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가 아름답다

이규현/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1/28 [21:44]
아주 오래전에 외국 어느 나라의 섬, 유명한 공원 안에 있는 장미농장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다양한 색채를 띤 장미들로 꾸며진 공원을 거닐면서 진한 장미향을 품어내는 꽃들 사이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고 멈추어 섰던 기억이 난다. 일순간 아름다움에 최면이 걸려 빠져 나오지 못했었던 것이다.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해도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라면 댓가지불을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다. 대가의 심장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음악, 화가의 혼이 담긴 그림, 그리고 인격으로 빚어진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은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고 무딘 감성에 불을 지른다.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든다. 아름다움에 환성을 지르고 경이로움에 넋을 놓게 한다. 아름다움은 쪼그라든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들고 우울한 삶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아름다운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인해 지루해 하거나 지치는 일은 거의 없다.

태초의 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다.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손끝을 거친 모든 만물은 아름다웠다. 창조의 절정인 인간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하나님께서 여인을 만들기 위해 잠재웠던 아담이 눈을 떴을 때 에덴의 저편에서 다가온 하와의 아름다움은 숨을 멎게 만들었다. 

그런데 죄가 아름다움을 깨뜨려 버렸다. 죄는 추함을 위장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거짓된 아름다움이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위장된 아름다움이 널려져 있다. 조작된 아름다움은 얼마 못간다. 금방 식상해진다. 죄성을 가진 인간의 손이 많이 닿을수록 아름다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울수록 좋다. 인간이 개발하려 들다가 깨뜨려진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은가?  성형수술로 얼굴이 더 망가진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그것은 마치 대가에 의해 완성한 명작에 아마추어 작가가 괜히 손을 대어 수정해보려고 하는 무모함과 같다.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조작된 아름다움에 식상해져 있다. 요란하긴 한데 끌림이 없는, 화려한데 왠지 부담스러운, 비싸긴 한데 사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여인의 화장술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진한 화장보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화려한 꽃꽂이보다는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들꽃이 더 아름답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직함들을 아무리 빼곡히 진열한 명함을 건낸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그를 가름할 수 없다. 자기소개가 길수록 도리어 의심스럽다. 인위적인 자기과시는 자칫하면 위선이 된다. 자신의 연약함을 무리하게 감추려 들거나 미화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더욱 자신을 추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꾸미기 보다 솔직해 지는 것, 움켜쥠보다 내려놓음, 꽉 채움보다 여백을 둘 때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줄 아는 것, 자신의 연약함을 부정하지 않는 것,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꾸며진 아름다움에 속아 지친 세상을 살고 있다. 허위의 아름다움이 아닌 참된 아름다움으로 회복된 세상을 보고 싶다. 그것은 창조의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다. 있는 그대로의, 하늘이 하늘이고, 바다가 바다인 것처럼, 내가 나이고 당신은 당신으로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이규현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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