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학교 총장 김영우 목사

개혁주의 신학으로 인재 양성할 터... 지난해 8월 취임, 국제화에도 역점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6/01/25 [12:58]
▲ 지난해 8월 총신대 제6대 총장에 취임한 김영우 목사.     © 크리스찬리뷰


총신대학교 김영우(66) 총장이 호주 총신 총동문회 초청으로 시드니에 왔다. 김 총장은 세간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인물. 그는 총신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기독신문 주필, 총신대학교법인 이사장 등 그가 거친 자리들은 교단의 요직들이다. 지난해 8월, 길자연 총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총장 인선에서 선출돼 제6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김 총장은 남다른 기록이 많다. 총신법인 이사장에 이어 총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인물, 총신대학교와 총신대신학대학원 출신의 첫 총장, 단일 후보로 나서서 단번에 총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총장, 박사학위가 없는 최초의 총장, 결혼을 하지 않은 최초의 싱글 총장, 지방교회 목회자 출신으로 총장에 이른 최초의 총장 등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개혁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학술대회에서 외국 교수들과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영어실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특유의 논리력, 추진력 그리고 거침없는 언행 등으로 인해 세간의 입방아에도 자주 언급되었으며 일부로부터 ‘강성 인물이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의 성격은 그간 지루하게 이어져오던 법인과 총회 간의 정관사태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교계 사이에서 ‘소신 있다’는 반응과 함께 ‘정치꾼이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를 만나 최근 정관사태로 붉어진 총회와의 갈등의 전말, 총신대학이 처한 상황과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의 심정을 들어봤다.

▲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열린 ‘제6대 총장 김영우 목사 취임예배’에서 김영우 신임 총장(왼쪽)이 취임 서약을 한 뒤 안명환 재단이사장 직무대행과 악수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바른 믿음으로 고통 감내
  
쓴 소리 목사라면 호전적이고 다혈질인 인물이 아닐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놀라울만큼 차분하고 논리적이었다.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에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담담했지만 단호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름대로 분명한 자기 논리와 주관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의 교육관. 신앙관에 대해 상당한 확신과 열정도 나타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이 많으시겠다”고 말문을 열자 그는 웃음을 띠며 “보시다시피 건강하고 마음이 편하다”면서 “잘못한 게 없으니 떳떳하다”고 했다. 총신대 총장으로 취임한지 4개월, 늦게나마 총장 취임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총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갖지 못했습니다. 재단이사장으로서 좀 더 총신을 잘 섬겼으면 좋겠다 했는데 총장이 됐어요. 학교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으니까요. 2003년부터 재단 이사가 됐고 2006년 재단이사 서기가 됐고 2008년 재단 이사장 대행을 거쳐 2010년 6월에 이사장이 됐어요.
 
사람이라는 것이 제가 평생 살면서 내가 뭘 좀 해보겠다하는 쪽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뭘 좀 하게 해주시는 일들이 영향력 있게 했던 경험도 있어서 이번에도 제가 신학자도 아니고 많이 부족하지만 어려움에 빠져있는 학교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특별히 목회현장에서 평신도 지도자나 목회자들의 마음을 아무래도 잘 아니까 그런 쪽으로 기여를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총장 취임 후 느끼신 점이 많을 것 같은데요.
 
“사실 지금 한국의 대학 현실이 굉장히 어려워요.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뭐냐하면 4년제 대학만 해도 202개가  있어요. 전문대학은 150여 개 있다고 해요. 그런데 남한 인구 5천 명 대비하면 너무 난립이 되어있습니다. 앞으로 15년 사이에 30%가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학 정원을 감축해야 되는데 그냥 감축을 하라면 누가 하겠어요. 그러니까 교육부에서 평가를 해가지고 강제로 감축을 시켜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한국에 있는 대학이 어떻게 살아남느냐 대학총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위치에 있어요.
 
그래서 교육부의 각종 평가를 어떻게 잘 받아내느냐 거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우리 대학 교수나 직원들이 순박한 분들이긴 해요.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위기 같은 것을 안 느끼고 지내 와서 지금 위기인데 이 위기에 대한 느낌의 강도가 총장인 저하고 많이 차이가 나요. 그래서 그분들도 같이 그런 공감을 가졌으면 하고요. 그러나 총신은 리더십이 잘만 발휘가 되면 앞으로도 상당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금 총신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매너리즘이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장자교단 신학교라며 가만히 앉아있어요. 그래도 그동안 학생들이 몰려왔고 그래서 대외경쟁력에 신경을 안 쓰고도 고수할 수 있었죠. 직원들은 또 적당히 일해도 월급 잘 나오니까 자기들끼리 신이 감춰놓은 직장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타성에 젖어있어요.
 
땅으로 말하면 유기질 비료가 많이 있어서 푸석푸석해야 되는데 메말라버렸어요. 이걸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건희 씨가 이병철 회장이 돌아가신 후에 마누라와 자식 빼놓고는 다 바꿔야 된다, 위기의식 속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져야 된다, 국내 1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던 것처럼 총신은 한국의 총신만이 아녜요.
 
아시아, 중국, 아프리카, 남미까지도 그러니까 제3세계에 허브 역할을 해줘야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냥 과거 해왔던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신학노선은 그렇게 해야 돼요. 그렇지만 그 노선을 충실화 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혁신과 노력과 또 창의성이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매너리즘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가 30년이 되면 부리를 못 쓰게 된대요. 그래서 매가 바위에 가서 자기 부리를 쪼아가지고 깨뜨려야 된대요. 그러면 새부리가 나온대요. 발톱도 그렇고요. 그러면 30년을 더 산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 아픈 고통을 나는 ‘성장통’(growing pains)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총신은 지금 그런 성장통에 직면해 있습니다.
 
매너리즘을 깨고 새로운 필요성에 응답하고 도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시행착오도 범하겠지요. 또 비난도 받을 수 있을 거고요. 그렇지만 그것은 혁신그룹들이 항상 당했던 역사이니까 각오를 해야죠.”

▲ 김영우 총장(왼쪽)과 함께 한 김명동 목사 부부. 김영숙 사모(가운데)는 총신대 출신으로 호주 총동문회 부회장 직을 맡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 앞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 계획이신지요.
 
“저는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에 근접한 신학체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깊이와 넓이도 역시 다른 종류의 신학노선보다도 탁월하다고 봐요. 그래서 개혁주의 신학이 컴퓨터로 말하면 인도어 프로그램, 매킨토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심도있게 공부하는 목회자들이 많지 않아서 제대로 관리가 잘 안돼요.
 
마치 스마트 폰 프로그램이 잔뜩 있는데  문자나 하고 전화나 하는 정도랄까요. 한국교회가 이것을 좀 잘 활용하고 이것에 근거하면 양이나 질에 있어서 앞으로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그런 개혁주의 신앙 내지 신학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게 하느냐, 결국은 개혁주의에 대해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돼요. 온 생애를 다 바쳐서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도 개혁주의 구현을 위해서 힘쓰는 역군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총신의 신학교육이 보다 더 개혁주의적인 노선으로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라는 건 졸업생들이 나가서 얼마나 교회와 사회 속에서 뛰느냐에 달려있으니까요.
 
또 하나는 우리 교수들이 개혁주의에 대한 전수차원이 아니고 우리 풍토 속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신학적 질문에 대해서 개혁주의적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일에 격려도 하고 지원도 하자는 거고요. 또 국제적인 연대를 강화하자. 개혁주의가 우리 땅에서 이룬 것이 아니니까 유럽이나 북미에 연대를 같이 하여  활발한 상호교류를 통해서  개혁주의를 좀 더 공고히 하고자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나 즐겨 쓰는 단어나 말버릇이라는 게 있다. 그런 점에서, 김 총장이 많이 동원하는 말은 ‘마치 XX와 같아서’ ‘XX처럼’ 등등의 ‘비유법’이다. 목회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수차례 나왔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 김영우 총장은 평소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 간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그 결실로 한국개혁주의연대가 태동됐다.     © 크리스찬리뷰
 
세계적 기독교 명문 사학으로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 세계 개혁교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학교 총신대학교의 교훈이다. 1901년 개교해 115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938년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는 강압적으로 요구한 신사참배를 거부해 민족 혼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일로 문을 닫았다가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신학교로 다시 개교했다.
 
이후 총신대학교는 기독교 학생들의 미래와 꿈이 있는 명문대학으로 인정받아 왔다. 1970-1980년대의 총신대학교는 서울시에 있는 대학교 중에서도 중상위권 수준의 대학이었다. 1977년도 총신대학교의 예비고사 성적은 중앙대학교보다 높았다.
 
이제 총신대학교는 명문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분위기다. 2015학년도 수시입학의 경쟁률은 7대1, 정시입학은 4대1, 편입학은 7대1이었다. 교원 임용고사에서도 12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역사교육과의 경우 30여 개 역사교육과 중 최상위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총신대는 교육부에 ‘분규대학’으로 비춰져 그동안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당장 정원. 재정 감축. 학교 이미지 실추.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손실로 다가온 상태다.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평가결과에서도 총신대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D등급 우려가 제기됐던 총신대는 정원을 7% 감축해야 하는 선에서 마무리돼 정부의 재정지원은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C등급 평가 그룹에 해당하는 조치다. E등급은 정원을 15%, D와 D+등급은 정원을 10% 감축해야하며 장학금 등 정부의 재정지원이 전면 제한되거나 줄어든다.
 
- 이번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분규대학으로 비춰져 낮은 평가를 받아 D등급 이하로 분류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습니다. 그런데 C등급 평가 그룹에 준하는 평가를 받았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우려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해 온 것이 결실을 맺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부실대학, 분규대학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죠.”
 
- 최근에 사회교육대학을 신설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존에 운영 중인 평생교육원, 산업교육학부와 새롭게 준비 중인 원격평생교육원, 총회신학원(일반과정, 평신도과정)을 통합해 단과대학으로 신설한 것이지요. 사회교육대학 재학생은 학점은행 제도를 통해 48학점만 취득하면 교육부가 인정하는 신학학사 학위(총장명의)을 받을 수 있고, 목회자 지망생은 편입지원 자격을 부여받아 총회신학원 입학이 가능합니다. 연간 최대 42학점을 취득할 수 있어 3학기 이내에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으며 총회신학원 편입 후 졸업하면 목사 안수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학비는 학점당 5-15만 원으로 정규 학사 과정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며 학습자의 개인 일정에 따라 주간, 야간, 토요일 등 자유롭게 수업시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총신대는 사회교육대학 신설과 함께 인터넷 수업만으로 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한 원격평생교육원, 상담. 교회사역. 건강. 바리스타 등의 교육을 제공하는 전문교육아카데미, 교회음악(지휘. 성악. 관현악)을 배울 수 있는 총신콘서바토리 등을 개설해 풍성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총신대는 2011년 779만 원이던 평균 등록금을 2015년 696만 원으로 83만 원 내렸다. 인하율은 10.65%로 사립대 평균 인하율 4.5%의 배 이상 높다. 이를 위해 총신대는 학생들이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전국 교회가 기도하며 지원하고 있다.
 
 2005년 5월부터 시작한 ‘총신 100만 성도 기도후원회 운동’을 통해 현재까지 182억여 원(2015년 12월 기준)이 후원금으로 들어왔으며 최근에도 월 평균 1억 8천만 원의 후원이 이뤄지고 있다. 이 후원금은 대학과 신학대학원 장학금, 신학대학원 1학년 전원 기숙사비 지원, 군종목사 후보생 장학금, 사랑의 식권 제공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 총장은 총신대가 ‘분규대학’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상대주의적 포스트모던의 시대에서 총신대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걸어갈 방향을 거듭 밝혔다. 김 총장은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확실한 기준과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통보수라고 해서 고루하고 교조적이어서는 안 되며 신축성 있게 적용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우 총신대 6대 총장 취임예배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총신대- 총회의 갈등 ‘대화’로 풀었으면
 
총신대는 그동안 학교가 소속한 예장합동 총회와 정관 변경 문제로 갈등을 겪어왔다. 총회 임원회는 99회 총회 결의(총신대 이사의 정년과 임기 등등)를 지키라고 밀어붙이고, 총신대 이사회는 사회법에 호소하는 등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대립이 계속되던 중 길자연 목사가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 총신대가 정관문제로 총회와 사상초유의 진통을 겪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총회측이 일방적으로만 하려고 그러잖아요. 즉석에서 가결을 시켜 소급 적용해야 된다든가. 학교는 사립학교 법이 있거든요. 그리고 정관에 명시된 정관 변경은 재단이사회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냥 총회가 일방적으로 정관을 변경할 수 없게 되어있으니까 총회도 참 답답하지요. 사실 우리는 과거 해 온대로 잘 해왔습니다. 1967년 이후로요.
 
그런데 왜 총회에서 느닷없이 총신을 사유화한다는 등 갑질해서 학교를 왜 어렵게 만드느냐는 거예요. 있지도 않은 일을 내세워가지고요. 사실 총회가 1년에 1억밖에 보태주는 것 없어요. 정부는 60억 주는데요. 총회 직영이라 할 때는 말만 직영이라하면 안 되잖아요. 그만한 비용들을 대가면서 해야 되는데요.
 
물론 선교를 다루는 GMS나 언론을 다루는 기독신문이나 교육을 하는 총신대학에서 총회의 신앙노선을 지키지 않으려 한다든가 총회에서 벗어나 도망가려고 한다든가 그러면 그건 안 되지요. 그러나 그 안에 있는 한 각각 특수성을 인정하여서 좋은 협력관계로 가야되지 상하관계처럼 가면서 정관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저는 이제 이사회에서 나와 총장으로 있습니다만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 이제 어느 정도 매듭이 지어졌습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로 노력하고 자꾸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 가도록 해야지요. 총회도 알고 있어요. 총회도 일방통행만 하기는 어렵다. 사실 많은 총회회원들은 그렇게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교단의 일부 사람들이 총신에 대해 안 좋게 선동하고 있어요. 너무 신학의 정치화가 이루어지니까 바람직하지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 총장은 이 부분에서 또 비유법을 끄집어낸다.
 
“하여튼 호주의 연방제를 봐도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주정부는 주정부대로 종속관계만 갖는 게 아니잖아요.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어요.”
 
정말 이 문제를 푸는 묘수는 아무데도 없는 것일까? 머리가 좋다는 김 총장 입에서도 뾰족한 아이디어는 안 나온다. 그러나 그는 나름대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 나가야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 주위에서 강직한 사람으로 평을 하던데요. 자신이 성격이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겁이 많아서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종교를 가져야 사명감이 생겨 겁이 없겠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게 됐어요. 그러니까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뭔가 일할 때는 고문을 당해도 그렇고 불 속에 가더라도 끄떡없어야 되는데 나는 두려움이 많아서 그런 자신이 없더라고요.
 
저는 충청도 대가족 8대 장손이에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나 이렇게 장손입니다. 장손은 가계의 모든 것을 싸안고 가야잖아요. 그런데 우리 가문에는 주태백이도 있었고 노름꾼으로 가사탕진한 사람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다 싸안고 가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그런 걸 보면서 자랐어요.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다툼이나 긴장 조성보다는 어떡하든 화합으로 가야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 속에 열사, 지사적인 인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건 뭐냐 하면 총회결의라 할지라도 법적 절차에 어긋나거나 아니면 일부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선전선동을 하는 것, 물증이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따르느냐. 악법도 법이다고 말하지만 그건 소크라테스 이야기지 성경 어디에 악법도 법이라고 하느냐, 그래서 총회가 잘못 갈 때는 이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거죠.
 
총회에서 수년간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으면 총회가 잘못 갈 때 이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요. 물론 그 사람들은 싫어하죠. 그러나 저는 역사 앞에 뭐가 옳으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뿔테 안경너머로 빛나는 눈매가 언뜻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총회가 어떻게 법적 절차를 어깁니까. 또 학교를 인가할 때는 반드시 사립학교법과 정관에 따라서 학교를 경영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정관 필요 없어, 총회에서 하는 대로 나가,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정관을 고치는 건 총신 이사회에서 고치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식도 재산 나눠주면 그것 가지고 살면 되는데 집 팔아라, 뭐 아내하고 이혼하라 부모가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런 차원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강하기보다는 저도 몰랐는데 제 피에 열사, 지사적인 마인드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총회와 대립되면 힘들고 괴롭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안 해야지 했다가도 총회가 잘못되는 길로 간다 하면 또 내가 이야기 안하면 누가하나 하고 얘기를 하게 돼요. 다들 좋은 게 좋다는 식인데요. 그 대신 저는 총회에서 아무리 잘못했어도 사람을 징계한다든가 벌을 주는 데는 가담을 안 해요.
 
저는 신문사 주필이나 학교 이사를 통해 개혁신학 노선과 관련되는 글을 쓴다거나 또 그런 쪽으로만 봉사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해 왔어요. 그러나 저는 항상 세상이 아닐 때는 타협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차선을 취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제 소신이나 생각이 항상 최선일 수는 없잖아요. 사실 저 알고 보면 ‘알부남’이에요.”
 
- 알부남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뜻이죠. 허허.”
 
큰 웃음소리다.

▲ 블루마운틴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본지 김명동 편집국장 자택에김영우 총장과 호주 총신대 총동문회 임원들을 초청, 만찬 후 김 총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하나님 말씀 실천에 일생
 
김 총장의 집안은 전통적인 대가족이었다. 아버지 형제도 8남매나 됐다. 더구나 8대 종가 출신으로 5살 때부터 지방을 작성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하나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성장을 하면서 신학에 대한 그의 갈증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총신대학교다. 개혁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처음에는 전통종교를 택하려고 했어요. 국산종교요. 그래도 명색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생각을 했으니까요. 한번은 빨리 태어나서 내가 광복군이 됐어야 했는데 못됐다고 하도 서러워서 하룻밤을 베개를 적실 정도로 운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요.
 
해방 후 55년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선생님들이 그런 강한 민족의식 내지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있었겠지만 하여튼 그랬어요. 그런데 국산종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앞으로는 국제화시대 세계적인 시대가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럴 바엔 국제적인 종교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졌는데 그런 후 교회를 나가게 됐지요.
 
그리고 기독교안에 교파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시골동네 개척교회에 부모님 몰래 나가게 됐는데 그 교회가 합동 측이었어요. 그래서 합동 측 목사가 된 거에요.
 
사실 신학대학 갈 때 대학을 두 군데 다니려고 했어요. 신학대학을 먼저 다니고 일반대학에 가서 정치학이나 사회학 공부를 해야겠다, 그래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도사님이 아, 거기는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곳인데 거기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 제가 뭘 알아요. 그러면서 총신대학가라고 권했죠.
 
그런데 그 당시 총신대학 보니까 무슨 대학편람에도 없더라고요. 그래도 갔죠. 거기서 제가 개혁신학을 알게 되고 공부하다 보니까 야, 이것이 우리나라를 진짜 살리는 길이구나 생각을 하면서 개혁신앙을 잘 보급하는 쪽으로 내 생애를 바쳐야겠다고 다짐을 한 거죠.
 
그러니까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학에 간 건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후 그런 고민을 하다가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때 한국사회는 3선 개헌이다 뭐다 복잡한 상황이었거든요.”
 
- 좀 여쭙기 거북한 질문입니다만, 박사 학위가 없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요. 난 학위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박사 학위뿐만 아니라 학사 학위, 석사 학위도 없어요.”
 
- 신학토론회 같은데서 외국 교수들과 토론을 벌일 때 보면 영어가 꽤 유창하시던데요.
 
“난 영어학원에 간 적도 없고 토플시험 본 적도 없어요. 중 고등학교 때도 영어가 재미있기는 했지만 대학교 다닐 때 영어원서를 많이 읽었어요. 그러니까 내 안에 문장이 형성되고요. 원서를 많이 읽으니까 아무래도 단어나 어휘가 암기가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영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풀러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니까 토플시험을 보라는 거예요. 무슨 토플이냐 내 목표는 공부하고 싶어 왔는데 입학 담당 책임자를 만났어요. 만나서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실력이 있나 없나 보라, 그러면서 내가 이러이러한 영어책을 읽었다, 당신이 테스트하면 내가 하겠다. 내가 석사과정을 할 수 있나 없나 봐라. 그랬더니 너는 실력이 공부는 할 수 있는데 그러나 학점을 정식으로 주는 건 안 되고 청강생으로 한 학기를 두 과목 공부하라 그걸 패스하면 다음에 정식 학생으로 해주겠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정식 학생이 됐어요. 그리고 제가 다닐 때는 총신에 학사 학위가 없었어요.
 
그리고 풀러도 석사 코스를 마쳤지만 목회자가 뭐 학위가 중요한가 목사가 중요하지 하고 논문을 안 썼어요. 그런데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주는 학교에 총장이 된 거예요.”
 
- 지금 박사 학위를 준다면 받으시겠어요?
 
“지금도 별로 그런 것 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래도 신학토론회에서 제가 밀릴 것도 없고 또 원서 보는데도 밀릴 것 없으니까요.”
 
- 어떻게 지방까지 내려가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까?
 
“아, 그것은 제가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했는데 교회당을 지은 후 잠시 풀러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서천읍교회 선임 장로님하고 젊은 장로님 두 분이 LA로 저를 찾아오셔서 우리 교회로 잠시 오셔서 분열된 교회를 수습해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서천읍교회는 저희 노회에 어머니교회였어요. 아니,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서천을 갑니까. 그러면 한 주는 서울에서 인도하고 한 주는 서천에서 인도하면 되지 않느냐. 아니, 어떻게 그렇게 목회를 합니까. 우리가 좋다는데 못할게 뭐가 있느냐고 그래요. 그래서 1993년도부터 한 주는 서울에서 한 주는 서천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목회하는 사람이 됐어요.
 
그리고 작년인가 서울교회는 후배목사한테 물려줬지요. 한 3년 교회를 수습하고 서울교회에 전력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가겠다고 했는데 읍 소재지면 어떠하고 면 소재지면 어떠냐, 건방진 생각이지만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슈바이처인데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하나님 일을 하면서 먼 길을 보고 그러진 않았어요. 신문사에서 글을 써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아, 주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주필 경선에 나가 주필이 된 거고요. 그것 좀 하다 보니까 재단이사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재단이사를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이사장이 되고, 그러니까 개혁주의를 제가 보급하고 개혁주의를 선양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평생 갖는 생각이지만 그다음에 교회를 어떻게 하고 총회에서는 어떻게 하고 그런 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나 일단 주어지면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단순해요. 어떤 사람은 저보고 정치꾼이라고 그러지만 단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멍청스럽게 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김 총장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다. 홀로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 결혼은 안 하실 거예요?
 
“아니,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요? 지금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겸연쩍은 듯, 한바탕 크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요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여자들은 제가 싫다고 도망가고요, 또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내가 별 재미가 없었어요. 사람이라는 게 어떤 여자를 보게 되면 아, 이 여자하고 결혼했으면 그런 마음이 들어야 되는데 아직 그 마음이 드는 여자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내가 많이 골라서가 아닙니다. 난 뭐 고르고 그런 사람이 아녜요. 그런데 적어도 나라는 걸 그래도 괜찮다고 좀 입으로만 아니라 그런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될 것 아녜요. 좋은 기회가 빨리 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서천읍교회 담임은 그만 두셨습니까? 이제 총장이신데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총장을 그만두라면 그만뒀지 목회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난 목회자로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시간 남짓 동안의 강의. 털어놓기보다는 숨기는 것이 더 많은 이른바 ‘정치적 제스처’란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하고 설득적인,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까다롭다 싶은 질문에 대해서는 핵심을 적당히 우회하면서도 단서는 반드시 다는 학자의 성실함도 있었다.
 
기자는 그의 소신이나 철학을 굴절 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모든 평가는 독자에게 맡긴다는 심정으로 발언요지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 본지와 단독 인터뷰중인 김영우 총장     © 크리스찬리뷰
 
김영우 총장은 누구?
 
김영우 총장은 총신대 신대원,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을 졸업하고 선천공동체 대표, 공군 군목을 지내다가 대위 예편, 명지대학교회 담임목사, 선천교회 담임목사, 예장 합동 충청노회 노회장, 기독신문 주필, 총신대학교 법인 이사 및 이사장, 총회 세계개혁교회대회 준비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천읍교회 담임목사와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이사장, 공동체비전고등학교 설립자 및 이사장, 세계개혁주의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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