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2/29 [10:50]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먼저 썼던 누가복음을 단 두 마디로 요약을 했는데,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기를"(행 1:1)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셨고 병자들을 고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고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행하셨고, 그 행하신 일들이 누가복음을 비롯한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자기 자신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가장 먼저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또 무리들을 가르치셨고, 갈릴리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 집에서도 성전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에 서기관들과 같지 않은 권세 있는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4복음서에 기록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진리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전하는 것'이고, 교회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따르는 무리들의 모임'이고, 설교는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성도들에게 전하는 것'이고 신학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믿고 따르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다른 복잡한 이론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믿고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천하를 어지럽힌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받은 열한 명의 제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열한 명의 제자들은 당대의 권세가도 아니었고 자본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믿음이 썩 좋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믿어주셨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위대한 비전과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열한 명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열한 명은 사도행전 17장에 따르면 "천하를 어지럽게"했습니다.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불과 열한 명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넘어 빠른 속도로 사마리아, 앗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의 근동 지방과 고린도, 갈라디아, 빌립보 등의 헬라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로마 제국에서도 가장 강성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불과 200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3세기에 접어들자 기독교는 그 세력도 너무나 강성해졌고, 그리스도인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서, 결국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열한 명에게 대체 무엇이 있었기에 온 세상을 그토록 흔들고 천하를 어지럽히고 로마 황제마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에 사로잡혔습니다. 세상으로 나가서도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전파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쉽게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쉽게 믿어준 것이 아닙니다. 그 사이에 수없이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화형에 처해지거나 사자밥이 되거나 십자가형 또는 참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아도, 고난을 당해도,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는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온 지중해 세계에 교회가 세워지고 마침내 로마의 국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그들은 가진 것도 없었고 힘도 없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복잡하게 전도했던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만을 전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복음이었고, 그것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온 세상 천지를 진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변질된 기독교의 본질

기독교는 이런 것입니다.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을 믿고,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을 온 몸으로 살아내고,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을 전파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자 전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긍정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살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 강단에서 상담 이론이 전해지고, 교회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단 한 번도 부자가 되는 법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서로 통용하고 나누던 유무상통의 공동체였습니다. 사도들이 긍정의 힘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설교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주를 위해 고난받아야 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마케팅이나 상담 이론을 가지고 설교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도들의 설교를 보면 그것 뿐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고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과  편안한 시설을 누리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더 편안한 시설과 좋은 환경을 갖추면 좋겠죠? 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추구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또 교회가 재미 없으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족구, 축구, 탁구 등 운동하기에 여념이 없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물론 오락도 좋고 운동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는 드리지 않으면서도 축구는 하러 오고 탁구만 치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축구장이고 탁구장일 뿐입니다.
 
신앙 생활은 재미가 있으면 좋겠지만 재미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재미를 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간혹 사업 때문에 큰 교회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교회의 많은 교인들이 자기의 사업장을 이용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그 사람에게 교회는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사업의 도구일 뿐입니다.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침으로 살아야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는 편안한 시설을 찾아다니고, 사람들의 기분이나 맞춰 주고, 사업의 이득이나 얻는 곳이 아닙니다. 아니, 주님의 몸된 교회는 그렇게 천박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다른 그 무엇으로도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전하고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으로 살았을 때, 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고, 이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변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원리는 동일합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교회가 되고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낸다면 교회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것이며 구원 받는 사람이 더해질 것이며 그리고 이 세상도 아름답게 변할 것으로 믿습니다.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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