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박천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12/29 [10:42]
인류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와 상상하는 것은 ‘행복’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행복’을 원하는 만큼 행복을 위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다. 행복은 생각하면 저절로 오거나, 말하면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고, 행복은 자신의 힘과 시간을 들일 때 생기는 땀방울로 빚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땀방울이 다 행복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행복이라는 땀방울은 거기에 몇 가지 특징적인 표시가 있다.
 
첫째, 유익이라는 표시이다.

행복은 유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안된다면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고 다른 사람도 그 유익을 통해서 행복한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행복의 생리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의로운 유익’이라는 것이다. 불의를 통해서 유익을 얻고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유익은 모든 사람에게 의롭게 적용이 되어야 하고 그 유익은 행복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 욕심이 없음의 표시이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욕심이다. 욕심이 발동하면 하늘에 먹구름으로 가득 차 태양이 안 보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보이고 욕심 내는 것만 보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은 마비되고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만 작동된다. 이것은 행복을 방해하고 불행을 낳는 시작이 된다.
 
이 욕심이 없어지면 나의 모든 것이 편협함이 없이 정상적으로 레일 위에 달리는 기차처럼 행복을 향해서 달려갈 것이다. 욕심은 나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살인무기이다. 그래서 나의 욕심을 비울 수 있다면 행복이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셋째, 자족함의 표시이다.
 
자족함은 스스로의 만족함을 말한다. 내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든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작은 기쁨이나 작은 감사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염되어 있는 물이라 할지라도 샘물이 계속해서 솟아난다면 머지않아 맑은 물로 정화될 것이다. 생활 속에서의 작은 만족은 점점 더 큰 만족을 만들어 낼 것이고 머지않아 자족함을 이루어 삶에 행복의 햇살이 비칠 것이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행복을 향해 가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행복의 최고봉에는 예수가 있다.”
 
행복하게 살려면 ‘일, 십, 백, 천, 만’의 이론을 실천하면 된다고 한다. (허들링 책에서)
  일: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십: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고
  백: 하루에 백 자 이상 글을 쓰고
  천: 하루에 천 자 이상 글을 읽고
  만: 하루에 만 보 이상 걸어라.

2015년 을미년 새해에는 그 어느 해보다 더 행복한 해로 만드는 행복의 일꾼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특별히 크리스찬리뷰 25년의 사랑의 행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행진을 통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사랑의 샘물, 행복의 샘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천순|아들레이드은혜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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