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K 호주 사무소 기준현 소장

죽음의 길에서 신을 만나다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10/27 [11:36]
▲ 죽음의 길목에서 예수를 만난 기준현 소장     © 크리스찬리뷰


한국과 호주의 가교역

"시드니만 벗어나면 호주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모릅니다. 삼성, 현대, LG는 잘 알아도 말입니다. 심지어 기업들도 기업 이미지 때문에 한국과 같이 연결되는 것을 싫어할 정도입니다. 다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시의원들이 기억하는 건, 아주 오래 전 멜본 올림픽 때 한국 선수들이 너무 가난해 비행기 삯이 없어 그것을 성금으로 모아준 기억이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맨리와 우호도시(Friend Cities)인 영도구의  방문을 계기로 맨리 카운슬과 국기 게양식을 갖고 본지 권순형 발행인의 한국 근ㆍ현대 사진전을 개최하는데 산파역을 감당한 GAOK(전국시도지사협의회) 기준현 소장의 첫마디였다.
 
“호주 지방정부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높아집니다. 이렇게 지방정부와 한국의 도시들과 우호협력관계, 혹은 자매도시 관계를 맺으면 서로 빈번하게 오가게 됩니다. 각 지방정부의 CEO들이나 자매도시 위원들이 일 년에 한두 번은 한국을 방문하다 점점 횟수가 늘어납니다. 한국 물품도 많이 사고 한국을 더 많이 깊이 알게 되고 다 친한파가 되지요.”
 
이렇게 지방 간 교류 이후 한국에 가서 보고 한국의 이미지가 높아지고, 한국 물품을 안심하고 살 정도가 되고, 호주 시장이 넓어졌다고 한다. 풀뿌리부터의 교류가 국가 간의 경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드니를 벗어난 시골에서는 ‘코리아。ッ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안타까움이다. 지난 3월 시드니에 다시 부임한 그는 호주와 한국의 가교역할을 감당하며, 시골까지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한여름에 비지땀을 쏟고 있다.
 
“GAOK는 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이른바 '시드니 선언'으로 세계화 물결을 타고 해외교류재단을 배경으로 합니다. 2005년에 교류재단 소장으로 시드니에 부임하여 2년 간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도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통합되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그 당시와 같은데 타이틀이 바뀐 것입니다.”
 
과거에는 공무원끼리 교류에서 지금은 기관 간 교류로 많이 바뀌면서, 특히 문화。、교육 교류 쪽으로 주민들과의 직접 교류가 상당히 넓혀졌다고 한다. 그렇게 교류의 폭이 확대 심화되다보니 처음 부임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것을 느꼈다고 한다. 호주 현지 국민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도 했다.
 
“물론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관계가 넓어져서된 면도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아는 시장이나 CEO를 만나자 해도 한국에서 왔다면 안 만나 줄 정도였습니다. 불과 10년도 안된 세월인데 엄청 차이가 납니다. 그 당시와는 달리 한국의 이미지가 많이 높아진 것을 느낍니다.”

 
▲ 블랙타운시 태극기 게양식과 대구 수성구와의 자매결연 20주년 기념 우정의 나무 심기 행사에 참석한 기준현 소장. 오른쪽은 맨리시에서 영도구청 어윤태 청장과 국기 게양식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친한파 붙잡기
 
그가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한국 광역지자체(도, 광역시, 특별자치도 등)와 기초 지자체(시군구)와 호주 및 뉴질랜드의 여러 주정부나 지방정부 간의 자매도시, 우호도시 등을 결연하여 교류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 지원 내용의 상당부분이 지방의원이나 공무원들의 '방문 연수'이다. 흔히 말하는 '관광성 외유'로 혈세를 낭비한다며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리는 메뉴이다. 여기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보자.
 
“일을 하면서 노는 문화, 그리고 문화와 여가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과의 교류를 외유라고 하며 예산낭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과 저 나라 사람 사이에 얼굴 맞대고 교류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관광을 가도 가급적이면 그 나라로 갑니다. 한국전쟁에 호주 군인들이 참전한 가평전투를 이들은 아주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가평전투는 호주 단독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기에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여기 호주 학생들에게 한국 가평전투 현장을 한번 보고 자긍심을 갖게 하고 한국을 알립니다.
 
호주의 교장단을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보냅니다. 이 분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크게 놀랍니다. 갔다 오면 호주의 지방정부에서 한국으로 수학여행 가는 팀이 늘어납니다. 호주인들이 10만 명쯤 한국으로 가다가 지금은 13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환율이 떨어져 20% 돈이 더 들지만 관광객은 늘어났습니다. 공무원이 와서 한 학교 정도 수학여행 가면 얼마나 큰 일을 한 겁니까? 호주는 돈이 좀 비싸도 합니다. 이곳 청소년들이 한국 가서 한국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지, 뭘 보고 오게 할 것인지도 치밀하게 연구해야 합니다. 그저 서울 가서 돈 쓰게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이 어떤 나라라는 걸 알리는 게 제일 중요하지요. 정부 홍보자료가 아닌 방법으로 말입니다.
 
사실 누가 그런 자료를 보고 즐깁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합니다. 한국의 지방의원들이나 공무원들과 이곳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CEO, 주민들이 서로 만나 이해가 확산되면서 생기는 입소문이 훨씬 효과가 큽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안 됩니다. 이처럼 ‘방문 연수。ッ의 부수효과는 계량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큽니다. 공무원이 온다고 그저 놀다간다고 단순하게 말할 게 아닙니다.“
 
▲ 맨리시와 영도구가 지난 10월 3일 맨리시청에서 우호결연 실행협약 MOU체결식을 가졌다. 오른쪽부터 기준현 소장, 어윤태 영도구청장, 진 헤이 맨리시장, 이동옥 한국문화원장.     © 크리스찬리뷰

우호도시, 자매도시
 
현재 한국에서 호주의 도시들과 자매도시(도, 주)로 연결된 곳은 광역 자치단체로는 NSW주와 서울이 1991년 자매결연 한 이래, 빅토리아주와 부산(1994), 퀸스랜드주와 경기도(1997), SA와 충남도(1999), 그리고 대전시와 브리스번(2002)이다.
 
기초단체로는 NSW주에서는 은평구와 캔터베리가 1988년도에 자매결연을 맺은 이래 펜리스와 강서구, 파라마타와 서울 중구, 뱅스타운과 양천구, 금천구와 버우드, 수성구(대구)와 블랙타운, 해운대구와 맨리 가평군과 스트라스필드가 있다. 퀸스랜드주에서는 수원시와 타운즈빌, 파주시와 투움바, 삼척시와 테이블랜드가 자매결연을 맺어 두 도시들 간의 우호를 증진하고 있다.
 
우호도시로는 광역단체로는 제주도와 타스마니아주, 경북은 WA, 경남과 전남은 퀸스랜드주와 협정을 맺고 있다. 기초단체로는 서울과 시드니, 고성(경남)과 블루마운틴, 나주시와 아이삭(퀸스랜드), 강동구와 윌로비, 서초구와 퍼스 11개 도시와 맺고 있다.
 
여기서 자매도시와 우호도시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직접 기 소장의 말을 들어보자.
 
“호주의 자매도시협의회와 자매도시 위원회가 있습니다. 대부분 전직의원들인 카운슬러들이나 상공인들이 위원들입니다. 그 위원들이 해외 자매도시와 자매도시를 맺는 목적이 분명하고 적합해야 합니다.
 
먼저 '우호협력도시'를 통해 교류를 해보고 이후 상호 이익이 되겠다고 판단되면 '우호협력도시'에서 한 단계 올라가 '자매도시'가 됩니다. 우호협력도시로 지속적으로 교류하다 4-5년 후가 되면 자매도시로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매도시와의 활동은 한국 쪽에서 얼마나 활동하느냐에 따라 활성화되기도 하고, 시들해지기도 합니다.
 
호주는 우호도시를 여러 도시와 맺을 수 있지만 자매도시는 한 도시와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연 후 해제도시 방법도 없습니다. 이번에 맨리의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이미 해운대구와 자매도시로 결연을 맺어있기에 영도구와는 우호도시로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 간, 도시 간 교류를 통해 국익을 담아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한 해 한국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연수팀이 60여 팀이다. 일 주일에 한 팀 정도 된다. 이들의 체류기간 최대한의 효과를 얻어내도록 그를 포함한 GOAK 직원 3명은 민간외교의 최첨병으로 불철주야 뛰고 있다.
 
▲ 기준현 소장은매일의 말씀을 노트에 적은 후 매일 아침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준다.     © 크리스찬리뷰

죽음의 길목에서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호주의 네트워크에 한 코도 차질 없이 짜고 있는 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진다.
 
어릴 적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어온 그는 한강 이남 최고의 천재들이 입학하는 경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과 74학번으로 입학했다. 공부가 취미였고, 공부가 가장 쉬웠던 그는 원래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절 '천재들에게 거는 기대'가 그렇듯, 가정에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고시를 택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가장 큰 좌절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주변의 상황 때문에 공직에 입문한 것 자체를 실패라고 여길 정도였다.
 
별 어려움 없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내무부와 서울시 대구, 경북을 오가면서 중앙부처에서 예산, 교통행정, 실업대책, 공무원 교육원, 국제화재단 등의 부서에서 숨 가쁘게 뛰어다녔다.
 
공직 생활 중에 때로는 기쁨과 보람을 때로는 심각한 좌절을 맛보던 그는 2009년 건강에 상당한 충격이 왔다. 코마(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공직에서의 심적 스트레스로 어느 정도 과로, 면역 저하로 패혈증, 간농양, 패렴, 다발성 장기부전 등 7가지 병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준비하라고 할 정도였다. 가족들 역시 마지막인 줄 알고 그를 안고 절실히 기도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세상과 저세상을 잇는 경계에 서있는 자신이 보였다(코마 상태에서 깨어나기 전에 보았던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마상태에서도 ‘내가 왜 이러지? 다른 놈 탓이다 라며 남을 원망하거나 나쁜 일을 한 적도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러지?’하고 있었어요, 그때 하늘에서 ‘네가 그렇게 똑똑했으면 저쪽(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가는데, 다른 사람이 누가 너를 잡겠느냐?’고 해요. 그래서 '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연히 가지'하고 생각하면서 드러누워 ‘얘들아 저쪽으로 가는데 가도 괜찮으냐?’하니 아무 대답도 없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일곱 번, 열 번째도 ‘진짜 가도 괜찮느냐고?’하며 벌떡 일어나 봐도 누구 하나 나타나 저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무도 안돌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포기하려는 순간 '진짜 간다'하고 한걸음 내딛으니 빛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도 진짜 나를 붙잡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니 당시 늦둥이로 본 중 3인 아들이 있었어요, '아 네가 있구나'하는 그 순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 호주와 한국의 가교 역할을 감당하며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기준현 소장.     © 크리스찬리뷰

극적으로 만난 예수
 
이때 부인과 아들은 처절하고 절박하게 울부짖으며 기도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때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신체 기능이 점점 작동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왔다 하니 소리가 귀에 들렸다. 서너 번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가족들을 불러 마지막이라고 인사하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때가 2010년, 죽음의 문지방을 넘어 몇 발자국 들어섰다가 바울처럼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다시 돌아가면 이렇게 살지 않겠다 하는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아들이 웃고 부축하여 일어나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나가는 교회 분들이 와서 기도해주고, 교회에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중환자실에 두 달 있다가 살아난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었고, 매일 한두 명씩 죽어나갔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겨 정신이 다갔다 할 때 의식이 돌아왔지만, 신체 기능이 모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병상에서 죽음의 길목은 신의 음성을 들은 현장이었다. 그 이후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되었다. '죄 없다'고 생각한 그는 불현 듯 '잘 나가던 시절'에 '교만하다'고 들은 말이 생각났다.
 
특히 포항시장으로 있던 친구가 충심어린 우정으로 해주던 그 충고가 가슴을 쳤다. 그때까지 한국의 엘리트 1%로 살아왔고, 남들보다 뛰어났고, 고시 출신 서울법대 출신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를 아끼는 친구들은 '너 교만하다. 조금만 숙이면 될 텐데'하는 충고를 많이 들어왔던 터였다.
 
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병 와중에 그는 인간의 죄성과 관련한 개인 체험과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번은 제주도의 평온한 마을에 서 있는데, 겉보기에 평온하고 아름다운 마을같아 보였지만 곧 그 땅 밑으로 길고 복잡한 '죄의 줄'이 보였습니다. 또 한 번은 병원 밑 지하에 제가 서있는데 시체가 담겨있는 큰 수조가 보였고, 역시 각각의 시체들 밑으로 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죄의 줄이 보였습니다.
 
두 번 모두 겉보기엔 죄가 없어보여도, 즉 저 자신을 되돌아 봤을 때 제가 죄가 없다고도 믿었고 죄가 없는 것처럼 여겼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 관점에서 말하는 인간 본연의 죄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가고, 주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회복 후 병중에 문병 왔던 아내의 교우들과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휠체어를 끌고 교회에 출석했다. 또 성경을 읽어보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선물 받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성경은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요, 나침반이었다. 4년 전 그의 발목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 아들(지금 한국에서 고 3으로 수능 치름)에게 아침마다 카톡으로 매일의 말씀을 보내준다.
 
“처음 중3인 아들의 손을 붙잡고 교회를 처음 나갔지요. 그리고 성경도 읽다보니 저의 교만, 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죄 없다는 것은 세속사회에서는 죄 없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죄, 특히 교만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 맨리시청에서 국기 게양식을 가진 후 기념 촬영. 왼쪽부터 기준현 소장, 어윤태 영도구청장, 진 헤이 맨리시장     © 크리스찬리뷰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큰 감사
 
공직으로 마무리할 날이 머지않은 그와의 단답형 일문일답이다.
 
- 평소 삶의 철학과 소신은?
“나쁜 일은 하지 말자. 욕심 없이 남에게 피해 끼치지 말고 정도로 살자.”
 
-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푸른 하늘 볼 수 있음에, 숨 쉴 수 있음에 매순간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가치이다"

- 내일 우주의 종말이 와도 오늘 이 일만큼은 하고 싶다는 일이 있다면?
“이제껏 살아오면서 해 끼친 적이 있다거나 상처를 줬다거나 죄지은 사람이 있으면 일일이 찾아가 사죄하고 엉킨 매듭이 있으면 풀겠다.”
 
- 10년 후, 20년 후의 꿈이라면?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능력,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나님께 그런 마음과 능력 달라고 기도 중이다"
 
- '공직자'란 한마디로?
“마땅히 '유리어항 속 금붕어'이어야 하나 현실은 '흙탕물 속 잉어'이다"
 
- '치유'란 한마디로?
“'세상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이며, 그러한 치유가 본인에게 일어난 것에 감사한다.”
 
- 이제껏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의 의미와 행복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다.”
 
 -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후배들에게 간단히 멘토링이 될 만한 내용? :
“진정으로 시민과 공공사회를 섬길 마음이 없다면, 세상적인 욕심이나 조건 때문에 시작해서는 안된다.”
 
 - 늘 묵상하는 성경말씀은?
“매일 아침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굳세게 살아라'라는 의미에서 묵상을 통해 성경말씀들을 전달하고 있다. 특별히 항상 묵상하는 성경말씀이 있다기보다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찾고 있다.”

 
▲ 시드니총영사관에서 열린 한국장애인협회 시드니 마라톤대회 참가자들 워크숍에 이휘진 총영사와 기준현 소장이 자리를 함께하여 장애인 선수들을 격려했다.     © GOAK

 
- 추천하고 싶은 책은?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 따로 있지는 않고, 책에 대해 말하자면, 철학책이나 물리학 관련 서적을 좋아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한계를 많이 깨닫는다.
 
특히 과학의 꽃이라 불리는 물리학의 경우 최고 경지에 도달하면 할수록 더더욱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된다는 말을 예전에는 난센스라 생각했으나, 이제야 그 말이 진정 무슨 뜻인지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인간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상의 한계 가운데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해석하고 자신을 틀 안에서 판단하는 오류가 얼마나 한심하고 무의미한 일인지 깨달았다.”
 
- 시드니에 대한 생각, 시드니 교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서로 더 배려하고 포용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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