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듀오 바이올리니스트 김연희ㆍ첼리스트 김태수

교회 •단체 돌며 열정의 자선연주회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08 [10:09]

주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화려한 경력을 뒤로한 채 자신들의 음악적 달란트를 교회와 사회단체 봉사에 힘을 쏟고 있는 남매 듀오 바이올리니스트 김연희(21.시드니컨서버토리움)와 첼리스트 김태수(16.시드니컨서버토리움 하이스쿨).

▲ 남매 듀오가 연습을 마친 후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왼쪽부터 김연희, 김운하, 고은초, 김태수     © 크리스찬리뷰

아직 학생들인 이들 남매는 학교수업의 연속으로 바쁠 터이지만 시간을 쪼개어 자신들을 부르는 곳이면 달려가 찬양으로 봉사한다. 그것도 환경이 잘 갖춰진 대형교회나 유명단체만이 아니다. 작은 곳일지라도 자신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한 교회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초청이 왔어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평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자신의 재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요. 기쁜 마음으로 연주를 했는데 참석한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초청하는 곳이면 달려가 봉사하게 됐습니다."

 
사랑받는 남매 듀오

그러니까 이들의 사랑실천 뒤에는 어머니의 가르침  과 뜨거운 기도가 있었던 것.

"조그만 연주회일지라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다보면 신앙적으로 도전도 받고 그리스도?사랑도 뜨겁게 체험하고 그리고 열심히 하니까 자연스럽게 다음 연주 일정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 초등학교 시절 연희의 연주하는 모습     © 고은초

연주 때마다 '최고'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이들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그런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환상적인 음색을 만들어 낸다. 학교생활이며 클래식 연주자로서 활동하는 일 모두 하나에만 집중하기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지만 자선연주 활동 역시 그들에게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더욱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연주자로서 팀을 이루면 사사로운 충돌이 있을 법한데도 이들은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한 목소리가 되어왔다. 물론 친남매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우리'가 되어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뜻을 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 4살때 어머니 고은초 집사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연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에게 본격적인 사사를 받았다.     © 고은초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함께 연주하면 보기에도 좋고 서로 의지하게 되고 좋은 화음도 만들어 내고요. 그리고 연주를 해달라고 요청이 오면 물론 힘들 때도 있어요. 쉬고도 싶고 푹 자고도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나 수업에 방해만 안 된다면 열심히 연습해서 꼭 갑니다."

자신들의 연주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청중을 위해서 연주하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 그러기에 많은 노력과 기도, 세심한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남매는 몸은 힘들지만 늘 새로운 설렘과 감격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즐겁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렇듯 겸손한 이들은 찬양을 하면서 이웃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아내지만 동시에 자신들도 사랑과 격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 우리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청소년들이 환호하면서 신앙에 관심을 가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시드니한인연합교회에 출석하는 연희•태수 남매가 창립35주년 기념예에서 축하연주를 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그렇지만 그들의 봉사가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이 됐어요. 그 땐 정말 서운했어요. 창피도 했고요. 우리의 시간이 되어 연주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목사님이 나오시더니 잠깐 서있으라고 하세요. 그러시더니 식사기도를 하세요. 당황스러웠지요. 그래도 괜찮았는데 식사기도를 하고 연주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때부터 식사를 하시려고 왔다갔다 시끄러웠어요. 연주를 했지만 아무도 듣지를 않았어요.

사실 그 때 손을 다쳤었거든요. 인대까지 늘어난 상태에서 연주를 했거든요. 솔직히 고통도 있었는데 목사님들한테 좀 섭섭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 찬양했으니까요. 사람들은 듣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들으셨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잊어버렸지만요."

그런데 그 때 붙들어 준 것도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예배에 초청받아 연주를 했는데 “식사시간에 연주를 하게 되어 아무도 듣지 않아 매우 섭섭해 연주를 마친 후 두 남매는 펑펑 울었다”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크리스찬리뷰

4대째 내려온 신앙이력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경력이나 실력에 비춰볼 때 자선연주 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이 4대째 하나님을 믿는 독실한 신앙 집안의 자녀라는 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가 수표동교회 장로님이셨어요. 연희, 태수도 그 교회에서 자랐지요. 그러니까 모태신앙입니다."

▲ 작곡을 전공한 고은초 집사     © 크리스찬리뷰

어머니는 이들 자매에게 어릴 때부터 "세상 명예를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라"는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켰고, 악기를 가르치면서 일찌감치 사역의 방향을 예시해 주었다.

4살 때 어머니로부터 바이올린을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 연희 씨.

"연희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이 많았어요. 친정어머니가 스즈끼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가끔 연희를 데리고 가면 연희가 악기를 만지작거리는 거에요. 두 돌 때인데요. 그 때 성악가 김청자 교수님이 관심 있게 지켜보시더니 연희가 6살이 되자 바이올린니스트 김남윤 교수님께 소개를 해주셔서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사사받기 시작했어요. 물론 6살까지는 제가 직접 가르쳤고요."

사실 어머니 고은초 집사(47)는 서울총신대(종교음악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작곡가이다. 현재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성가대 지휘자인 고 집사그는 "가정이 음악가 집안이었다."고 말한다.

▲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연희 씨의 손끝과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크리스찬리뷰

"저희 가정이 음악가 집안이었어요. 외할머니가 이화여전 때 성악을 하셨고요. 저희 어머니와 사촌 언니들 모두 피아노를 전공했으니까 저도 당연히 음악을 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셨어요. 그 때 하나님께 기도했지요. 하나님, 음악만 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요. 워낙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지금도 저는 성악가 가운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요."

사실 연희 씨와 어머니를 서로 떼어놓고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연희 씨는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으로 주저하지 않고 어머니를 꼽는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격려와 관심이 오늘날 바이올리니스트 대열이 설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엄격하셨는지 지금도 생생하다는 연희 씨.

하루라도 레슨을 빼먹는 날에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타고난 재능에 그렇게 철저한 연습이 덧붙여져 연희 씨는 6살 때 한국일보 콩쿠르에 입상하여 두각을 나타낸 그녀는, 10살 때 음악저널 콩쿠르에서 특상을 차지하며 6인의 음악평론가가 주는 우수 연주자 상과 함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실력은 날로 늘어 11살때 서울바로크합주단 콩쿠르 현악부문에서 1등을 했고, 우수콩쿠르 입상자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 후 예원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이후 스트라드 콩쿠르, 코리아 쳄버 오케스트라 등 각종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이올린 신동이었다.

 
사랑 전하는 음악 전도사가 꿈

"태수는 네 살때 첼로를 사달라는 거에요. 그냥 겉으로 알았다하면서 지나쳤죠. 연희를 예원학교 보내는데도 너무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요.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태수가 사립학교 들어가게 됐는데 학교 안에 콩쿠르가 있잖아요. 친구들이 콩쿠르 나간다 하니까 태수가 그 때부터 원망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기어코 첼로를 사줬는데 교내 콩쿠르에서 태수가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놀랐지요. 그런데도 가르치지 않았어요. 음악적 재질은 보이는데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요. 그리고 남편도 음악을 좋아하는데 태수는 법대 가기를 원하셨어요."

 
▲ 거울에 비친 연희, 태수 남매     © 크리스찬리뷰

대신 어머니는 태수에게 장구 배우기를 권했다.

태수는 "물론 장구를 배웠죠. 그렇지만 첼로를 정말 좋아했다"면서 " 엄마도 내가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인데 가르치지도 않아서, 이해가 안 갔죠."라고 말한다.

이들 남매가 부모를 따라 호주에 온 것은 2004년.

그렇게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에 두각을 보이던 연희 씨는 독일 라이프치히 Euro Music Festival에 참가하는 등 유럽과 호주의 음악을 경험한 뒤 시드니 컨서버토리움에 진학했고, 태수도 버우드 공립학교를 거쳐 시드니 컨서버토리움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부모님 말씀 따라 법대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첼로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첼로는 제2 전공으로 앞으로도 누나와 함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요."

 
▲ 김경혜 창작복음성가 콘서트에서 반주를 맡은 연희•태수 남매     © 크리스찬리뷰

연희 씨는 “대학 졸업 후 유럽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유명 음악인이 되어서 중국같은 제3세계에 찬양으로 선교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희 씨는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시니까 가족 트리오도 괜찮겠죠?"한다.

사실 이들 가족은 아버지 김운하(48)집사를 비롯하여 연희 그리고 태수 모두가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섬기고 있는 축복받은 가정이다.

▲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장구를 배운 태수 군     © 고은초

"글쎄 제가 성가대 지휘자잖아요. 태수가 학생인데 가운 입고 장년성가대에 서는 거에요. 자기 아들 성가대에 세웠다고 생각할까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야단치고 내보내면 또 가운 입고 올라오고 나중에는 성가 대장님이 '저렇게 하고 싶어 하는데 세우세요' 해서 성가대원이 됐는데 찬양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거에요. 나중에는 자기가 지휘하고 싶대요."

이들 남매가 추구하는 음악에는 목표가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선 순위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전도자의 심정으로 자신들의 연주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사랑을 전하는 음악전도사가 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목표다.

▲ 교계 행사에 초청받아 독주하는 연희 씨     © 크리스찬리뷰

어머니 고은초 집사는 “우리 아들과 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정상의 음악가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고 말하고 "앞으로 기독교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들과 딸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김명동 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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