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예배하는 예배자

“물을 좀 달라하시니”(요한복음 4:7~9)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8/29 [10:40]
사마리아 여인이 찾아간 우물 곁에는 웬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한눈에 그 남자가 유대인임을 알아보았다. 그 낯선 유대인 남자가 여인에게 말을 걸어왔다. 본래 유대인은 사마리아인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는다. 설령 같은 유대인이라고 해도 유대인 남자가 거리에서 처음 보는 유대인 여자에게 말을 거는 법은 없다.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 남자가 거리에서 처음 보는 여인에게, 그것도 평소 상종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건네왔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일은 있을 수 없는 일, 상상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을!

 
물을 좀 달라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셨던 말씀은 “물을 좀 달라”는 것이다. 낯선 여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요, 더우기 사마리아인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부정한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수치와 부정을 기꺼이 감내하시며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갈증이 나셨다. 모두에게 버림 받은 그 여인, 불쌍하고 고독한 그 여인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으셨다. 그 여인을 사랑하셨기에 유대에서 사마리아까지 그 먼 길을 피곤하셔도 걷고 또 걸어오셨다. 그 여인을 사랑하셨기에 낮 12시의 땡볕 아래에서 기다리셨다. 그 여인을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먼저 말을 건네오셨다.

물을 달라고 하신 예수님의 속내를 살펴보면 이러셨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예전부터 관심 있던 알고 있니? 내가 유대땅에서 부터 널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까지 그 먼 길을 걸어왔단다. 네가 너무도 보고 싶어서 낮 12시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어. 너에게 말을 건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부정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난 아무래도 괜찮아. 아무도 널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넌 나에게 특별한 존재야. 왜냐하면 난 너를 사랑하거든’

정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으셨다. 그러면 이 일이 사마리아 여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이라면 정말 못할 일이 없으셨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역사 속으로 찾아오셨다.

절대적인 초월자 하나님이 스스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다. 그것도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의 동등한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지니신 인간의 몸이 되셨다. 이건 하나님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겪어야할 수모와 조롱, 채찍과 십자가의 형벌까지도 홀로 당하셨다. 그리고 끝내 십자가에서 생명을 걸고 우리를 건져주셨다. 이것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이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왜 하나님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가? 대답은 단 하나,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라면 못하실 일이 정녕 아무 것도 없을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와 “물을 좀 달라”며 말을 건네신다. 그것은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내가 못할 일이 뭐 있겠니”라고 하시는 주님의 속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너 목마르지 않니?

예수님이 “물을 좀 달라”고 하신 두 번째 이유는 “너 목마르지 않니?”라고 되물으시는 것이다. “우물을 마시고 또 마셔도 목마르지?”라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선물할 때, 타인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할 때면 어떤 선물을 해야할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닙다. 그때 내가 받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면 쉽게 선물을 결정할 수 있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선물이 상대방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물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 예수님은 정작 그 여인으로부터 “물을 좀 주세요”라는 말을 듣기 원하셨다.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한 이 여인의 심령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겠는가? 메마른 심령을 축이기 위해 기껏해야 이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야곱의 우물을 찾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야곱의 우물은 아무리 마셔도 그녀의 갈증을 풀어줄 수가 없었다. 홍수에 마실 물 없다고, 우물 앞에 서 있는 여인의 심령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길 원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을 좀 달라”고 하셨던 것인데, 그 말씀은 정말 그녀가 원하고 바라는 것, 즉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는 역설적인 표현이셨다. 

 
하나님의 마음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선물할 때, 타인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된다”고 했다.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실 때, 그 말씀은 반대로 우리에게 물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더 확대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속내는 하나님이 쉬지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뜻이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며 항상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십계명의 제1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 오직 너희만을 사랑하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 주일에는 반드시 너희를 만나러 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간음하지 말라고”하시는 말씀은 “내가 어떠한 경우에도 너희와의 사랑을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다짐이며, 설령 수치를 당하고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일이 생겨도 너희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당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일편단심 사랑의 고백인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 분부, 요청, 권면, 명령까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시고, 또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해 주시고, 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본심인 것을 믿어야 한다. 

 
삶으로 예배하는 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목 마르다”(요 19:28)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다. 그것으로 구원은 완성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여전히 목마르다고 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모든 것을 이루신 주님이셨건만 왜 여전히 목마르다고 하셨을까?

이 세상 천지를 바라보자. 어느 한 곳도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치 않은 곳이 없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은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재난으로 신음하고 고통받고 낮 12시처럼 메말라 있다. 온 세상 천지가 예수 그리스도가 부어주시는 생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전히 목이 마르다고 하신 것이다.

인류의 구원은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구원의 생수가 십자가를 타고 온 땅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래서 메마른 영혼들, 신음하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적셔야 한다. 그 통로가 바로 우리 예배자들이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통해 메마른 이 땅을 적시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예배자들의 손과 발을 통로로 이 땅에 목마른 모든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부어주길 원하신다.

예배는 삶이라는 말이 있다. 예배가 예배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 예배당에서 시작되어 주중에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즉, 주일예배를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생수가 주중에 우리의 삶을 통로로 우리의 이웃들, 고통받고 메말라 버린 영혼을 지닌 사마리아 여인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예배가 삶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삶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 “내가 목마르다”시며!〠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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