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띄우는 희망 메신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사순절 기간 중 강한 깨달음... ‘나팔 불 때’ 시리즈

김명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4/29 [11:35]

 

▲ 퓨전화된 현대사회의 무국적, 무정체,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 온라인 전시회 ⓒ강민석

박성남 화백(66, 본지 아트디렉터)이 개인적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작업한 최근작 5점을 본지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현대 퓨전화된 사회의 무국적ㆍ 무정체ㆍ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다.

신작의 작업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층’ 이라는 대상이다. 여기에는 실타래처럼 엉킨 이 세상의 퓨전, 웰빙, 다원화와 같은 정체성이 없는 현 사회현상을 박 화백은 예술적 표현으로 나타내며 그림화 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아픔 속에 사랑이 있고 고뇌 속에 밝음이 있다. 그의 작품들을 한참 보고 있으면 구원을 갈구하는 절규가 배어있고 처절한 삶의 애환과 함께 환희가 교차한다.

박 화백이 이런 작품 세계를 구가하게 된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 아버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작품 ‘빨래터’ 위작사건과 2년 전 있었던 교통사고와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그는 현대미술작가 중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의 아들이라는 죄로, 2005년 위작 파문이 불거진 후 4년 넘게 끌어온 진위 논란의 와중에 마음 고생을 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의 작품 ‘빨래터’가 위작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지만 그 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는 오른쪽 팔뼈가 으스러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대수술을 했다. 그런 후 두 차례 재수술을 했지만 현재까지도 완치가 안 된 상태다.

▲ 퓨전화된 현대사회의 무국적, 무정체,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 온라인 전시회 ⓒ강민석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박 화백의 눈물의 기도는 사순절 기간 중 새벽마다 하늘의 보좌를 흔들어댔다. 박 화백은 기도를 통해 모든 시련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과정이란 확신을 얻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체험은 그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예술의 목표는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 퓨전화된 현대사회의 무국적, 무정체,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 온라인 전시회 ⓒ강민석
 

박수근 아들의 기도와 묵상 

오락가락 여우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던 지난 4월 20일 정오. 서울 안국동 ‘고도 갤러리’를 찾아갔을 때 반백의 박성남 화백은 나직한 목소리에 환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박 화백의 누나 도이 인숙(본명 박인숙 70) 화백이 개인전을 여는 첫 날이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바바리코트와 정결하게 빗어 넘긴 머리가 멋스러웠다.

- 누님이 일흔이신데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군요.”

“인천여중 교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 누님의 그림이 아버지인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누님의 그림이 아버지 화풍을 이어받아 유년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향토적인 풍경을 담고 있지만 아버지의 그림과 차이점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서민의 삶과 민족의 한을 그렸다면 누님은 풍요로움이지요.”

지난해 첫 개인전을 열었던 도인 인숙 작가는 강원도 양구 박수근 미술관의 명예 관장직을 맡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사동 한 갤러리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계속했다.

박 화백은 건강을 걱정하자 “재수술한 지 4개월이 되었는데 많이 회복됐다”면서 “수술이 잘되어 지금은 조금씩 오른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도 무거운 것은 들지 못해요. 그런데 작년 우림화랑에서 초대전이 있었어요. 저를 아끼는 사람들이 그런 팔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오른팔은 망가졌어도 왼팔이 있잖아요. 물론 왼손은 아무래도 훈련이 안 돼 있으니까 세밀한 부분은 할 수 없어요. 도구로Tj는 미흡한 부분이 있지요. 표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런데도 왼손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옛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도자기를 4년 정도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조형감각도 있고 주물러서 입체를 만들어 내는 건 문제가 없어요. 물레도 잘 돌리고요. 그러면서 왼손으로 해야 할 작업이 뭘까, 생각하다가 감사의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오른팔을 다치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결국 인간의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신 것은 내가 신앙적으로 이 시련을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 내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팔을 망가트려놨으면 오른팔 이상의 어떤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최고의 선물을 나에게 주셨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까라는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사실 전에는 이런 기도를 하지 않았어요.”

86년 호주로 이민을 온 박 화백은 한국의 한 미술 관계자가 아버지의 가짜 그림을 대거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2005년 3월 급거 한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을 대량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김 모 씨를 고소했고, 그 때문에 김 씨로부터 다시 ‘무고 혐의’로 맞고소를 당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형사 7부는 2005년 말 ‘김씨가 소장한 박수근의 그림은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했고, 박 화백은 ‘무고’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07년엔 박수근의 ‘빨래터’가 법정에 섰다. 45억2000만원이라는 최고가에 거래된 후 신생 미술잡지인 ‘아트레이드’가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최고가 그림이 짝퉁”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빨래터’ 진위 논란은 4년 넘게 법정공방으로 이어졌고 2009년 11월 4일 법원은 “위작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박 화백은 “검찰조사 도중 상대방의 말도 안 되는 억측에 심지어 협박까지 있어 이를 견뎌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 위작사건이 있었을 때, 영혼이 없는 아버지 작품이 돌아다닌다면 결국 한국 근대미술에 오염이 되는 것이고 아버지의 그림이 정체성이 없는 그림으로 가기 때문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지인들이 고소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제가 고소를 했어요. 결국 아버지의 그림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서 일단락됐는데 그 후에 ‘빨래터’라는 아버지 작품이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된 거죠.

존 릭스라는 미국인이 아버지 그림을 5점 소장하고 계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빨래터’였어요. 그분은 50년대 중반 가정형편이 어려웠을 때 아버지에게 화구도 사주시고 여러모로 도와주신 분이었거든요. 외국인이었지만 우리문화를 사랑했고 작가를 잘 섬겨주었어요. 전 존 릭스와 아버지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성실히 챙겨가지고 재판부에 넘겨주고 ‘가짜일 수 없다’ ‘진품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죠.

▲퓨전화된 현대사회의 무국적, 무정체,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 온라인 전시회 ⓒ강민석

그런데 언론들은 ‘박 선생님이 그렸죠?’ 하며 저를 위작범으로까지 몰아갔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올라와 ‘내가 위작범이라고? 시청 앞에서 할복자살할 심정이다, 그렇지만 난 크리스찬이다 자살은 안합니다’라고 했는데 그런 내용은 다 빼고 ‘시청 앞에서 할복자살 한다’는 말이 SBS 방송에 나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언론 플레이로 저를 위작범이라는 정황으로 몰고 갔거든요. 저는 사실 규명에만 올인하며 기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때도 사순절 기간이었어요.”

박 화백은 “한동안 정신분열이 생길 것처럼 힘들었다.”며 “사람들이 너무 미웠지만 예수님을 섬기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분노와 슬픔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침마다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위작 시비로 만신창이가 됐던 박 화백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상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고 한다. 마음이 가장 요동치던 때는 한동안 금식기도에 몰입하기도 했다.

▲ 퓨전화된 현대사회의 무국적, 무정체, 무개성을 질타한 ‘나팔 불 때’ 시리즈 온라인 전시회 ⓒ강민석

“결국은 나와의 싸움, 내 안의 어두운 세력과의 싸움이었어요. 만왕의 왕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고 침을 뱉으며 조롱하는 로마병사를 위해 오히려 용서의 기도를 했던 일을 생각하면서 저 또한 침묵과 용서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빨래터 사건도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고 사람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역사’가 되길 간구했습니다.”

박 화백은 선친이 추구했던 작품 세계의 요체는 결국 ‘선함’이었다면서 미가서 6장 8절을 인용해 사랑과 겸손의 삶을 되새겼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파주시 교하읍 동파리에 있는 박성남 화백의 작업실(2006. 8) ⓒ크리스찬리뷰
 

소처럼 성실하고 흙처럼 소박하게 산 아버지

선친의 예술세계를 최고로 받든 어머니 

박 화백은 아버지 박수근 화백을 “소처럼 성실하고 흙처럼 소박하게 살았던 분”이라고 회상한다. 그 시대 다른 작가들은 방석 위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폼 잡는데 익숙했지만, 그의 부친은 소탈한 차림으로 서민의 순박한 모습을 담아내는데 몰두했다는 것.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아버지가 해주신 단 한 가지 충고는 바로 ‘봄을 그리면 봄 느낌이 나야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현 시대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그림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 된다’는 교훈을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세계관을 보면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된다’는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고자 하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저들의 가정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즐겨 그린다’고 하셨죠. 그러시면서 19세기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게 해달라며 기도하면서 미가서 6장 8절 말씀을 자주 묵상하셨습니다.”

그는 79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선 더욱 애틋한 마음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예술세계를 최고로 인정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박수근 화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부잣집 규수였던 그의 어머니는 “당신을 모델로 그리고 싶다”는 아버지의 청혼을 받아들여 가난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이웃집에서 식량을 꿔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는 돈 벌어오지 않는 남편을 한 번도 타박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세끼 죽을 먹어도 좋으니 예수 믿는 집으로 시집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만난 분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실 때, 어머니는 늘 저에게 방안에서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걸어 다니도록 당부하셨죠. 어머니는 집안에서 아버지를 항상 최고의 화가로 대접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중곡동 장로교회 전도사로 일하시다가 순직하셨어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대목은 한국 근 현대 미술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화가의 아들이 왜 가난하게 사느냐는 것. 선친의 작품 몇 점만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성남 화백은 “아버지의 작품을 소장하지 못한 건 어떤 의미에서 축복”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들이 몇 차례‘박수근 유작전’을 열어 그림을 모두 팔았습니다. 당시엔 1호당 5천 원이었죠. 그 돈으로 쌀을 샀고, 학비를 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도 그랬고요. 선친의 그림이 저희 가족에게 남아 있었다면, 형제간의 우애도 지금처럼 원만하지 않았을 것이고 게으르게 살았을 겁니다. 예술가는 적당히 가난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남 화백은 18세에 국전에 입상을 시작으로 일곱 번에 거쳐 국전에 참여하였고, 그 후 2008 한국구상대전, Art Star 100인 전, 한몽 문화포럼 2010전, 박수근 3대가 부르는 회상의 노래, 광주 비엔날레 아시아 패닉전 등을 비롯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하였으며 한국을 빛난 장한 한국인대상, SWAF 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본지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며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의 한 컨테이너 건물에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컨테이너 건물은 그를 아끼는 한 화랑 관계자가 마련해준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가인 45억 2000 만 원에 거래된 박수근의 빨래터.위작 의혹 제기로 4년 넘게 법정 공방이 이어졌으나 법원은 위작으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크리스찬리뷰 자료

뚜렷한 그만의 작품세계 ‘나팔 불 때’ 

박 화백은 표현 어법, 즉 화가로서의 말투가 또렷하다. 그래서 어디서 보아도 분별이 쉽게 간다. 여러 종류 또는 많은 작가의 작품 속에 섞여 있어도 금방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독자적이라는 말이다. 재료의 독특한 질감은 작가의 회화의 가장 큰 특징.

마치 실제로 서 있는 듯한 인물들은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감을 준다. 평면과 입체가 공존하는 구조는 더불어 시각적인 깊이를 더욱 깊게 보이게끔 하며 간명한 윤곽선과 일정한 선은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박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쓸림과 쌓임 이것이 바로 층(層)이다”라고 자신의 그림을 표현했다. 그는 무(無)라는 공간에서는 결국 빛도, 소리도, 공기도, 생명도 존재할 수 없으나 연약한 종이와 같은 무한한 공간에는 우주만물의 자연은 물론 빛, 마음의 떨림, 갈등, 시간, 사람, 동물, 사물, 사회현상, 과학, 정치현상 등을 한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고 자신이 표현하는 예술세계의 원초적인 토양으로 본다.

“종이 안에는 공간도 많고 시간도 있고 그리고 습도서부터 지구의 산소 질소 다 종이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은 빛이 있기 때문에 다 드러나는 거거든요. 그런 층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제 작품에서 층이라고 명명하는 겁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갈등, 왕따,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노숙자,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낮음이나 영적으로 이런 것들이 다 층이죠. 그러니까 하늘에 속한 것이나 땅에 속한 모든 것이 영적으로 층이요, 생활자체가 층입니다.

 그래서 최근 제 작품은 아픔 속에서 움푹 파헤쳐져 있어요. 그런데 빛이 파헤쳐진 그곳을 비추면 움푹 파인 원 안이 빛으로 덮여지는데 그러면 고무풍선처럼 둥둥 원이 떠 다녀요. 하나님의 빛이 이렇게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겁니다. 

요즘에는 거기에다 나팔을 부는 나팔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묘사한 게 아니라 지금은 나팔 불 때라는 거지요. 내가 나한테 나팔 불자는 거지요. 내안에 예루살렘을 찾아 나팔을 불고, 나팔 불 때 우리는 축제잖아요. 내가 섬기는 목회자, 성도들, 환우들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거지요. 죽음도 선물이고, 죽지 않고 어떻게 부활할 수 있겠어요.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이 다해 주셨다, 나팔을 불자는 겁니다.”

그의 그림은 쓸림과 쌓임을 토대로 표현하여 퓨전, 웰빙, 다원적이며 무정체성의 현 사회 현상에 잔잔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간의 내면에 아름다움과 사람. 사물의 참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전의 박수근 화백 ⓒ크리스찬리뷰 자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큰 비극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맨발에서 짚신을 신을 때 가장 큰 비극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벨탑의 원조라는 거죠. 왜냐하면 맨발로 다니던 나의 뒤꿈치가 닳아서 미생물이 먹고 나무 뿌리가 먹고 거기서 열매가 나오면 그것을 우리가 먹고 서로 상생할 때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공동체가 됐을 텐데, 짚신을 신다보니 고무신 과학이 나오고 고무신 철학이 나오고 자전거 철학 과학이 비행기 철학 과학이 요즈음은 미사일에다가 핵이며 다원주의 과학으로 달려왔잖아요. 결국 무서운 세상이 되었잖아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내가 했다, 내 교회가 했다, 내 힘으로 했다, 내가 우상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과학이 철학이 답을 줘야 되는데 답을 못주고 있잖아요. 모든 게 다 혼돈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며 혼잡하잖아요. 하나님은 오래 참음으로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기다리시고 돌봐주시잖아요.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것이 저의 또 다른 층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림으로 성공하자가 아니라 그 좋으신 분, 왕이신, 친구가 되신, 그분 앞으로 인도하는 층의 역사가 그분이 주시는 빛의 반사체로 담대히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할 수 있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리는 치료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즘 묵상하는 말씀이 시편 23편인데 이 다윗의 고백이 성도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매일매일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 박성남 화백은 본지 김명동 편집인(왼쪽)에게 최근작 ‘나팔 불 때’ 시리즈를 설명하며 본지에 처음으로 작품들을 공개했다. ⓒ강민석

그림으로 목회한다 

박 화백의 이러한 인간성, 감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의 유년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 박수근 화백은 장마 후 파인 땅을 삽으로 돋우면, 소년 박성남은 사뿐사뿐 조심스럽게 흙을 밟으며 또한 싸리비로 솔솔 쓸어 아버지를 도우며 땅에 그려진 쌓인 흙층과 싸리비 자국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 형상화 되어 남아있게 되었다.

또한 박성남 화백이 서울 창신동 집 마당과 동네 골목길에서의 빗자루 질이 어떤 때는 어두울 때, 어떤 때는 아침에 곱게 싸리비로 쓸어 자국을 내며 그곳을 지나다니던 수많은 발자국을 지우고 또 지우는 반복된 빗자루 질을 하였고, 그 속에서 자신은 무인도에 있는 느낌, 오묘한 희열, 마음 안에 자리 잡은 깨끗한 이성에 대한 자극, 어떤 도인의 경지까지도 느끼는 신선한 충격이 빗자루질 자국으로 다양한 형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년 시절의 추억인 빗자루질로 나타난 빗자루 자국, 아버지가 흙을 파서 돋은 흙(자리만 옮겼지 없어지지 않음)을 조심스럽게 밟은 흙층(層)의 형상... 박 화백은 자신의 심상에 선명하게 그려진 경험상의 영상을 작품의 근본 소재로 하여 표현하려는 것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계시지만 시간이 끝나면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다고 했어요.

지구의 공기를 보면 산소가 20% 질소가 80%래요. 그래서 과학자들이 이야기할 때 산소가 10% 올라가면 지구가 불바다가 된대요. 질소가 10%만 올라가도 다 질식해서 죽는 거죠. 땅과 바다의 비율은 땅이 3 바다가 7이래요. 그런데 땅이 4가 되면 모든 것은 메말라 죽는다는 거죠. 그리고 바다가 8이 된다면 모든 게 습지화 되어서 생태계에 혼란이 온다는 겁니다.

감사한 것은 아직도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거죠. 그런데요, 이제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어요. 정직한 것이라고는 없어요. 틈만 나면 나를 높이고, 바벨탑 문화로 가고 있어요. 땅과 바다의 경계는 모래인데 모래는 온데간데없어요. 산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바다는 모래를 넘어서 산을 집어삼키고 한마디로 지구는 기울어져가고 있어요. 이런 자연으로부터의 궤도이탈이 ‘퓨전’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도 혼탁해지고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진리가 없어요. 모든 것이 다 혼돈이고 혼잡한 시대입니다. 그래도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제는 그분만을 높여드리고 영화롭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드렸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박수근의 후손들이 걸어가야 될 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박성남 화백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하게 들린다. 회심한 사도바울이나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권면처럼 우리의 내면을 울린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내면적 폭풍에 사로잡혀 무화과나무 아래서 엎드려 울었다는데 한국교회가 내가 그러해야 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 ‘21세기 자화상’을 우직하게 보여 줄 장인의 아름다운 선물에 가슴이 뛴다.〠

글ㅣ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ㅣ강민석/국민일보 사진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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