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재림 때, 믿음 필요없다”

장운철ㅣ교회와신앙 | 입력 : 2011/09/19 [08:19]

이단자들의 주장들 중 상당 부분은 정말 허술하다. ‘재림예수가 나타났다’, ‘예수님의 신부가 바로 이 사람이다’는 등 코미디 같은 말들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이단자들의 주장에 일부 성도들이 미혹 당하기도 한다. 원인은 이단자들이 성경을 내밀면서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성경구절은 이런 뜻이다’는 식으로 접근할 때 성도들은 종종 반박하기 힘들어 한다.

“예수 재림 때, 믿음 필요없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단자들이 성경을 제시한다. 누가복음 18:8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개역개정).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음을 보지 않겠다는 의미다’라고 말이다. 이는 기성교회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단체로 성도들을 유인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단자들의 전략이다.

 
   
 
정말, 눅 18:8은 ‘믿음’이 필요없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많은 성경구절들(요 1:12, 요 3:16 등)과 성경이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지 않은가? 어떻게 된 것일까? 본문의 올바른 뜻에 접근하기 위해서 다른 번역성경은 눅 18:8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백성들에게 정의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이 세상에서 이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눅 18:8, 쉬운성경).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눅 18:8, 공동번역).

“I tell you, he will quickly grant justice to them. And yet,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e faith on earth?”(눅 18:8, NRSV).

위 성경들은 모두 ‘믿음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문으로 마쳤다. 쉬운성경은 ‘이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믿음이 특정 부분을 가리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눅 18:8은 눅18:1부터 이어져오는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따라서 눅18:8은 눅 18:1-눅 18:8의 전체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함이 자연스럽다.

눅 18:1은, 내용 흐름이 ‘기도’임을 어렵지 않게 잘 알려주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기도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낙심하지 말고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이 이 단락의 주제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 18:1, 개역개정)

눅 18:2부터는 위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비유로 설명해 주고 있다. 한 재판장과 과부가 등장한다. 재판장은 한 마디로 재판장이 될 자격이 없는 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이다.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그렇지만 변호인을 세울만한 입장이 되지 않는 가난한 형편이다. 그 과부는 재판장을 지속적으로 찾아가 자신의 억울한 일을 풀어달라고 호소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과부의 끈질긴 간청에 불의한 재판장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과부의 원한을 풀어준 것이다.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고 말했다(눅 18:7). 가진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눅 18:8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믿음’이 지시하는 구체적인 바는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믿음에 대한 교훈이다(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누가복음, 규장, 1998, p. 268). 기도에 대한 믿음이지, 구원에 관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따라서 이단자들이 주장하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예수 믿음’이 필요없다는 의미의 구절이 아니다.

둘째, ‘믿음을 보겠느냐?’는 질문은 ‘믿음을 볼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의 수사의문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 재림 때까지 끈질긴 기도의 믿음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강조 문장인 것이다.

이는 기도에 관한 앞선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 한다(그랜트오스본, LAB주석시리즈 누가복음, 성서유니온선교회, 2003, p. 663). 눅 11: 5-13은 ‘기도의 응답’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고 있다. 마지막 절인 13절은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마친다. 무슨 말인가? 성령을 주지 않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반드시 주겠다는 말인가? 후자다. 역시 수사의문문이다. 반드시 주겠다는 말의 강조다.

따라서 눅 18:8을 통해 ‘예수 재림 때, 믿음 필요없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오히려 그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믿음은 낙심하지 않는 끈질긴 기도에 관한 것이다.
 
 
출처ㅣ장운철/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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