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왜 일어나야 하는가?(2)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10/28 [15:02]

중세기는 문자 그대로 암흑의 시대였다. ‘암흑’이라 할 때 빛을 잃은 어두움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빛을 다시 찾은 광복(光復)이라 할 수 있다.

중세기 로마교회는 빛을 되찾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을 이단(異端)이라 규정하고 종교재판소(Inquisition)을 설치했다. 종교재판소는 이단을 찾아내어 심문하고 처벌하는 검찰이 생겨났다. 검찰은 이단을 찾아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떤 마을에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보고를 받으면 검찰이 그를 잡아다가 심문을 했다. 심문하는 방법의 하나로 고문이 있었다. 그리고 이단자로 판결이 나면 재산이 몰수되어 반은 로마정부에 반은 로마교회가 차지했다. 그리고 이단자는 불에 태워 죽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익자들의 감독 밑에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

종교개혁시대에 나타난 순교자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를 손꼽아 들 수 있다. 교황의 무오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탈선한 교리에 대하여 공격했다. 그는 교황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가 최상임을 주장하고 친히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로부터 영어로 번역하는데 성공하여 성경보급을 통한 개혁운동의 기초를 닦았다.

위클리프는 영국에서 옥스포드대학의 교수로 있었는데 그는 개혁의 선구자로서 교황의 영국 내정간섭을 거절하고 결국 학교에서 면직을 당했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 목사로 지내다가 별세했는데 그후 31년이 지나서 콘스탄스대회(1414-1418)에서 이단자로 정죄되어 그의 유골을 무덤에서 파내어 태워 버렸다. 살아서 박해를 받다가 죽어서 시체로 순교를 당한  것이다.

또한 존 후스(John Huss, 1369-1415)는 14세기 보헤미아의 개혁자로서 대학의 교수이자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 당시 교황정치의 부패를 공격하고 특히 면죄부 판매제도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1415년 7월, 화형(火刑)으로 순교를 당했다. 

이때의 교회는 무섭고 악독한 기관이 되어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세워진 교회가 세상 권세와 합세하여 그렇게 변해 버렸다. 그런 시대에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이 마틴 루터(1483년 11월 10일 출생)이다. 그는 청년의 몸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하여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신부가 되었다(1507년).

수도원에서 그는 교회의 법에 따라 힘써 기도했고, 고해성사를 했고(죄를 회개하는 것), 금식하며 고행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자 했다. 루터는 아무리 힘써도 마음에 구원의 확신과 평화가 없었다.

성모 마리아에게 간곡한 기도를 드렸다. 베드로와 요한 같은 성자들에게도 호소해 보았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도, 베드로도, 요한 같은 성자들고 도움을 주지 못했다.그의 외형적인 생활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으리만큼 훌륭했다. 성실하고 진실하고 경건한 생활이었다

온갖 공적을 쌓으며 고행을 하고 노력했지만 그런 것으로 죄사함도 받고 구원의 기쁨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발견한 것이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하박국 2:4).

루터는 이 진리를 깨닫고 이 말씀을 모토(motto)로 종교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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