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환자 수백 명 병원 밖에서 기다려

유진벨재단 인세반 회장 방북보고회

글|김명동,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3/28 [11:52]

지난 2007년부터 북한의 ‘내성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유진벨재단 호주지부(지부장 서문해주 장로)가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인세반 (60. 미국명 스테판 윈 린턴)회장을 초청, 그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3월 7일 스트라스필드 소재의 두란노학원에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인세반 회장은 “환자들의 호응이 예상을 뛰어넘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며 “재단이 지원하는 평양의 한 결핵요양소를 찾았는데, 뜻밖에도 수백 명이 맹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인세반 박사가 시드니한인교회목회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인 회장은 “내성결핵환자 치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불과 12명 정도의 내성결핵 의심환자가 우리를 찾았다”며 “그동안 우리가 지원하는 약 효과가 입소문이 나서 그런지 평양 인근 환자들까지 급히 몰려와 우리뿐 아니라 동행한 북한 관리들도 놀랐다”고 전했다.

내성결핵은 일반 결핵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2차 항생제를 써야 하는 질병이다. 약값이 워낙 고가인데다 완치율도 낮아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내성결핵환자에게서 전염된 환자는 바로 내성결핵이 되기 때문에 확산될 경우 에이즈와 같은 위협적인 질병이 될 수도 있다.

인 회장은 “워낙 약값이 비싸 환자와 후원자의 ‘1대 1 결연’ 방식으로 지원 사업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재단은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방북, 환자들로부터 객담(가래)을 채취해 내성결핵 여부를 테스트한 뒤 보통 2-3년간 고가의 약을 먹어야 하는 내성 확진 환자들에게 후원자의 이름이 적힌 6개월치 약상자를 공급하고 있다.

인 회장은 “일반 결핵환자들은 1차 치료제를 6개월 정도 사용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내성결핵은 3년 정도 약을 먹어야 한다.”면서 “지속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100% 살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북한 측에서도 결핵치료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평북 평남 남포 평양 4곳에 내성결핵전문병원을 새로 마련, 재단 측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동영상 자료를 10분가량 틀어주었다. 결핵을 앓는 북한의 환자들에게 약을 전해주고 객담을 받아내는 모습과 3년간 내성 결핵약을 복용한 뒤 완쾌한 환자들이 종이학으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밝게 웃는 장면 등이 나온다. 후원자를 위해 제작된 동영상에서 인 회장은 “결핵병원을 찾아가는 길은 꼬불꼬불하고 험합니다. (그래도)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찡했다.

유진벨 재단 관계자는 2010년 10월 26일부터 여드레 동안 북한을 다시 찾았다. 물론 인 회장도 같이 갔다. 지난해만 세 번째 방북이었다. 평안남도 순천과 평안북도 정주, 곽산 등지, 그리고 평양시 룡성과 남포 지역의 내성결핵센터와 결핵예방원 소아 병동을 찾았다.

이 재단은 1997년부터 10년간 25만 명분의 결핵약을 꾸준히 북한에 전달해왔다. 그러다 2007년부터 만성 환자의 객담을 채취, 적합한 결핵약을 개별 처방해 지원하는 맞춤형 내성결핵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2009년 300명에게 약을 전하다 2010년에는 약 600명으로 치료환자 수를 늘렸다. 그러나 재단의 경제적 상황으로 지금은 550명분의 약을 전달하고 있다.

질의 응답시간이 되자 인 회장은 “북한의 권력과 정치 이야기는 제발 묻지 마라”며 손을 저었다.

유진벨 재단은 한국에 파송된 유진벨 선교사의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그의 4대손인 인 회장에 의해 설립된 대북지원 단체다. 창립 초기에는 북한에 옥수수나 곡물을 제공했으나 1997년 북한 당국으로부터 결핵퇴치 지원 요청을 받은 이래 의료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북한 면적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결핵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내성결핵 치료 본격화

- 북한에 결핵 환자 수는 얼마나 됩니까.

 “북한에 얼마나 많은 내성결핵환자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결핵을 앓는 이들이 유진벨의 방문에 맞춰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어요, 하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다 받아줄 수 없어요. 그게 제일 가슴 아파요.”
 
▲ 간담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       ©크리스찬리뷰

- 후원자와 후원액은 어떤가요.

 “최근에는 별로 좋지 않아요.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고 남북관계에 따라 들쑥날쑥합니다. 고맙게도 우리가 약을 보내고 방문하는 일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한평생 만난 적도, 인척관계도 아닌 후원자들 덕분에 꾸려가고 있어요. 갑자기 환자를 많이 받았다가 후원이 줄어들면 난감하지요. 우리는 그런 것까지 감안해 3년 계획을 세워 추진합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후원자들은 정말로 다양합니다. 저는 개신교 선교사이지만 카톨릭 신부도 있고 개신교, 불교, 사회단체 다 있습니다. 거기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유진벨은 신분과 존경성을 지키면서 같이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단체들이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파벌로 경쟁으로 또 뭐다 하면서 논쟁거리가 많잖아요. 유진벨은 정치하고는 벽을 쌓고 일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후원 모금을 한다, 일 년 중 절반은 한국, 나머지 절반은 미국과 해외에서 보낸다고 한다. 대개가 이곳저곳에서 ‘구걸’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한국 후원인 수가 해외보다 많다. 해외 후원인도 대개가 한국 교포”라고 설명했다.

- 유진벨도 정부지원을 받지 않나요.

 “ 받았었는데요, 지금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에서 지원해 주면 좋지요. 그러나 정부에 얽매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엄청나게 유리한 점이지요. 북한과 상대하는 것에서도 유리합니다. 한 사람의 결핵환자를 돕는데 3년이나 걸리는데 정부정책에 따라 돈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면 곤란하죠. 유진벨은 절대 민간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민간을 가장해 정치하지 않아요. 그러면 신뢰가 깨집니다,

지금은 NGO들도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말단 공무원’이 됐어요. 엄밀히 말해 민간이 아니죠. 말단 공무원으로 움직이는 조직과 사람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나요? 힘들어요.”

- 사실 북한을 돕는데 많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돕고는 싶은데 믿을 수가 없다는 거죠.

 “대게 다른 국제기구나 제법 큰 NGO는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우리는 후원자의 이름으로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북한에 갈 때마다 약을 보내는 후원자의 목록을 함께 준비해 북한 의료진과 환자에게 직접 전달해요. 지원하는 이가 단체가 아니라 후원자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진벨은 후원자의 심부름꾼입니다.”

 
나는 청지기, 신뢰가 우선

그는 스스로 “청지기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러면서 “결핵 퇴치는 바로 통일정책”임을 강조했다. 일종의 통일 비용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환자 관리가 중요합니다. 관리가 안되면 환자가 약을 중간에 끊게 되고, 이 약 저 약 쓰다 내성만 키워요. 내성 환자에게 감염된 이는 처음부터 내성결핵에 걸립니다. 아주 불행한 경우죠. 일반 결핵은 4가지 약을 처방해 4만~5만 원 하는 치료약을 6개월 정도 복용하면 낫지만 내성으로 넘어가면 치료가 복잡해집니다.

약값이 100배나 비싸고 회복율도 60%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핵이 전염병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결핵환자를 빨라 발견해서 치료하는 것이 향후 의료비를 줄이는 길입니다.
 
▲     유진벨로부터 후원자들이 보내 준 결핵 약을 전달받은 북한 주민들.     ©유진벨

보세요. 이제 남북이 왕래하게 되면 결핵이 옮겨갈 수 있어요. 사실 중국 동북쪽에 결핵이 엄청 많아요. 북한의 결핵도 그곳에서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어요. 지금 결핵은 글로벌한, 국경 없는 병입니다.”

인세반 회장 역시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결핵을 두 번이나 앓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휴 린턴(1926-1984. 한국명 인휴) 목사의 6남매(그는 5남1녀 중 둘째다) 중 첫째(데이비드 린턴)와 셋째(제임스 린턴)도 그 몹쓸 결핵을 앓았다. 그의 어머니 로이스 린턴 여사는 순천기독재활원과 요양소를 세우는 등 결핵퇴치에 헌신을 한 인물이다. 가족이 결핵과 투쟁한 사람이다.

인 회장은 1895년 미국 남장로교 소속으로 파송된 유진벨 선교사의 외종손자로 1950년 미국에서 태어나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서 자랐다.

-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NGO 단체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을 텐데요.

 “대북관계에서 사람들이 행하는 가장 큰 실수는 북한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음식, 약, 옷, 또는 보금자리보다도 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수년간 살며 일한 이방인으로서, 저는 한국의 부유함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엔 아주 많은 엘리트, 풍족한 에너지,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부족한 것, 특히 남한과 북한 사이에 가장 부족한 것은 신뢰입니다. 이념이 다르더라도 신뢰가 먼저 구축되어야 접근할 수 있어요. 물론 신뢰를 쌓는 것 역시 반드시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시간만 흐르길 기다리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서로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북의 한국인이 공동의 선을 향해 함께 일할 때, 신뢰가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사업도 아니고 더 좋은 세상 만드는 사업도 아닙니다. 오로지 후원자들이 북에 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는 당나귀이자 북에서 원하는 것을 하는 아주 국한된 미션입니다. 그러니까 몰래 성경책을 건넨다? 이런 장난을 치면 안됩니다. 환자들은 죽기 살기로 찾아오는데, 정치적 상황을 캐내려 해선 곤란하죠, 민간이라는 신분이 무너지면 사업 전체가 무너집니다.”

인세반 회장은 지난 해 제8회 민족화해상 개인부문을 수상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매년 시상하는 민족화해상은 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인 회장은 “내성결핵은 방치시 일 년에 15명 정도의 비율로 똑같은 내성환자를 확산시켜 향후 통일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북측 당국에서도 내성결핵 전문센터의 설치 의향을 보일 정도로 관심이 고조된 지금이야말로 북한 결핵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적기”라면서 후원 동참을 호소했다.〠

 

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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