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과 자아초월

김종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6/29 [10:38]
1908년 하버드대학 조시아 로이스 교수는 일찍이 ‘충절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넘어서는 대의명분(a cause beyond ourselves)'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애국심과 신앙심 같은 큰 것일 수도 있으며,  애완동물과 같은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을 위하여 희생할 때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로이스 교수는 개인주의를 반대하는 개념으로 ‘충절(loyalty)’이라고 불렀다. 또한 로이스 교수는 “우리는 내적인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외적인 빛을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말했는데, 이는 최근 심리학의 외성(外省/outrospection)-아직 사전에 나오지 않는 심리학의 신조어-을 이미 언급한 셈이다. 외성이란 자기 자신 밖으로 나아가 타인들과의 삶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으로 내성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지금껏 내성(內省/introspection)만 너무 강조되어 왔다. 특별히 프로이드로 촉발된 무의식과 정신분석은 ‘내성의 종교’라 할 만큼 20세기를 지배하였으나, 이러한 개인주의가 사람다운 삶을 가져다준 일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내성과 외성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최근 심리학의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할 수 있다.
 
외성을 '자아초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은 매스로우 욕구 5단계론(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보다 한 단계 위에 자아초월 욕구가 있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고 했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범람하는 서울에 체류하던 중 저녁 뉴스 시간이었다. 메르스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의 사투를 보면서 로이스와 플랭클의 말들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생이별하다시피 하면서 탈진 속에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버티는 간호사 한 분이 이렇게 말할 때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희는 의료인이고요, 여기서 치료하지 않으면 국민건강을 돌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10만 명이 사망하고, 220만 명이 난민이 되었던 보스니아 내전 당시 사라예보는 폭탄과 총알 속에 식량이 바닥난 시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 황폐한 죽음의 도시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한 노부부가 폭격을 맞은 건물 구석에서 개와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다 운 좋게 조금 찾아낸 식량을 개와 고양이와 나눠 먹었어. 이 고양이 녀석은 프랑스 구호품인 가루우유를 좋아한다.”고 부부는 웃으며 말했다.
 
개가 강아지를 일곱 마리나 낳았는데, 이웃들이 자기들도 부족한 음식들을 가져다 먹여 다섯 마리는 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 곁에 무언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이 녀석들을 돌보는지도 모르지. 새들에게도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주지. 그 녀석들은 평화로웠던 때를 기억하게 해주거든. 이해하겠나.”
 
기자는 “당시 악몽 같은 시기에도, 궁핍에 허덕이는 상황에도 아직 한 가지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스스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베풀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간의 사랑은 배고픔과 두려움보다 더 강하다.”고 썼다.
 
“만약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할 단어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기브(give)'를 고를 것이다.” 외성의 학자 스티븐 포스터의 말이다. 〠

글/김종환ㅣ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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