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라 시드니여!(WAKE UP SYDNEY)

2014 시드니성시화대회 리포트

글|김환기, 사진|권순형,이관희,윤기룡 | 입력 : 2014/03/24 [10:00]
▲ 4월호  표지   ©크리스찬리뷰

‘잠자는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아는가! 아름다운 백설공주는 왕비가 준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와 함께 살던 일곱 난쟁이는 지금 울고 있다. 누군가 그녀를 깨워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 삼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는 아름다운 도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곳. 그러나 시드니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시드니의 진정한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시드니의 교도소를 방문하여 보았는가? 시드니가 ‘마약 천국’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마디그라’를 보았는가? 이곳이 ‘소돔과 고모라 성’이 안 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제 이 시대, 이곳의 의인들이 분연히 일어나 잠자는 시드니를 깨워야 할 때가 되었다. 
 
▲ 시드니성시화대회 전경. 새순찬양팀이 이틀간 찬양을 인도했다.     © 크리스찬리뷰

시드니 마디그라 (Sydney Mardi Gras)

올해도 예외 없이 시드니에서 세계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마드그라’(Mardi Gras)가 2월 9일부터 3월 2일까지 열렸다. 축제의 공식 명칭은 ‘시드니 게이와 레즈비언 마디그라’(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이다. ‘마디그라’의 문자적 의미는 ‘뚱뚱한 화요일’(Fat Tuesday)’로 사순절 전날을 일컫는다.

사순절(CENDRE, Lent)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서부터 ‘부활절’(Easter) 전야까지 주일을 뺀 40일이다. 사순절은 죄를 참회하고 절제하며, 술과 육식을 금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며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원래 기독교 용어였던 마디그라가 시드니에 상륙하면서 동성애자의 축제로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시드니 마디그라’는 1978년 호주의 동성애자들이 ‘옥스퍼드’ 거리에 모여 '세계 게이 단합의 날'을 선포하고 인권 보호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78년의 첫 모임은 경찰의 무장 진압 아래 피를 흐리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79년에 ‘마디그라’라는 명칭으로 다시 모여 시위를 벌였다. 올해로 36년이 되었다. 
 
▲ 2014 시드니성시화대회 주강사 손봉호 장로     © 크리스찬리뷰

이제 마디그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성연애자들의 축제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축제 때가 되면 전 세계에서 동성연애자들이 시드니로 몰려 오고, 방송은 앞 다투어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도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마디그라 행사에 일조를 하고 있다.

마디그라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행사를 치른다. 올해의 주제는 ‘하나의 사랑’이다. 2013년은 ‘사랑의 세대’, 2012년은 ‘사랑은 동등하다’이다. 기독교의 핵심도 ‘사랑’인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도 ‘사랑’이다. 같은 단어이지만 의미는 아주 다르다.

시드니성시화대회의 대표본부장인 진반섭 장로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동성애자들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픈 상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싶습니다. 잘못된 것을 방관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 재헌신을 다짐하는 성도들.     © 크리스찬리뷰

2014 시드니성시화대회

시드니성시화대회가 시작된 지 벌써 8년이 지났다. 2014년 시드니성시화대회는 그 어느 해보다 여러 교회가 협력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특별히 시교협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기도회 때마다 필요한 말씀으로 많은 은혜를 끼쳤다.

성시화대회 주강사인 손봉호 장로는 대회 전날인 3월 6일 아침에 부인과 함께 시드니공항에 도착했다. 성시화대회 기간 동안 그는 세 번의 말씀을 전했다.

‘리버사이드 걸스 하이스쿨’에서 열렸던 첫날에는 ‘왜 사는가?’, 둘째 날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마틴 플레이스’의 ‘다민족 찬양 페스티벌’ 때는 ‘그리스도의 추종자’(The followers of Christ)란 제목으로 영어로 말씀을 전했다. 
 
▲ 인사하는 대표본부장 진반섭 장로     © 크리스찬리뷰

대회 첫째 날 (7일, 금)

리버사이드 걸스 하이스쿨(Riverside Girls’ High School)에서 개최된 첫날 대회의 사회는 공동회장인 나준석 목사가 담당했고, 대회를 여는 경배와 찬양은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찬양팀이 맡았다. 공동회장인 한영근 목사의 성시화와 시드니 복음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 후에 영상을 통하여 시드니성시화운동이 걸어온 길과 나갈 방향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대표본부장인 진반석 장로의 감사 인사에 이어서 고문인 홍관표 목사의 격려사가 있었다. 설교 후 시드니 장로성가단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시교협 회장인 최효진 목사의 축도로 은혜 가운데 첫 집회를 마쳤다.
 
▲ 격려사 전하는 고문 홍관표 목사     © 크리스찬리뷰

왜 사는가?

2014 시드니성시화대회의 주강사인 손봉호 장로가 시드니 교민들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다. ‘정말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 그는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의 말씀을 의지했다. 고전 13장은 사랑장이다. 헬라어에 사랑에 해당하는 4가지 단어가 있다. 영어는 구분하지 않고 모두 Love라고 표현을 한다. 손 장로는 특별히 Eros사랑과 Agape사랑을 비교하며 설명했다.

“Eros는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Agape는 사랑할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사람을 사랑해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능동적인 사랑이다. 따라서 아가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약학자 C. H. Dodd는 ‘사랑은 감정이나 애정이 우선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능동적인 의지의 결단이다. 그러므로 감정은 명령될 수 없는데 비해서 사랑은 명령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틀간의 성시화대회에서 대한민국과 민족, 호주정부와 민족, 성시화운동, 한인 디아스포라를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     © 크리스찬리뷰

손 장로는 ‘에로스와 아가페’의 본질적인 차이를 구분한 후 말씀을 이어갔다.

“아가페 사랑은 기독교 구원의 핵심이다. 만약 하나님이 에로스로 우리를 사랑했다면, 즉 수동적으로 우리를 사랑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아무도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은 수동적이지만, 의지는 능동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다.

즉, 우리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먼저 하신 일방적인 사랑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수동적 사랑인 에로스로 사랑하셨다면 인간은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근거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사랑이므로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사랑의 삶이 되면 하나님을 본받는 삶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성경에서 제자란 단순히 스승의 지식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스승을 본받는 사람이다.”
 
▲ 첫째 날 대회에서 찬양하는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성가대     © 크리스찬리뷰

손 장로는 ‘우리가 사는 이유’를 사랑에서 찾았다. 조건없이 사랑 받은 우리는 이제 조건 없이 남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힘입어,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2) 무슨 말인가? 감정을 토대로한 ‘수동적 사랑’이 아닌, 의지적 결단을 통한 ‘능동적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왜 사는 가’ 바로 이런 사랑을 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이란 사랑할 가치나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사랑할 ‘가치와 자격’을 부여해 주는 사랑이다. 
 
▲ 둘째 날 대회에서 찬양하는 시드니제일교회 성가대     © 크리스찬리뷰

대회 둘째 날 (8일, 토)

예배분과위원장인 이상배 목사의 사회로 둘째 날 집회가 시작되었다. 공동회장 오성광 목사의 기도에 이어 공동본부장 노정언 장로의 성경봉독과 시드니제일교회 성가대의 은혜롭고 아름다운 찬양이 있었다. 손봉호 장로의 설교 후 소프라노 이승윤의 특송(나를 창조하여 주옵소서)이 있었다. 둘째 날 집회는 고문인 김종규 목사의 축도로 집회를 마쳤다.
 
▲ 찬양하는 성도들     © 크리스찬리뷰

어떻게 살 것인가?

손 장로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이다. 첫날의 ‘왜 사는가’는 ‘삶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라면, 둘째 날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실천적인 삶’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존심(Pride)은 자존감(Self-esteem)과는 다르다. 자존심은 교만과 같아서 상대방과 비교하여 우월할 때 갖는 마음이다. 교만과 열등감은 ‘비교의식’이라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교만해 지는 사람이 쉽게 열등감에 빠진다.

하지만 손 장로가 말하는 ‘자존감’(Self-esteem)이란 나 중심의 ‘비교의식’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창조의식’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나를 나로 만들었고, 너를 너로 만들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 역시 내가 될 수 없다. 비교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를 유일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되어야 하고 너는 너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상품이 아닌 작품이다. 그것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걸작품이다.
 
▲ 대회 첫날 찬양하는 시드니장로성가단     © 크리스찬리뷰

손 장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신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라고 부른다. 즉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여하셨던 특권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제시한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어떻게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손 장로는 12절 말씀을 인용했다.

오늘의 본문은 방법을 제시한다. 즉 선한 행실이다.
“여러분은 이방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벧전 2:12)라고 베드로가 가르친다.”
 
▲ 둘째 날 찬양하는 소프라노 이승윤     © 크리스찬리뷰

그는 선한 행실에는 ‘적극적인 행실’과 ‘소극적인 행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선한 행실에는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이 있다. 적극적인 선행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행위이다. 보통 말하는 사랑, 자선, 봉사 등이 그런 것이다. 적극적인 선행 못지않게 중요한 선행은 소극적인 것이다.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윤리적인 행위라 한다. 윤리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끼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요구한다.”

손 장로는 윤리가 상실한 한국교회를 안타까워하며 구체적 통계를 제시했다.
“불행하게도 최근 한국교회는 그 위대한 유산을 다 탕진해 버리고 지금 윤리적으로 파산상태에 빠졌다. 앞에 언급한 기윤실의 한국 교회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는 19.4%밖에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에서도 가톨릭 29.2%, 불교 28%, 개신교 21.3% 신뢰를 받아 가장 불신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한국 기독교인들도 인정할 정도가 되었다.”
 
▲ 시드니 중심가에서 펼쳐진 성시화 다문화 행진. 행진 대열이 타운홀 앞을 지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설교자와 설교’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손 장로의 설교의 힘은 그의 삶에서 나온다. 그는 말한 대로 사는 사람이고, 최소한 그렇게 노력하며 살아 온 사람이다. 설교자가 믿어져야 설교가 가슴에 와 닫지 않겠는가! 손 장로는 윤리가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함을 힘주어 강조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에 ‘설명’ (explanation)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 (witness)에 의하여 전파된다. Tertullianus의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Credo quia absurdum)는 좋은 참고가 된다. 기독교의 기본 교리는 대부분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Tertullianus의 생각이다. 
 
▲ 타운홀을 지나는 행진대열     © 크리스찬리뷰

증거에서 중요한 것은 증인의 신실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임이다. 우리 성경이 충성이라고 번역한 말 (pistos)은 ‘믿을만한, 신실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되었을 때는 “미쁘시다”로 번역되었다. 하나님은 믿을 만하다. 증인이 거짓말하면 위증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이 신실함을 상실하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하다.”

손 장로는 ‘마음의 경찰’(police within)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다. 경찰이 있으면 모든 것을 조심한다. 우리 안에도 ‘마음의 경찰’이 있다면 우리는 좀더 깨끗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성전인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전 3:16) 
 
▲ 휠체어 타고 행진에 참가한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정우성 목사. 정 목사는 2011년 성시화 행진 중 심장충격으로 쓰러진 이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성시화를 위한 남다른 열정으로 이틀간의 대회와 다문화행진에 참가하여 성도들로부터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 크리스찬리뷰

그렇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마음의 경찰’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 그분은 우리 안(in us)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with us)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for us)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대회 셋째 날 (9일, 주일)

성시화 행진 (Holy City March)


시드니 시내에 있는 벨모아 팍(Belmore Park)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행진 시간이 가까이 오면서 여기 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뉴카슬에서 오는 중인데 집회 장소가 정확하게 어디입니까”, “센트럴 코스트인데 몇 시까지 가야합니까?”, “중국 교회인데 무엇을 준비해야 됩니까?, “라디오를 듣고 전화하는데 행진에 참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성시화대회의 하이라이트는 행진이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드니 중심 도로인 조지스트리(George Street)를 통과하여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까지 행진하는 것이다. 행진은 오후 3시 30분 벨모아 팍에 집결하여 오후 4시에 출발한다. 
 
▲ 매년 시드니성시화대회 선두를 인도하는 구세군선봉악대. 트럼본 주자가 휠체어를 타고 연주하여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았다.     © 크리스찬리뷰

필자는 2시가 조금 넘어 벨모아 팍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에서는 성시화운동본부 임원들이 행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시가 넘었는데도 경찰이 오지 않아 전화했다. 3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경찰차 두 대가 도착했다.

출발 전에 뉴카슬에서 온 노부부를 만났다. “어떻게 오늘 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물으니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고 한다. 한 중국인이 진행 절차에 대하여 물었다. 그의 이름은 ‘Michael Lee’이다. ‘생명의 떡’(Bread of Life) 담임목사인데 오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하여 교인 80여 명과 함께 왔다고 한다. 마이클 목사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잘 알려져 있다. 행진을 주도해 주어 감사하다. 지난 주 마디그라 행진이 이곳에서 있었는데,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함께 성시화행진을 하게 되어 너무 좋다. 오늘 행진을 통하여 ‘마디그라 정신’을 ‘기독교 정신’으로 정화시키면 좋겠다. 내년에는 더 많은 중국교회에 알려서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출발시간이 가까워지면서 ‘구세군 선봉악대’가 선두에서 대열을 정렬하기 시작했다. 시드니주안교회의 자원 봉사자들도 제자리를 잡았다. 가장 선두에는 대형십자가가 있고, 바로 뒤에는 성시화 관계자들이 배너를 들었고, 구세군 악대 뒤에는 약 1천500여 명의 다민족 교인들이 교회 별로 줄을 섰다. 시교협 회장인 최효진 목사의 기도가 있은 후 구세군 악대의 힘찬 연주와 함께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의 후미에는 송민선 권사의 무용 팀과 강형국 태권도 팀이 뒤를 따랐다.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며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행진 대열은 그 어느 해보다 길었다. 타운홀 앞을 통과할 때에 행진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시드니의 최고 중심부인 타운홀 앞을 ‘그리스도의 깃발’을 흔들며 통과하는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행진의 선두에 섰던 손봉호 장로는 이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차량을 통제하고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시드니 중심 도로를 통과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화 찬양 페스티벌 (Multicultural Praise and worship Festival)

행진 대열은 ‘다문화 찬양 페스티벌’이 열리는 ‘마틴플레이스’에 4시 50분경에 도착 했다. 시드니주안교회 경배와 찬양 팀의 찬양으로 축제의 막을 올렸다. 행진을 주관한 구세군의 김환기 사관은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시드니성시화운동이 시작된 배경에 대하여 설명했다.

“오늘 참석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성시화운동은 8년 전 시드니에서 시작되었다. 성시화운동이란 전교회가 연합하여, 전복음을, 전도시에 전하는 운동이다. 성시화운동은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운동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성시화 운동을 통하여 시드니가 거룩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이어 침례교회 목사인 Peter Rahme의 헌금 기도가 있었는데 이날 헌금 전액은 산불(Bush Fire)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리드머 침례교회(Redeemer Baptist) 찬양 팀의 찬양이 있은 후, 성시화운동을 여러 면으로 후원하고 있는 NSW주 상원의원인 Fred Nile 목사의 인사말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나일 목사는 시드니에서 마디그라 축제가 열리는 것에 대하여 매우 개탄하고 있다. 몇 년 전 마디그라 축제 때 피켓을 들고 반대하다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얼마 전 NSW 주 ‘동성 결혼법’을 저지하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는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힘을 합쳐 시드니가 깨끗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의 모든 집회는 영어로 진행이 되었다.

손봉호 장로도 ‘The followers of Christ’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말씀을 전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따라 가는 사람이고,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를 닮아가는 것인가?” 그는 디모데 후서 1장 1-5절의 말씀을 의지했다. “말세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호주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다. 특별히 이기적인 자기 사랑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오늘 우리는 성시화행진을 했습니다. 우리는 보여주는 행진을 했으니, 이제 보여준 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손 장로의 설교가 끝나자 모두 함께 일어나 말씀대로 살 것을 결단하며 ‘How Great Thou Art’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했다. 나일 목사의 축도로 2014 시드니성시화대회의 대단원 막을 내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다민족들이 참여해 은혜 가운데 대회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렇게 고백했다.
“성시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 시드니성시화대회를 적극 지원하고있는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가 찬양 페스티벌에서 인사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대회를 마치며

성경에는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이 있다. ‘남은 자’란 혼탁한 세상 속에서 영적으로 사는 소수의 무리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다.

신학자 틸리히(P. Tillich)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말하고 있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걸머진 작은 집단’이라고 하였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 (Challenge and Response)으로 역사의 이론을 정립하였다. 그는 “문명이란, 생명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 응전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토인비는 역사를 주도하는 두 그룹이 있다고 했다. ‘지배적 소수(Dominant Minorities)’와 ‘창조적 소수 (Creative Minorities)’이다. ‘지배적 소수’는 역사를 후퇴시키고, ‘창조적 소수’는 ‘창조적인 응전’을 통해 역사를 발전시킨다. 신학자 입장에서 ‘남은 자’는 역사학자에게는 ‘창조적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이 시대의 ‘남은 자’는 누구일까? 시드니에 사는 ‘창조적 소수’는 누구일까?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은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곳에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글/김환기ㅣ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권순형ㅣ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이관희ㅣ객원 기자, 윤기룡ㅣ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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