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드린 예배자 (끝)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5/30 [12:20]
우리는 누구나 소망을 말하고 소망을 가지고 소망하며 살아간다. 소망이 없는 삶은 내일이 없는 것과 같고 소망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소망을 꿈꾸며 살아간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오래된 소망이 있었다.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아를 기다렸다. 다섯 번 결혼에 실패하고 인생은 피폐해지고 영혼은 메마를 대로 말라 있었지만 그래도 메시아가 온다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있었다.
 
그가 오시면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물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절). 사마리아 여인이 유일하게 잘 한 일은 메시아를 소망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무질서하고 방탕하고 때론 눈물겹고 힘들었지만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소망했다.

아니 메시야가 올 줄로 확신했다. 메시아만 오신다면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더 이상 외롭지도 않고 자신의 비천한 삶에도 평안과 축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다.
예배는 메시아를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임하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이 예배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고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해주시고 그리스도가 거하시면 우리 인생이 더 없이 새로워질 수 있기에 그리스도를 소망해야 한다.
 
내가 그라

사마리아 여인이 그토록 소망하던 그리스도는 여인의 눈 앞에 계셨다. “내가 그라”(26절).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기껏해야 선지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자기 눈 앞에 있는 예수님이 “네가 말하는 메시아, 네가 그토록 소망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간결하고 단순했다. 그러나 사람을 압도하는 신적인 권위로, 사람의 영혼을 단숨에 사로잡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하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사마리아 여인은 이태껏  바라고 소망하고 기다려오던 메시야가 예수님이심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라”는 그 말씀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물동이를 버려 두고

사마리아 여인의 주변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늘도, 땅도, 야곱의 우물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마리아 여인만큼은 변했다. 기쁨이 차오르고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마침내 물동이를 버렸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28절).

여자가 버린 물동이가 어떤 물동이인가? 자기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날마다
야곱의 우물로 가져온 물동이었다. 상처받고 버림받은 그 여인, 비천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던 그 여인이 자기 인생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날마다 물을 긷던 물동이었다. 그래서 그 물동이는 그녀의 욕망과 이기심이 담겨 있고, 그녀의 죄와 허물이 담겨 있고 그녀의 상처와 눈물이 담겨 있던 물동이었다.

한마디로 그 물동이는 그녀의 옛 삶이었다. 그런데 그 물동이를 버렸다. 예수님을 만나자 전혀 망설임이 없이 물동이를 버렸다. 분명히 물을 길러왔건만 그 물동이를 버렸다. 옛 삶을 버린 것이다. 

왜?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물동이로는 결코 생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
스도이신 예수님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실 수가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즉시로 물동이를 버렸다.

예배는 물동이를 버리는 것이다. 옛 삶을 버리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그것이 예배의 위대함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위대한 만남은 사람을 놀랍게 변화시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만 알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을 찾아갔다.

본래 이 여인에게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얼마나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던지 사람들을
피해서 폭염이 내리쬐는 낮 12시에 물을 길러나왔지 않았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도망치듯 아무도 거리에 나서지 않는 대낮에 우물을 찾았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당당하게 그들 앞에 섰다. 더이상 두렵지가 않았다. 왜?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만남은 너무도 위대한 만남이었다.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도 가슴벅찬 만남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외쳤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절). 그녀는 예수님을 증거했다. 예수님을 와서 보라고 전도했다. ‘사마리아 사람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분을 와서 보셔야 됩니다. 그분은 내가 행했던 모든 일, 나의 과거, 상처, 아픔, 허물을 모두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메마른 내 영혼에 생수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그리스도입니
다. 그분이 나를 만나주셨습니다. 보세요! 제 인생이 새로워졌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분
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나왔고(30절)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사마리아에 부흥이 일어났다. 비천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이 그리스도를 만나자 사마리아가 변했다. 그리스도를 만났던 한 여인의 전도로 사마리아에도 부흥이 찾아왔다.

그래서 참된 예배는 반드시 전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배당에서 예배만 드리고 전도하지 않는다면 참된 예배자라고 할 수 없다. 아르키메데스는 고작 순금의 무게를 알아내고도 벗은 것도 잊은채 거리로 달려나가 ‘유레카’를 연발했는데, 하물며 예수님을 발견한 우리가 예배당 안에만 갇혀 있어서야 되겠는가?

전도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누가 내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일까 걱정하지 말자. 사마리아 여인을 보라! 누가 이 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손가락질 하고 배척하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입술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자 신기하게도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참된 예배자는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 아니냐’라고 외치는 사람이다. 그때 부흥이 오는 것이다.

예배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예배는 우리의 물동이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를 짓누르고 괴롭혔던 옛 삶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는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 관계 없이 벅찬 감동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임재를 열망하는 예배자가 되자. 나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했던 나의 옛 삶을 버리는 예배자가 되자. 그리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가슴 벅찬 예배자가 되자.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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