승배 선교사의 딸 쉐론 포드 씨(오른쪽)가 동요 ‘산토끼’를 율동과 함께 부르자 민보은 선교사가 함께 따라서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사전 예약은 이들 외에 “Bill Ford, Hellen과 Graeme Mckinnon, Julie New, Kate Verghese 등이 참석하기로 했으나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라고 민보은 선교사가 설명했다. 

  

식사 후 민 선교사와 가족들, 그리고 한길수 교수에게 백서와 건강식품 선물을 전달했으며, 필자가 백서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민보은 선교사는 2010년 10월 2일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식 행사 초청에 이어 2019년 한호선교 130주년 2차 초청 때도 한국을 방문하였고, 호주에서 한호 선교 관계의 교두보 역할을 맡아 오고 있다. 백서에도 많은 사진이 게재되어 있고 이를 확인하고는 무척 기뻐했다.

  

쉐론 포드는 지난 2010년 10월 2일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 때 초청돼 참가했었다. 당시 아버지(노승배 선교사)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부산진에 있는 일신여학교 교실에서 불렀던 '산토끼' 노래를 다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쉐론 포드는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 민보은 선교사가 "우리 합창하자"라고 독려해, 참석자 모두가 합창과 함께 율동을 함으로써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날 점심은 한식 뷔페로 경남성시화에서 준비했다.

  

멘지스 묘지 방문 

  

탐방단 일행은 오찬 모임을 마치고 멜번 서북쪽에 있는 발라렛(Ballarat) 지방으로 향했다. 멘지스 선교사(Miss Belle Menzies, 한국명 민지사)의 무덤과 모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멘지스 무덤을 찾았다. 가족묘지로 합장돼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무덤을 찾은 것은 지난해 부산진교회에서 방문단이 처음 찾았다고 했다. 멜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그동안 별로 찾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가이드가 부산진교회 방문단을 인솔했던 터라 묘지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묘지에 헌화했다. 

  

멘지스 선교사는 해방 전에 한국에 왔던 선교사 78명 중 가장 뛰어난 선교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2차 파송인 1891년 10월 왔다가 병으로 1924년 귀국할 때까지 처녀의 몸으로 고아원을 세워 떠돌이 아이들을 돌보고, 이들을 위하여 일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쓰는 등 한국민을 일깨우는 선각자의 길을 걸었다. 

  

멘지스는 그녀가 세운 미우라 고아원 출신을 양녀(민복기)로 삼아 돌보아 주었고, 이 인연은 그가 귀국한 뒤에까지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녀는 2000년대 초 부산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멘지스는 호주 귀국 후 10년 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다 1935년 사망했다.

  

▲ 멜번 서북쪽 발라렛 지방에 있는멘지스 선교사의 묘소를 찾은 경남성시화 탐방단.©크리스찬리뷰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2022년 제103주년 3·1절을 맞이하여 호주 여성 선교사들을 독립유공자로 선정했다. 포상자는 부산일신여학교 교장으로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를 이끈 마가렛 데이비스(Miss Margaret Davies), 여학교 학생감독 벨레 멘지스(Miss Belle Menzies), 데이지 호킹(Miss Daisy Hocking) 등 호주 여성 선교사 3인이다.

  

3인의 선교사는 부산과 진주, 통영 등지에서 교육자로 헌신했으며, 금년 3월에 ‘이달의 독립 유공자’로 3인이 선정돼 우리 일행이 이번 탐방을 하기 직전에 발표됐다.

  

멘지스 모 교회 방문

 

우리 일행은 인근에 있는 멘지스 선교사의 모 교회(Ebenezer Church)를 방문했다. 교회에서는 토비 매킨토시 담임목사(Rev. Toby Mcintosh)가 우리 일행을 교회 뜰 입구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토비 목사는 건물 입구 벽면에 있는 현판부터 소개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로 시작된 현판의 내용은 교회의 연혁과 설립 목적을 담고 있으나, 멘지스의 유치원 교육관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토비 목사는  "멘지스가 1880년도 교회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세웠던 교육방침은 ‘자신의 능력으로 사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그 당시부터 맨지스는 탁월한 교육자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고, 이 재능이 경남에 파송된 후에도 발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교회는 멘지스의 교육방침을 아직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비 목사는 예배당과 교육관을 안내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담임을 맡은 이후 30~40명 출석하던 교인 수가 200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젊은 목사이면서도 교회 역사에 대해 해박했다는 점이다. 필자가 예배당에서 백서를 전달하기 전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 엥겔 선교사(Rev. Gelson Engel, 한국명 왕길지)의 사진이 보이자 사진을 가리키며 "이분이 우리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분"이라고 지적했다. 

  

왕길지 선교사는 클라라 바스(MissClara Bath)와 1894년 12월 19일 인도 푸나에서 결혼했는데 부인의 질병이 심해진 후 1898년 호주로 돌아왔다. 왕길지는 하버드 칼리지의 교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선교사를 지원했다

  

그는 호주선교회의 여선교부의 김독자로 임명되었고 1900년 10월 29일 가족과 함께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부산진교회와 동래교회의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그는 40년 동안 선교정책과 정책을 수립하는 등지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선교회의 거물이었다. 

  

부인 클라라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1906년 3월 시드니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4월 2일 사망했다.

  

왕길지와 아그네스는 1907년 7월 3일 아그네스의 모교회인 발라랏에 있는 에벨에젤교회에서 결혼했고 그들은 9월 17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117년 전의 일이다. 왕길지 목사는 이 교회와 전혀 상관없고 다만 이 교회는 부인 아그네스의 모 교회이다.

  

그런데 이 젊은 목사가 사진을 얼핏 보고 어떻게 알았을까? 필자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자기 당대에 있었던 행사인양 기억하고 있는 토비 목사의 교회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놀라웠다. 교회에 애정이 있기에 교회 역사에 해박하고, 그래서 교회 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젊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이 솟았다.

  

이 교회 방문을 통하여 서양에서도 목사의 목회 태도에 따라 교회 부흥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바쁜 여정에도 교회 부흥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백서와 선물을 전달했다.

  

▲ 백서 저자 성재효 장로가 토비 매킨토시 목사에게 에벤에젤교회와 맨지스 선교사 관련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크리스찬리뷰     

 

그레이트 오션 로드 따라 12사도 바위 관광 

  

우리 일행은 모처럼 여유를 갖고 멜번에서의 하루를 부담 없이 보냈다. 멜번에서 왕복 600km 남서쪽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를 따라 ‘12사도 바위’ 관광에 나섰다. 왕복 8시간이 소요되는 먼 여정이었다. 그러나 일행은 초록빛 남극 바다의 경관에 감탄하며, 이 세계적인 명소를 다녀오는데 피곤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성재효|경남·부산·울산 기독교 뿌리 찾기 백서 편집인, 창원섬김의교회 장로, 사회복지법인 실버덴 대표이사

권순형|본지 발행인, 박태연|본지 사진기자(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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