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위의 꽃, 백설 위의 꽃

송기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0/26 [11:06]
   “당신 집에 상하고 있는 빵은
   배고픈 이들의 것입니다. 
   당신의 침대 밑에서
   곰팡이 피고 있는 구두는
   신발 없는 이들의 것입니다.
   당신의 여행가방 안에
   처박혀 있는 옷은
   헐벗은 이들의 것입니다.”

    - 성 대 바실리오

빵과 옷과 신발을 버리며

엊그제 참으로 오랜만에 집안 청소를 대대적으로 했습니다. 10년 가까이 입지 않았던 옷, 신발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심지어 그 중엔 포장조차 뜯지 않은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정없이 추려 교회 뜰에 서있는 옷 수거함에 넣었습니다.
 
매주 수요일이면 가까운 베이커리에서 빵을 수거합니다. 일주일 동안 이리저리 나누고 분배해도 지난주에는 몇 자루가 남아 쓰레기통 속으로 수직 낙하시키기도 했습니다. 불과 사흘 안에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성 바실리오의 말을 떠올리며 양심이 저려왔습니다.
 
특히 맛있는 빵을 버리면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레 7:15)는 성구까지 생각나더군요.
 
비록 빵과 고기의 차이는 있지만, 화목제물은 빨리, 하루 만에 먹어치워야 했지요. 소 한 마리를 제물로 드렸을 때, 제사장 몫을 따로 떼놓아도 살코기만 1천 근은 넉넉히 되지 않습니까? 이 많은 고기를 하루 만에 먹어치우려면 일가친척 주변의 친한 사람만 불러 모아서는 절대로 하루 만에 다 먹지 못하지요.
 
평소 불편했던 사람,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까지도 다 불러 모아 잔치를 벌여야 겨우 소화할 분량이지요. 먹는 것으로 다투거나 치사하게 장난치지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나눠먹으며 이웃과도 화목하라는 그분의 큰 뜻이 담겨지요. “친구를 가까이 하되, 원수를 더 가까이 하라”는 경구를 생각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빵과 옷과 구두를 버리면서 오늘날 기독교가 소위 ‘개독’이란 말로 조롱받고, 앤티 사이트의 ‘밥’이 된 것도 결국은 사회와 타인을 향한 사랑과 나눔, 섬김과 배려, 소비와 분배정의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사회의 기대에 훨씬 못미쳐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좋은 일을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세련된 말로, 혹은 ‘기도해 봅시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등 너무 속보이는 진부한 말로) 거절만 하지 않아도 우리는 썩 괜찮은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는 것에 주목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남겨 둔 것에도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나눔이 세상을 밝게 한다

 
1984년 미국에서 설립된 토크빌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처럼 사회 지도층이 나눔 봉사에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에 마련한 모임입니다. 한국에도 2007년 12월에 출범한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이 '나눌수록 기쁨,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란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지향하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은 총 23명으로 몇몇 유명인을 빼고는 대부분이 평범한 자수성가형 사람들입니다. 잘 사는 사람의 화려함을 이들에게서 발견하긴 어렵습니다.
 
아너소사이어티 첫 가입자인 동시에 최고령(69세)인 남한봉 유닉스코리아 회장은 하반신마비 장애인입니다. 63년 군복무 중 타고 가던 트럭이 50m 절벽 아래로 구르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것이지요, 그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살아난 게 기적일 정도였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악착같이 모았습니다. 1년에 양복 두 벌로 살았고, 코가 헤어진 구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사장실엔 그 흔한 소파도 없습니다.
 
“늦기 전에 돌려줘야 한다. 10대 경제 대국이지만 행복지수는 바닥권에 있다”면서 불편한 몸으로 이웃과의 나눔과 섬김에 마지막 여생의 소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억 원을 내놓은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회장도 몸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서 넘어져 다친 다리는 수술을 제때 못해 평생 장애로 남았습니다. 영양실조와 감기, 결핵 등 질병을 달고 다녔던 바람에 양쪽 귀도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이분은 “로마 1,000년 역사는 전쟁에 먼저 나가고, 국가가 어려울 때 재산을 내놓은 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했으면 한다”는 소신으로 사는 분입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활동과는 별개로 주로 장애인 시설과 무의탁 노인 시설 등에도 억대의 기부를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배고픔에 잠 못 이뤘던 우재혁 경북타일 대표는 껌팔이, 신문 배달, 넝마주이 등 안해 본 일이 없던 분입니다. 30년 동안 타일 만드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분은 기부에 대하여 “제가 힘들었을 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그걸 조금 되돌려는 주는 정도”라고 늘 겸손해 합니다.
 
최연소(45세) 회원인 오청 ㈜쿠드 신선설농탕 대표는 부친이 해오던 가업(설렁탕 식당)을 이어받아 한식 대표 프렌차이즈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기부는 700여 명의 직원과 식당을 찾아 준 고객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 역시 아너소사이어티 활동 외에 설렁탕 기부 활동도 펴고 있습니다. ‘사랑의 밥차’란 이름으로 식사를 거르는 어르신을 상대로 한 해 2만여 명에게 설렁탕 무료 식사를 제공합니다.
 
가장 기부 금액이 큰 멤버는 홍명보 감독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 재단을 설립하기도 한 홍 감독은 2005년 2억 원을 시작으로 총 8억 원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했습니다. 역시 최연소 회원인 방송인 현영 씨는 2006년 3월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위촉된 후 각종 봉사 활동에 참석하다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되었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행복을 느끼며, 어렵사리 모은 억대의 자금을 흔쾌히 사회에 내놓은 이분들은 서로 살아온 배경과 목표는 달랐지만 ‘나눔이 세상을 밝게 한다’는 믿음은 공통분모입니다. ‘기부 DNA’로 무장된 분이죠.
 
빈자에게 경제는

저는 개인적으로 유진벨, 컴패션, 기아대책본부, 캄보디아 의료지원, 맥켄지한센선교회 등 <크리스찬 리뷰>에서 소개한 기독교 구호단체들을 대할 때마다 잔잔한 감동을 합니다.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약 2:16-17).
 
간디는 “빈자(貧者)에게 있어서 경제는 영적인 것”이라고 설파했지요. 우리는 빈곤이 어떻게 우리의 비전을 비틀고 영혼에서 희망을 빼앗는지 압니다. 가난이 어떻게 삶을 싸구려로 만들고 심장을 짓누르며 인간의 감성을 뒤트는지도 압니다.
 
그럼에도 “비단 위에 아름다운 꽃을 놓는 사람은 있어도 추운 겨울눈이 올 때 숯을 보내는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영예있는 사람에게 꽃을 첨가하는 일은 있어도, 빈핍한 사람에게 원조의 손을 펴주는 사람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눔과 섬김, 사랑은 일종의 ‘장기투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눌 때 하늘에 보화가 쌓인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 19:21, 누 18:22, 막 10:21).
 
우리가 식당에서 서로 밥값을 내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은 인색하지 않은, 오히려 ‘기부 DNA’를 타고난 듯합니다. 그럼에도 자선이나 기부는 여전히 활발치 못한 것이 사회적인 통계입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분들을 돕고 나눔으로써 친구를 만들어야지, 그들을 멸시함으로 적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데 세상을 거꾸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저주를 받아가며 금고를 채우기보다 가난 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귀를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준 것을 기억치 않으며 받은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게 불변의 진리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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