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묻은 불처럼 일어난다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4/23 [12:35]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

 

탈나지 않도록 감춘 일, 한두 개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듯하다. 오늘 성구는 이렇게 말한다. 감추지 말라. 다 드러난다. 벌거벗은 것같이. 결산을 받으실 하나님의 눈 앞에. ‘드러난다’는 헬라어 ‘트라켈리조’는 원래 ‘죽이는 제물의 식도를 드러낸다’는 의미이니, 무섭다. 섬뜩하게 무섭다. 

  

방안은 성결과 회개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숨겨야 할 떳떳지 못한 일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허물과 죄는 바로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의인, 회개하는 죄인을 다 같이 사랑하시고 품어 살리신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제치고,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두렵고 사람 앞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쉽게 거짓을 말하고, 잘못을 인지한 후에도 고집 피운다. 이익, 체면, 지위, 평판 때문에 탐욕스러운 동기를 세탁하고, 모략의 과정을 미화하고, 과장된 결과를 홍보한다. 

  

위선자가 따로 없다.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있는 그대로 뒤탈 없이 살면 되는데…

  

어떤 사건이나 국면에서 결정적 순간을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모습, 참 의도, 진짜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선택이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말한다. ‘묻은 불이 일어난다’라는 속담처럼 ‘뒤탈 없도록 잘 감춰둔 일일지라도 결국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묻는다고 끝이 아니다. 많은 경우, ‘됐다!’고 안도하는 그 순간부터 진실의 불씨는 타오른다. 

  

통상 이런 순간은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된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고 자꾸 피하여 미루다 보면, 진실의 순간이 더욱 재앙적일 수 있다. 해결되지 않은 채 차곡차곡 쌓여온 짐을 일순간에 감당해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삶의 차원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 영역으로 가도 마찬가지다. 진실의 순간에는 진심뿐 아니라 허위 역시 폭로된다. 정권이 외치던 공정과 상식 그리고 자유, 모두 다 좋은 말이지만 불행하게도 개념이 달랐다. 

  

진실을 전파하기 위해서보다는 거짓을 진실로 믿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해 온 수사학의 폐해가 크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아무리 비비 꼬아놓아도 진실이 드러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여러 진영에서 잘 싸워준 덕분에, 충분히 객관적인 관점을 견지하던 입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혼란스러운 현상을 지켜보던 다수가 판단을 내렸다. 

  

이번 총선은 심판의 총선이었다. 

  

시민의 법정이라고 하는 총선이 끝났다. ‘입틀막 정권’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왜곡된 언론 환경과 폭압적 사회 분위기로 자기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던 다수의 국민이 투표라는 권리행사를 통해 심판했다. 

  

결과는 야당 압승, 여당 참패다. 결과를 놓고 다양한 논평이 쏟아지나 기실 그 조짐은 이미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과정을 통해 분출됐고,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폭증했으며 선거를 통해 폭발했다. 

  

이번 선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파’를 사전에서 찾아 조합을 시도해 봤다. 대파(大파 : 파의 하나로, 줄기가 길고 굵은 것)로 인해 발생한 성난 민심의 대파(大波 : 큰 파도)로 대파(大破 : 크게 부서짐)된 셈이니, 누구를 탓하리. 

  

아무쪼록 모국 대한민국의 정치가 안정되어 대파(代播 : 오랜 가뭄 또는 홍수로 씨 뿌릴 시기를 놓쳐, 심으려고 한 곡식을 심지 못한 채, 다른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일)하는 일은 없기를 소망한다. 

  

묻은 불이 일어나려면 불씨가 살아 있어야 가능하지만, 진실은 불씨가 꺼진 후라도 스스로 들고 일어난다. 결산을 받으실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크리스찬은 말해 무엇 하리, 이런 믿음이 우리를 투명하고 정의로운 삶으로 이끈다.〠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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