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가장 큰 분으로 인정하는 예배자

“더 크니이까”(요한복음 4:9-15)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1/30 [14:25]

수가성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신 예수님은 때마침 물을 긷기 위해 우물을 찾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도 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라며 반문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눈 앞에 두고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군인 줄 알았더라면 생수를 주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 하셨지만, 여인은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며 물었다.

 
예수보다 더 큰 사람, 야곱

이 우물은 그냥 우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 야곱이 준 우물이라는 것이다. 그 세월이 장장 2천 년이다. 야곱 한 사람을 통해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과 짐승들이 물을 마셨다면, 야곱은 참으로 큰 사람이 맞다. 더욱이 물이 귀한 사마리아 땅에서 2천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마셔왔다면 그들에게 야곱은 정말 큰 사람이었다.

그래서 생수를 주시겠다는 예수님께 따지듯이 물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절대로 야곱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병자를 치유하시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던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이방인, 로마인들의 손을 빌려 채찍질하고 얼굴을 때리고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왜 그랬을까? 어느 날부턴가 예수님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회당에서 강과 산에서 말씀을 가르치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귀신을 내어좇으셨고 죽은 자도 살리셨다. 그 결과 예수님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갔다. 그러자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의 종교 권력을 틀어지고 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심사가 뒤틀어졌다.

아니, 자기 자신들이 오랫동안 쌓아올린 종교 권력이 흔들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작당을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종교권력이 예수님보다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로부터 예수님을 넘겨받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예수님께 죄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했다.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유대인들이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하고, 또 가룟 유다는 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배신을 저질렀는가? 베드로에게는 예수님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고, 가룟 유다에게는 은 30냥이 예수님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무게가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착각을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도, 내가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움이나 고난이 왔을 때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그 수렁에서 나오질 못하는 것도 내가 처한 고난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보다 현실의 물질, 현실의 명예, 현실의 유혹이 더 커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야곱이 예수님보다 클 수가 있는가? 아무리 종교권력이 탐이 난다고 하지만 어떻게 예수님을 시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가 있는가? 어떻게 예수님을 고작 은 30냥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의 현실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착각하며 살 수가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을 가장 큰 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예배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가장 크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것이 예배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신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우리의 지식보다, 우리의 기대와 예상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다.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주만물보다 더 크신 분이다. 그걸 깨닫는 것이 예배다.

 
인간의 현실 속에 갇힌 하나님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이 더 크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깨닫고도 자주 잊어버리는가?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믿음이 갇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크기를 우리 생각으로,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의 경험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제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못하면 하나님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르면 하나님도 알 수 없다고 여기고, 우리가 예상한 대로만 하나님이 역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현실 속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다. 이 여인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서 자기의 지식대로 예수님을 판단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단말이냐.”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 생각과 지식에 갇혀 있다면 하나님의 실체를 바로 알 수가 없다. 그러면 그럴 수록 하나님을 자꾸만 축소시킬 뿐이다. 자꾸만 나보다 더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게 된다.

생각을 넓혀야 한다.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지각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믿음은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믿음은 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초월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초월해 계신 분이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현실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서는 올바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작은 생각과는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예상하는 길과 다르다. 왜냐하면 하늘이 언제나 땅보다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우리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것이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선택이셨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삶과 인간의 고통과 인간의 소외와 눈물을 온 몸으로 경험하셨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수치와 조롱을 받으셨다. 온 세상의 심판주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의 심판을 당하셨다.

이 같은 구원의 방법을 과연 누가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과 학문을 가진 석학이 할 수 있을까?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대기업을 일군 기업의 총수가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 손에 권력을 틀어쥔 최고 권력자가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법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마저도 그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무한히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주홍빛 같을 지라도 하나님을 믿으면 흰 눈같이 희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허물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 것도 저 하늘보다 저 바다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 우리의 현실에서 눈을 들어 무한히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자. 그 하늘보다 더 크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고,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자. 우리의 생각, 우리의 지식, 우리의 경험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더는 범하지 말고, 우리보다 더 크신 하나님, 온 우주만물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자. 그때 예배의 신비를 경험할 것이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