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10/24 [11:44]
중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목회하신 후안 오르티즈 목사님이 4복음서를 강해하면서 현대인들은 5복음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복음’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예화를 들었다. 
 
한 교회에서 아주 절친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두 사람이 함께 긴 여행을 가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그들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던 중, 샌드위치를 갖고 온 친구가 상대방에게는 관심도 없이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친구에게 함께 가던 친구가 한마디했다.
 
“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참 좋아한다”고 말하자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답변했다.
 
“나도 계명을 좋아하는데 그중에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 대화에서 ‘내가복음’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20세기를 가리켜 ‘포스트모더니즘’ (post- modernism)이라 부르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21세기를 가리켜 트랜스모더니즘(transmodernism)이라 부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마디로 ‘절대 진리의 상실’이라고 한다면 ‘트랜스모더니즘’은 ‘비진리의 득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큰 후유증을 안고 병들어 있다. 우리를 혼란케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혼합과 무관심이다. 
 
무관심이란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말한다. 자기 중심의 삶을 의미한다. 비진리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윤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일로 가슴 아파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기만 배부르면 되고 자기만 안전하면 되고 자기 가족만 건강하면 괜찮다.
 
심지어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도 나에게 피해만 안주면 된다. 옆집에 혼자 살던 노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시체가 썩어 한 주간이 지나서야 그 썩는 냄새 때문에 신고하여 죽음을 확인하는 사실도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은 “‘무관심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나 혼자 나서 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나만 바보가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에이 모르겠다. 될 때로 되라”하고 포기해 버린다. 그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 잘못된 줄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것이 오늘 이 시대의 분위기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종교의 통일과 일치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소위 종교다원주의가 생겨났다. 그래서 기독교의 십자가의 대속, 부활신앙 같은 것은 무관심하고 사랑, 희생, 구제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만 관심을 갖고 단지 하나 될 것만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절대진리가 상실되고 비진리가 득세하는 트랜스모더니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사회적 함정을 피하는 방법은 명확하고 정확한 메시지가 전해져야 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신음이 터져 나오게 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모두 세상 속에서 진실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과 빛과 희망,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청교도적인 사회인이 되는데 있다. 〠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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