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7/28 [11:11]

인생의 불행은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 버리고 잊어 버려야 할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하여 잊어 버리고 갖지 못한 것은 누구 탓이고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에 품고 있다. 친구에게 꾼 돈은 잊어 버리고 받을 것은 칼같이 기억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하지만, 자식은 당연하게 생각하며 잊어 버린다.

이미 받은 은혜는 잊어 버리고 받아야 할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 자신이 준 상처는 잊어 버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는 한을 품고 기억한다. 그래서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다.
 
신명기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한 모세의 세 번의 설교이다. 모세는 세 번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하셨으며 광야에서 조상들을 인도하셨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기억하라’고 했다.
 
‘기억하라’는 뜻의 ‘자카르’는 신명기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민 1세대의 어려움을 이민 2세대는 잘 알지 못한다. 1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줄 사명이 있다. 자신이 고생한 것을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시드니 북부에서 목회하시는 분이 있다. 그분의 아버님은 일제시대에 신앙운동으로 반일운동을 하셨다. 감옥에서도 3년 6개월 사셨다. 해방 후에 자신은 애국한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킨 것이라며 극구 훈장을 사양했다. 소천하신 후에 큰 아들이 국가에 아버지의 활동자료를 올렸다. 장손으로 후손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알려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검토한 정부는 그분의 묘를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하고,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혜택을 자녀들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이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후손들은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지난달 호주한국일보에 구세군교회에 다니는 김연려 집사의 6.25 특집 기사가 실렸다. 84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만 생각해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분이다.
 
그는 1969년에 ‘벽파함장’이란 글로 ‘신동아’ 공모에 당선하여 등단하고, ‘수출선원’, ‘죽음의 항로 페르시아 항해기’, ‘경로헌장’을 등의 많은 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당신의 이름으로 책 한 권 나온 적이 없다. 몇 번이나 책 발간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으나 변변치 않은 글이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하셨다.
 
얼마 전 그를 만나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을 위해서 책을 발간해야 한다고 했다. 먼 훗날 손자 손녀들이 책을 통하여 만난 ‘우리 할아버지가 이런 분이구나’를 알게 되면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는가!
  
역사란 현재와 관계없이 뚝 떨어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는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하여 배우지 못한 민족은 역사의 어리석은 전철을 다시 밟는다고 했다.
 
역사학자 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임 없는 대화'라고 했고, 나는 역사란 '사건과 사관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일어난 사건은 변하지 않지만, 사관이 누구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관’(historical view)이라고 한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view)이다. 무신론자는 무신론자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할 것이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 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ia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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