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소크라테스에게 배웠다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3/23 [14:31]
오래 전에 죽은 소크라테스를 단번에 불러낸 사람은 스티브 잡스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오후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우리 회사의 모든 테크놀로지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였다. 잡스가 훅간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Socrates 470 BC – 399. 5. 7 BC)는 조각일을 하던 아버지 소프로니코스와 산파였던 어머니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모는 누구말마따나 기이한 편이었다. 키는 작았고 몸은 뚱뚱했다. 벗어진 이마에 눈은 심하게 튀어 나왔고 코는 들창코인데다 입은 메기만큼이나 컸다.
 
철학사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관심을 자연에 두었다. 자나깨나 오로지 만물의 제1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데 골몰하였다. 그러다 보니 하늘만 쳐다보다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들은 물(탈레스), 공기(아낙시메네스), 수(피타고라스), 불(헤라클레이토스) 등이 만물의 아르케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탐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철학의 대상을 인간으로 옮겨 놓았다. 진리와 선과 미의 문제로 철학의 초점을 이동시킨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이 문제를 집요하게 질문하여 <아직도 나는 모른다>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그 무지의 고백 위에 정의 절제 용기 경건 등 4가지 덕목을 세워 나가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아테네는 이 지혜자의 사려깊은 행위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독배를 안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윌 듀런트의 지적대로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속도보다 빨리 가르치는 자는 결국 박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알려면 그의 죽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의 죽음에 대한 판결문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피토스 구민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가 알로페케 구민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맹서와 함께 다음과 같은 논고를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다른 신령들을 들여오는 죄를 범했다.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죄를 범했다. 형벌은 사형에 해당된다>.
 
그의 재판에는 모두 500명의 배심원이 참석했는데 유죄냐 무죄냐를 가리는 투표에서 280대 220, 60표 차이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사형이냐 추방이냐를 결정하는 투표에서는 360대 14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적대적인 숫자가 늘어난 것은 유죄가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려달라 애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배심원들을 미련하고 우매하다고 싸잡아 비난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참으로 의연하고 대담하다. 얼마든지 탈출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법도 법>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신다.  그의 최후는 <변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소크라테스가 이처럼 죽음을 대범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 탓이다. 그는 죽음을 영혼이 몸에서 결별하는 <분리>와 영혼이 몸의 억압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해방>과 영혼이 몸의 오염으로부터 깨끗함을 입는 <정화>로 보았다.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이며 죽음은 영혼을 완전에 이르게 하는 관문일 뿐이다.
 
그의 희망은 하데스(죽은 자들이 머무는 곳)에 들어가 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혼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참된 인식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유대교와 여호와 신앙을 알았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쪽으로 많이 살펴 보았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그가 한참 활동하던 때가 이스라엘로서는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로 이어지는 바벨론에서의 귀환과 성벽재건, 성전재건, 신앙재건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여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는데 지중해를 사이에 둔 아테네와 예루살렘 간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다만 그는 플라톤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키워 그를 통해 먼 후일 신생하는 기독교와 조우하는 축복을 누렸다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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