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신앙생활

박천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9/30 [10:29]
 
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앙생활과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기본적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분명한 목적과 승리의 상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운동은 몸(신체)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것이라면 신앙생활은 영과 혼과 몸이 구원을 받고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흡사한 몇 가지를 간추려 비교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운동은 연습이다. 연습 즉 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연습을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은 운동선수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연습과 훈련을 하다 보면 다치기도 하고 또한 많은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때로는 생활 속에서 음식 먹는 식생활이나 하고 싶은 일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절제하며 주어진 룰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견디며 지속적으로 훈련을 쌓아가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그 운동을 하는 체질로 변하며 더욱 튼튼해 지고, 기술은 날로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신앙생활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라고 하면서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해서 현재의 삶이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합하는 사람들에 비유를 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 9:24-25)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모든 일에 절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절제는 마치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동차가 잘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서야 할 때 바로 브레이크를 잡아 서야 되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상상해 보라 이것은 무서운 무기가 되는 것이고 많은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무조건 열심히 훈련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의 지혜를 가지고 절제하는 생활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룰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들을 순종으로 따라 가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해서도 안되고, 하기 싫다고 안 해도 안되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둘째, 운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땀을 흘리게 되고, 몸 속의 노폐물이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그래서 몸이 가볍고 상쾌한 마음이 생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나의 죄를 발견하고, 잘못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회개기도를 하며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고 사람에게 사과할 일이 있으면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나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마치 운동을 하면서 몸에 나쁜 땀과 노폐물을 밖으로 내 보내듯이 우리의 내면과 삶을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들을 고쳐 나가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9)
 
셋째,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몸에 지방은 점점 없어지고 근육이 생기고 근육에서 힘이 나오게 된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해도 체력이 없어지면 기술도 소용이 없게 된다. 힘이 있으면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고, 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신앙생활도 열정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얼마 가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사실 신앙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힘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요트가 바람을 의지해서 망망대해를 헤쳐 항해해 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이 나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힘이 되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 주님을 올바로 섬기게 된다.
 
의사 누가는 사도들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를 사도행전에 기록하면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성령의 일하심을 언급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에게 파워가 생겨서 어디를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파워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파워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신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신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게 되는 것이고,  신뢰하는 만큼 성령님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정의라 하겠다.
 
끝으로, 운동 선수들은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목적이 없는 운동은 열심히 할 수도 없고 지속력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할 수 없다. 국가 대표선수들은 세계선수권 대회나 올림픽에서 금은동 메달이나 일등 혹은 최대의 기록을 목표로 하듯이,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신앙의 목적도 모른 채 그저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도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런 교훈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이렇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도는 그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그 삶의 과정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 (고전 9:26-27)
 
학생이나 직장인, 기업인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목적이 없는 삶은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목적도 모른 채 열심히 뛰며, 나의 인생을 투자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 낭비인가, 아니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

박천순|아들레이드은혜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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