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감동입니다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
 
송기태/크리스찬리뷰
세 장면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 된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가 없다"
"여보 오늘은 '모요일'이에요"
"까만 가정, 하얀 가정"   

▲ 행복발전소의 `행복 프로듀서'송길원 목사. 그가 잡은 핵심가치는 행복이었다.        ⓒ크리스찬리뷰  

경구와도 같은 위의 문장들은 20년 전 필자가 '하나'라 이름붙인 출판사 겸 잡지사를 꾸려갈 때, 송길원 목사와 의기투합하여 낸 가정 관련 책 제목들이다.

당시 필자의 사무실은 한국교계의 주류들도 많이 드나들었지만, 그보다는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아지트였다. 지금이야 주류 중에 주류로 진출한 송길원 목사이지만, 당시 부산에서 '춥고 배고픈 아웃사이더'로서 절치부심하던 그도 서울에 오면 즐겨 들르던 장소였다. 그의 걸쭉한 유머에 사무실의 먼지를 다 날려보내고, 식사 때가 되면 으레 󰡐원조󰡑란 접두어가 붙은 간판이 크게 붙여진 설렁탕이나 곰탕집으로 향하기 마련인데, 당시 그가 밥값 계산하는 데는 무척 '손이 빨라' 모두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실 당시 그는 부산에서 막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이하 기가연)를 설립하고, 돈 벌리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야말로 '가정 연구'만 하며 허공을 치고 있을 때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왔으면, 서울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는 그 당연한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몇 달 후 필자는 부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주선으로 당시 새중앙교회(현재 호산나교회) 원로이자 한국의 합동측과 통합측이 분열될 당시 장로회 총회장으로 사회를 본 노진현 목사의 회고록 '진실과 증언' 출간을 의논차 최홍준 목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굳이 해운대 그의 집으로 이끌어 자고가게 했다.

몇 년 후 그는 서울로, 필자는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필자가 시드니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그는 시드니중앙장로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왔다. 필자의 집으로 반가운 전화가 왔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았지만, 시드니 초년병이었던 필자는 중앙교회가 있는 벨필드 버우드 로드가 아닌 버우드 버우드 로드를 저녁 내내 몰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중앙교회에다 죄송하다는 팩스 한 장 밀어놓고, 다음날 한국으로 출발해야 했다. 시드니에서 못만난 그를 비행기 안에서 만날 줄이야! 널널한 좌석 덕분에 동석할 수 있었다. 비행기 출발 직전 그가 마일리지 카드를 꺼내어 승무원에게 좌석 업그레이드를 신청하더니 비즈니스 석으로 옮겨가버리는 것이었다. '이건 뭐야! 혼자 가버리다니. 어젯밤 사건으로 단단히 삐졌나?'하고 생각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조금 의아심이 들었다. 5분 쯤 지났을까, 그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다시 나타났다.

"목사님, 승무원에게 뒷자리(이코믹석)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함께 앉아가도 좋답니다. 비즈니스석으로 갑시다"하며 필자의 손을 이끌고 갔다. 그야말로 원님 덕분에 나팔 분 기분이었다(필자는 아직도 그가 승무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저 그의 표현대로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했을까? 아니면 필자 때문에 '굴욕적이라 할 정도로 아쉬운 말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내려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을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깔깔거리며 '송길원 목사님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분은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 드실 분이다'라고 했다.

필자는 송 목사를 생각할 때마다 식당, 그의 자택, 비행기 등 이 세 공간에서 있었던 일들이 삽화처럼 떠오르며, 상대방을 끝까지 배려하는 그의 넉넉한 마음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 이후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진보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느 새 '가정사역의 대가'로 우뚝 서고,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는 글과 대담은 기막힌 알맹이에 재미로 포장되어 청중이나 독자들에게 더 깊은 감동과 감흥을 자아내고 있었다.
 
▲ 방송출연이 잦은 송길원 목사는 연예인과 같이 패션과 외모 등 자신의 코디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방송의 반향

92년 여름, 고신의료원 원목으로 있던 그는 타의에 의해 그만두면서, 그해 9월 18일 박종근 신경외과병원 내에 사무실 한 칸 얻어 기가연을 출범했다. 국민일보 등 몇몇 기독교 언론과 출판사에서 그의 명문장에 주목했다. 그의 스토리텔링 수준은 과히 수준급이었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면 일단 웃을 준비를 할 정도로 그는 탁월한 재담가였다. 청중들의 머리와 가슴에 '필'이 꽂히는 언어가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은 무수한 '그림언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사역은 급속도로 활성화되고 확장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역이 활성화고 서울 수도권 지역에 요청이 많아지면서 저도 모르게 집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정 사역자가 바깥에서 잠을 자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래 해운대에 살고있던 집 32평을 팔아 일산에 연구소를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단독 오피스를 하나 열면서 꿈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통일로 주변에서 언젠가 이루어질 통일을 주제로 북한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일산 신도시가 건설되었지만 베드타운으로 전락했습니다. 30-40대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데 젊은 가정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다양한 사역을 열어주셨습니다."
때마침 EBS(교육방송)에서 송길원 스페셜 가정 이야기를 방영할 기회가 있었다. 일 주일 단위로 편성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반향이 너무 컸다. 카메라 기자가 그의 이야기에 빠져 카메라 잡고 있다가 놓쳐 호된 질책을 받을 정도였다. 그 일을 계기로 방송 간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일 주일 더 연기하여 2주일 동안 방송됐다.

"한국 교회는 대형집회, 연합집회 등으로 여의도 광장에 모을 생각만 했지, 미디어 반향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개교회 집회를 넘어서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KBS에는 그전에도 방송에 잠깐 나가다가 2008년도 5월부터 11월까지 매일 나가게 되면서 아침마당에 사역이 확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각 교회로 초청받으면 주로 안내 배너에는, 대중 동원을 위하여 친근한 방송 프로그램 출연사실을 많이 기록한다고 하였다. 한 번은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어느 교회 집회 배너에서 '아침마당 출연'을, '아침마다 출연'이라고 오자를 냈어요. 그걸 가만히 보면서 저는 '아침마다 하나님 나가면 안될까요?'하고 아주 잠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작은 소망까지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사역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강남에 둥지를 틀었다. 방송에서 출연을 교섭하면서 기독교 가정사역 연구소라는 그의 연구소 이름 앞에 붙어있는 '기독교'라는 말을 빼면 안되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왜 빼야 합니까?"
 
"기독교라는 말이 들어가면 편파방송이라고 뭇매 맞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가정사역연구소'라고 정했다. 이번에는 아나운서가 '사역이 뭡니까?'하고 물어왔다. '영어로 미니스트리입니다'하고는 한자로 사역(事役)을 설명하니 '일사 일역이라! 일에다 일이니 중노동이군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네이밍(Naming)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교회에서 우리가 쓰는 용어를 일반 사회에서 쓰니 그들과 소통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름으로 '행복발전소 하이 패밀리'(Hi Family)라고 정했습니다."
 
이름은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기대를 담아내고, 설립자의 철학과 사명이 담기기 마련이다. 본격적으로 하이패밀리의 방향이 정해졌다. 가정과 관련하여, 부부 세미나는 기본이고, 아버지 회복운동, 아버지 면허증 갖기 운동, 결혼예비학고, 틴 포티 자녀와 부모관계, 성매매 방지, 장례문화 변혁운동, 결혼다이어트 운동, 갱년기 세미나, 가족사랑 찬송가 보급,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 등, '운동'을 참 많이도 하며 거침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5월, '제1회 가정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활동 지평이 생겨남에 따라 그의 정체성을 심어줄만한 다양한 닉네임도 따라붙었다. `행복의 전령사', `행복의 파수꾼', `행복촌장', `행복 프로듀서' 등이 그동안 자의로 혹은 각종 매스컴에서 붙여준 애칭들이다.

행복 프로듀서

행복발전소의 행복 프로듀서! 그의 사명선언(Mission Statement)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잡은 핵심가치(Core Value)는 `행복'이었다. 참으로 그의 성품과 개성, 그리고 달란트에 맞게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의 행복을 열기 위한 열쇠는 `유머'와 `칭찬'을 들었다.

 그래서 그의 강의는 일단 재미있다. 건강한 웃음과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최고로 `유머치료' 강좌를 맡을 정도로 그의 유머인생은 주변을 즐겁게 하며 달려왔다. `유머는 세상을 내편으로 만들게 하며, 말 3분이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전의 시대가 국민총생산지수(GNP)를 이야기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하이패밀리는 앞으로 국민총행복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보다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령화, 저출산 등 사회문제에 적극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불행한 가정이 하나도 없는 그날까지 행복발전소로서의 허브 역할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송 목사는 '하이패밀리'의 역할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출산 고령화로 만혼 커플이 늘어갑니다. 이혼의 행태도 다양해지고요. 이와 함께 '가족'의 의미와 가치도 사라지고 있죠. 그래서 '가정'의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가정이 살아야 사회가 건강해지죠. 이것이 이민사회에도 번져가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이민사회는 전통적인데 많이 얽매입니다. 부모의 의식이 이민 온 연도에 고정돼 있는데, 자녀는 그렇지 않으니 갭이 한국보다 훨씬 큽니다. 그동안 선교지에서 요청이 많이 왔습니다. 블라디보스독에서 '선교사는 오지 말라 가정문제 전문가는 오라'고 할 정도니까요. 이제 가정문제도 사회운동차원에서 접근하고 싶습니다. 엔지오를 채널로 뿌리를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중요한 이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철주야로 가정의 행복과 소중함, 그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행복 프로듀서'로서 한국교회가 가정사역을 할 때 컨설팅도 하고, 개교회 요청에 따라 무수한 가정사역자들을 배출하는 저수지 역할도 하였다. 2년의 교육과정을 거쳐, 별도로 개발한 20여 가지 프로그램으로 강사훈련을 하여 각교회에 맞춤형태로 지원한다. 학기 단위로 수시로 입학하여 학점만 취득하면 될 수 있게 했다. 사이버로 공부할 수 있도록 콘텐츠도 마련했다.


▲ 제9회 대양주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서 송길원 목사는 `행복한 교회, 행복한 가정, 행복한 목회자'로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 강의했다. ⓒ 크리스찬리뷰

예수와의 만남, 그리고 열정

부산 브니엘고등학교 때 그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 만났다. 이때 만난 믿음의 친구들로는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이규현 목사, 동안교회 김형준 목사 등이 있다.
 
"기독교 교육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미션스쿨에 가지 못했다면, 그리고 신앙의 영적 리더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교장, 교목, 영어, 수학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지금까지도, 학교 졸업한 지가 벌써 얼만데 오늘까지 우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늘 '사과의 씨앗은 헤아리릴 수 있지만 씨앗 속의 사과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을 새기며, 미래 씨앗 속의 사과가 열매 맺게 하려던 그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불붙은 신앙의 열기는 고신대 76학번으로 입학하게 했다. 그곳에서 평생 반려자요, 가정 사역자가 된 김향숙 양을 만나 연애를 했다.

"대학 1학년 때 철학개론 시간에 교수님과 싸웠습니다. 그때 찍혀서 졸업 때까지 내내 그분의 과목은 C만 받았습니다. '끝까지 괴롭힐 것이오? A도 주시오'하며,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쳤는데 결과는 역시 C였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그 교수님이 안가르쳤습니다. 나중에 그 일로 가끔 웃고 했습니다."
 
그 철학교수가 나중에 알고보니 김향숙 양의 부친이고 몇 년 뒤에 장인이 된 김성린 교수(고신 부총장도 지냄)였다. 격동기 대학 시절 그는, 공부보다는 연애를, 공부보다는 데모를 더 좋아하게 됐다. 10.26사건을 불러일으킨 부마사태 때 잡혀들어갔을 그를 끌어내준 사람도 바로 학생처장으로 재임하던 장래 장인어른인 김 교수였다.

"당시 고신은 데모로 참 유명한 학교였습니다. 나중에 미문화원 방화사건도 주도했고, 문부식 시도 고신 출신이지요."

79년 사직동교회 고등부 전도사 시절, 그는 고등부 학생 김명호(현재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군의 방문을 받았다. 2기분 공납금 못내 학교에서 쫓겨나 갈 데가 없어진 그가 "전도사님!" 위로받으러 찾아온 것이다.
 
첫 전도사 시절, 불붙은 멧돼지처럼 열정적으로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기도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당장 공납금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한 별로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순간 전날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돈을 그의 등록금으로 주고 났을 때 한 달 동안 살아갈 지출항목이 짝 그려졌다. 어쨌거나 그는 그 돈을 꺼내 그의 공납금으로 주었다.

"어린 전도사 마음에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슨 이런 시험을 치르게 하십니까? 왜 흔들어놓으십니까?'하고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이 지출항목 만드셨다면 수입항목 만들어 보셔요, 하나님의 기적을 보여보세요.'하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한 번 테스트하시니, 하나님이 정말 풍성한 분이심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송 목사는 그토록 좋아서 결혼한 두 사람이 처음엔 원만하는 듯했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고, 열심히 싸우기도 했다.

"열심히 싸우던 우리가 고신의대에서 원목으로 있다가 쫓겨나면서 가정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가정사역을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중반 두 아들과 아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기러기 아빠'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아 뭐 아이들 수학이 젬뱅이라서 보낸 것이지요. 전문대학도 못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애들 땜에 기러기 가족이 된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도, 좋아서도 아니었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 믿음의 친구 이규현 목사(왼쪽)와 함께한 송길원 목사         ⓒ크리스찬리뷰

기러기 아빠의 고통
 
가정 사역자로서 `기러기 가정'의 쓰라린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경험하기 전에는 몰랐던 그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샅샅이 기행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고, 그들을 위한 사역도 구체적으로 접근하며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체험적 시간이었다.

"기러기 가족을 향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국가가 해외로 국비 유학생 보냈는데 국가가 할 일을 가정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맹모삼천지교처럼 엄마가 따라 나간 것입니다. 가정이 위험에 노출되었으니 인터넷으로 지역과 공간을 뛰어넘어 많이 나누고 늘 격려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기러기 가정을 청산했을 때 아빠가 얼마나 희생했는가를 알고 울더군요. 옛날에는 시골에서 도회지로 유학해서 공부했듯이, 글로벌 시대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재질있고, 능력있으면 외국으로 가야합니다. 작은 것을 침소붕대하지 말아야 하고, 공격하기보다는 이해해야 합니다."

추운 겨울밤 집회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썰렁한 집! 침대에서 아이들의 흔적, 땟자국 만지다 보면 못견딜 정도로 아이들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명색이 목사였지만 기도도 한계가 있었다. 양재천을 달려가 미친듯이 뛰다가 피곤해지면 들어와 자기도 했다.

"마라톤 좋아서 뛰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마라톤을 2번이나 완주했습니다. 마라톤은 힘으로가 아니라 과학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35킬로입니다. 첫출전에서 실패하면 안됩니다. 5킬로는 무조건 걷고, 그러면 40킬로 됩니다. 그래서 출발선에서 다 뛰는데 어기적 어기적 걸었습니다. 그리고 뛰는데, 정신없이 뛰는데, 35킬로에서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 마라톤이 쥐나는 것인 줄 알았지요. 

탄천의 물을 보는 순간 쳐박혀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자살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까만 물을 보는 순간, '콱 죽어버릴 까? 이 고통을 누가 이해해?' 그런데 등산할 때도 올라가는 사람에게 내려가는 사람이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하면 힘이 나듯이, 마라톤을 할 때도 '힘내'하는 말이 불문율이었습니다. 짧게 스쳐지나가면서 '힘!', '힘!'하는 소리가 납니다. 

목사 신분이 언제 드러날지 모르지요.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힘!'이 아니라 '흐-음'하고 나왔습니다. 뜻밖에 제 앞에 뛰고 있는 사람은 두 팔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팔이 있어야 균형이 잡히고, 힘이 생깁니다. 팔도 없는 사람이 듣든 안든든 뒷통수에 대고 '힘!힘!힘!'했습니다. '나는 포기할지 모르지만, 당신은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었지요. 제 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졌지만, 그 소리는 제 가슴에 꽂히기 시작했습니다. 4시간 14분대에 그 포기하고 싶던 그 마라톤을 마침내 완주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위로와 격려의 위대한 힘을 깨달았다. '힘! 힘! 당신만이라도 우리의 희망이 되어달라!'고 하면, 위로의 성찬이 차려지는 위로의 공동체가 가정이란 사실도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기러기 아빠'의 처절한 아픔을 함께 공감하는 마음으로 󰡐날자 기러기󰡑라는 주제로 가정의 달이 있는 5월 녹사평 역내에서 기러기 아빠들을 위한 전시회 및 세미나를 가지기도 했다. 또 서울시와 공동으로 '남성 폐경기' 세미나를 열어 4,50대 남성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감과 그에 대한 접근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외롭고 고달픈 기러기 생활이 끝난 것은 부인이 학위를 마친 것을 의미한다. 가정사역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97년 아내가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프로그램을 같이 계발하고, 평생교육원을 통해 인재들을 양육해 가정사역자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자녀의 성공, 큰 집, 높은 지위만 좇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공하고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죠. 하이패밀리는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할 겁니다."
 
▲ 송길원 목사는 "큰 목사는 행복한 목사가 큰 목사이고, 행복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지 큰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 크리스찬리뷰

새우잠을 자도 고래꿈을!

부산에서 일산으로, 일산에서 강남으로 베이스 캠프를 옮겨다니며,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장이 열렸다. 20여 년 가정 사역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지금 양평에 3만 여평의 땅에 꿈을 이루고, 행복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W-ZONE을 준비 중에 있다. W-ZONE은 7개의 비밀이 담긴 행복 타운이다. 바람개비 공원, 추모공원(Memorial Park), 숲속의 아고라, Egg Chapel, 육체와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언덕으로 '힐리언스 힐', '레버런스', '사랑의 종' 등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 할 이정표들로 다양하게 꾸며질 예정이다. 하이패밀리에서는 이런 꿈을 안고 지난 4월 28일 첫 삽이 될 '행복의 길' 오프닝 행사를 진행했다. 청사진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로 채워졌는지 마치 한국판 '가정 디즈니랜드'를 역사를 보는 듯했다.

"고신의대에서 퇴직금도 못받고 쫓겨나 막막했을 때, 해운대구 재송동 박종근 신경정신과에 수술실이 사라지면서, 박 장로님의 배려로 병실 하나를 빌려 기가연을 개소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개척예배라면 두 명은 되지 않습니까? 개소예배 드리고 나니 아무도 없었어요. 크리스마스 때 아이 운동화도 못사줘 카드를 내밀 때 면박 당했습니다. 쓸 수도 없는 카드 내밀었다고 말입니다. 헌금할 돈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박종근 장로님, 잊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때 스케치를 그려보았습니다. 저도 안믿으면서 말입니다. 3만평 땅에 꿈의 이런 동산을 그렸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너 그때 그렸던 그림, 히스토리, 부르슈어 기억나나?'하셨어요. 그때 그걸 보고 충격처럼 다가왔습니다. 17년 전 아이의 장난같은 꿈을 다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눈시울이 찡해진다. 아이 운동화도 못사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에서, 서울 여행 중에 친구들의 밥값을 제일 먼저 내던 그의 손이 새삼스럽게 커보였다. 그는 이렇게 도전했다.

새우잠을 자되 고래 꿈을 꾸어라!

"우리가 노래하는 것, 고래 꿈을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이루실 풍성한 하나님의 그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들여다보면 위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형교회 목사와 큰 목사를 착각할 수 있습니다. 큰 목사는 행복한 목사가 큰 목사입니다. 행복한 교회가 좋은 교회이지, 큰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가 나쁜 교회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는 교회가 나쁜 교회입니다. 교회 나오는 성도들이 마치 아이가 젖을 빠는 것처럼, 그 영광의 풍성함에 만족하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교회! 화평케 하는 자를 넘어서서, 레인메이커, 비를 내리며 시원케 하는 사람, 논밭이 쩍쩍 갈라질 때 가슴이 갈라질 때, 마음밭이 쩍쩍 갈라진 그들에게 레인 메이커로 구름과 단비를 내려주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 행복한 교회입니다."

이제 우리는 몇 년 후 그 옛날 고독하게 스케치로 그렸던 그의 꿈이 이루진 현장인 양평 W-ZONE을 탐사하게 될 것이다. 청사진에 나타난 W-ZONE은 꿈의 동산, 인형의 집이었다.

"가끔 인생의 쉼표를 찍고 싶을 때, 넉넉한 품으로 안아줄 이곳, 진정 행복한 인생을 꾸밀 수 있도록 도와줄 W-ZONE으로 행복탐사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글ㅣ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ㅣ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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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02 [16:0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