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조그만 꽃 한 송이

김성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2/28 [11:56]
저는 꽃이 아주 많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꽃 이름을 알고 있는 꽃보다는 이름을 전혀 알 수 없는 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꽃들이 언제 피었다가 언제 지는지는 모르지만 일 년 내내 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꽃이 진다 싶으면 또 다른 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데 쓰레기 통 바로 옆에 아주 조그만 꽃 한 송이가 금방이라도 부러질듯한 가느다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꽃이 있는지조차 모를 그런 조그만 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 꽃을 본 일이 없습니다.
 
앞 마당에는 각종 장미가 피어있고 뒷 마당에는 수국이 가득 피어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쓰레기 통 옆에, 그것도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을 조그만 꽃이 한 송이 달랑 달려 있는 것을 그 날 제가 본 것입니다.
 
하도 신기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지금까지 본 꽃들 중에서는 제일 작은 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꽃은 너무나도 신비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청초하고 고고하게 피어 있는 것입니다.
 
그 가느다란 가지 끝에 꽃 한 송이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저는 쓰레기 봉지를 쓰레기 통에 넣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그 꽃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꽃이 피어있는 그 자리에 한 번도 물을 준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쓰레기 통이 옆에 있고 하수구가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땅이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저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린 조그만 꽃 한 송이가 제 앞에 지금 피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이후 자주자주 그곳에 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쓰레기 통에 버릴 때만 그곳을 지나 다녔는데 그 이후부터는 그 꽃을 보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꽃 심방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해가 될 때마다 늘 새로운 각오를 하기도 하고 그 어떤 결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뭔가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뭔가 내 인생의 자랑거리들을 만들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는 더 나아지고 싶어하는 것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삶에 그 어떤 좋은 에너지를 주기도 할 것입니다. 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하는 생각들이 우리를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해가 끝이 날 무렵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 때 가졌던 생각이나 계획이나 각오들이 아무런 결실이나 결과물을 낳지 못한 채 한 해가 다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해 늘 허전한 마음을 갖습니다.
 
심지어는 허탈한 생각들도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패턴들이 그동안 수없이 많이 반복되어 온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진실되게 돌아보면 우리의 성공이나 자랑거리들은 모두가 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내가 알고있는 내 주위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좀 낫다 싶으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고도 하고 뭔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누구만 이기거나 눌러버리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제대로 잘 안되면 우리는 실패했다고도 하고 인생을 헛살았다고도 하면서 심한 좌절감과 패배감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나보다 나은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면서 자기 자신을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 나중에는 마음의 병이 되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바뀌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는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비교할 대상은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저급한 삶의 태도입니다. 그런 삶들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경쟁 대상이기에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힘들게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탐스러운 빨간 장미꽃이 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름 없는 들풀만 되기를 바란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생각입니까? 만약에 저의 집에 온통 빨간 장미꽃만 가득 피어있다면  얼마가지 않아 그 빨간 장미꽃에 싫증이 날 것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빨간 장미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과 색색의 꽃들과 심지어는 이름없는 들꽃이라 할지라도 그 모두가 어우러지게 피어 있을 때가 보기에 좋은 것입니다. 주인의 보기에 좋으면 그 꽃은 자기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 새해에 탐스러운 빨간 장미꽃만 되기를 바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괜히 우리 자신들이 자기 욕심에 빠져서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원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꽃들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꽃 이름들을 가진 다양한 꽃들이 가득 피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정원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면 그 꽃은 충분히 피어있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2016년 새해에는 나만의 꽃을 피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못 알아주든 그것과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그 일을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보면 어떨까요?
 
그 지긋지긋한 경쟁 구도를 내려 놓고, 그 밑도 끝도 없는 비교 의식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없이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장미꽃을 피우든지, 하얀 백합을 피우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만의 진실된 꽃을 피워보면 어떨런지요?
 
내 꽃이 정원사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우리 사명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살 수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2016년 새해는 정말 풍성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 한 해, 한 해가 모이다 보면 그것이 내 삶이 되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나의 상급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쓰레기 통 옆에서 그 누가 알아주지도 보아주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리고 여린 가지 끝에 붙어서 자기 나름의 꽃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그 꽃 한 송이가 저의 마음을 엄청나게 기쁘게 했고 진한 감동을 준 것처럼 비록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귀한 존재로 대접받지 못하는 그런 자리에 있다고 해도 우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명을 바르고 진실되게 감당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끼리 등수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고 차별을 두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만들어 낸 척도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척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지나간 날의 우리들의 삶들은 사람들의 척도에 신경쓰고 사느라고 하나님의 척도에는 많은 관심을 갖지를 못했습니다. 사람 눈치 보느라고 하나님의 눈치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복을 많이 놓치고 살았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런 세월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항상 또 다른 새로운 새해가 온다고  누가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나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그 환경에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비록 장미꽃이 아니라 할지라도, 화려한 색과 자태를 자랑하는 그런 폼나는 꽃은 아니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각자의 꽃을 피워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다양한 꽃들로 인해 얼마나 기쁘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각자가 다 어떤 드라마의 주연이 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정원에서 주연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인생 말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7-8)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꽃을 피웠던 사도 바울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믿음과 헌신의 꽃을 피웠던 우리들에게도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면류관을 사모하는 우리들에게 2016년은 또 다른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힘있게 달려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비록 우리의 꽃이 이름 모를 조그만 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들이 우리 가정에도, 우리 교회에도 우리 시드니에도 가득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김성두|시드니경향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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