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Jordan River)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3/25 [16:53]
▲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요단강.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침례(세례)를 받고 있다.ⓒ김환기

한국에 ‘한강’, 독일에 ‘라인강’이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요단강’(Jordan River)이 있다. 이스라엘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요단강의 발원은 ‘헬몬산’(Mt. Hermon)에서 시작된다. 헬몬산의 눈이 녹아 물줄기를 만들고, 상부 요단강을 통하여 갈리리 호수로 유입된다.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상부 요단강’(upper Jordan River)과 ‘하부 요단강’(lower Jordan River)으로 구분이 된다.

이 강의 길이는 약 500Km, 북쪽의 해발 900m로부터 해발 -210m의 갈릴리 호수, 그리고 -400m의 ‘사해’(Dead Sea)로 이어지는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흐르고 있다.

성서에는 요단강과 관련된 많은 사건이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은 긴장감이 넘친다.(수 3:15)

여호수아는 모세가 홍해를 건넌 것처럼 법궤를 앞세워 요단강을 건넜다. 스승인 ‘엘리야’가 승천하며 제자인 ‘엘리사’에게 두 배의 축복을 준 사건도 요단강에서 일어났다.(왕하 2:13~14) 두 배란 뜻은 단순한 숫자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유대인들은 유산을 상속할 때 장자에게 두 배의 분 깃을 주고, 나머지 자녀에게는 공평하게 분배했다.

두 배를 받는 다는 것은 후계자라는 뜻이고, 장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람왕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의 한센병이 난 곳도 요단강이 아닌가! (왕하 5:14)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곳도 요단강이었다.(요 1:28) 
 

요단강과 세례터 (Baptismal Place)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건너는 국경에는 다리가 하나 있다. 요르단에서는 ‘킹 후세인 다리’(King Hussein Bridge), 이스라엘에서는 ‘알렌비 다리’(Allenby Bridge)라고 부른다.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Amman)에서 택시를 타고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도중 ‘예수의 세례터'라는 푯말을 보았다.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곳이라고 한다. 신약성서에는 ‘베다니’(Bethany)라는 이름의 두 개의 지명이 언급되고 있다. 하나는 감람산 기슭에 위치한 ‘나사로’를 살리신 마을 베다니(요 11)이고 다른 하나는 요단 동편 지역에 위치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베다니’이다.

요한복음 1장 28절에는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일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또한 베다니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게 되자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었던 장소가 다시 성서에 등장한다.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요 10:40).

이 말씀에 근거해서 베다니를 발견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이후 많은 발굴과 노력 끝에 교회, 수로, 세례터 등의 유적이 다량으로 발굴되어 이를 근거로 남 요단강 계곡지역에 속하는 여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현재의 위치를 학자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장소인 ‘베다니’(Bethany)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관광객들이 찾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는 ‘세례터’(Baptismal Place)이다. 이곳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표식은 없지만, 주변 상황을 보면 세례를 받으셨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곳에는 예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기록한 마가복음 1:9-11절의 말씀이 벽 타일 위에 여러 나라 말로 써 있다.  

한국어는 ‘상도중앙교회’와 ‘분당지구촌 교회’ 이름으로 두 군데나 있었다. 
 

요단강과 한센병 (Leprosy)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이라고 하는 한 장군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는 용사요,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으며,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한센병에 걸렸다. 이를 안타까와 하던 왕이 그를 이스라엘로 보냈다. 이스라엘 왕은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으로 생각을 하여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이 고칠 수 없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안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명한 후, 마중 나가지도 않고 요단강에 일곱 번을 담그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나아만은 돌아가려 하다가 부하의 만류함을 받아들인다. 그는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치유함을 받았다.

한센병을‘개역성경’에는 ‘문둥병’으로 ‘개역개정’에는 ‘나병’이라 했다. 하지만 병에 걸린 사람들은 ‘한센병’(Hansen, Leprosy)이라 불리기를 원한다.

노르웨이 의학자인 ‘게르하르 아르마우어 한센’(Ger- hard Armauer Hansen)이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병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오래 전 ‘여수 애양원’에 갔었다. 이곳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께서 시무하신 곳이다. 비도 오지 않는데 사람들이 장화를 신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마중나온 장로님께 “왜 장화를 신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나병이 심한 사람들은 돌 뿌리에 부딪치거나, 나무에 걸려서 피가 나도 느끼지를 못합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장화를 신고 다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요단강과 여호수아 (Joshua) 

요단강을 보면서 ‘여호수아’의 ‘요단강 도하작전’을 읽으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당시의 상황은 6.25 때 북한군에 밀리며 긴급하게 철수하며 ‘한강’을 건너는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요단강은 강이 아니라 큰 개울 수준이었다.

물론 여호수아 당시의 요단강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유대 땅에는 겨울이 우기이며 보리를 거두는 시기인 초봄에는 요단강 물이 항상 언덕에 넘쳤다.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가에 잠기자 곧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서 일어나 쌓였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졌다(3:16).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향하여 요단을 건넜다. 백성이 다 건너고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서 나오니 다시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수 4:18)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것과 모세가 홍해를 건넌 사건은 유사하다. 어떻게 큰 바다가 갈라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서학자들 사이에는 ‘갈대바다’(Reed Sea)를 ‘홍해’(Red Sea)로 잘못 번역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갈대가 자랄 수 있을 정도의 얕은 바다이기에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얕은 바다에서 어떻게 그 엄청난 애굽 군대는 빠져 죽었을까?”이것이야말로 진짜 기적이 아닌가! 

성서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많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조금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신화적인 면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만을 믿겠다고 한다.

신화란 무엇인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을 통해서 설명한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와 성서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근동 지방의 신화와 성서를 비교하며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유사한 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신화가 아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만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에라스무스’는 “나는 믿기 위해 알고, 알기 위해 믿는다”고 했다. 믿어야지 아는 세계가 있는가 하면, 알아야지 믿을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함도 가져야 한다.〠 <끝>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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