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의 성지순례(4)

김환기 사관의 성지학술연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3/30 [14:08]

“터키 음식이 어떻습니까?  이집트 음식은 어떻습니까?” 등의 질문을 받는다. 사실 먹는 것에 별로 관심도 없고,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아, 여행 중 '슈퍼마켓'이나 '간이음식점'에서 대충 식사를 해결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나는 음식이 있다면, ‘갑바도기아’의 ‘항아리 케밥(Pot Kebab)’이다.

▲ 갑바도기아의 항아리 케밥     © 김환기

메뉴판에 ‘항아리 케밥’이라고 한글로 써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항아리 케밥’은 음식을 담은 항아리를 오븐이나 장작불로 익힌 후, 식탁으로 가지고 오면 주문자가 망치로 항아리를 깨서 먹는 음식이다. 맛도 맛이지만, 망치로 항아리를 깰 때의 희열은 묵었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갑바도기아’에서 ‘파묵칼레’행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파묵칼레까지는 약 470Km, 약 9시간이 소요된다. 터키 장거리 버스는 대부분이 벤츠이며 도우미가 함께 탄다. 도우미는 승객이 여행 중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틈틈이 에플티, 커피 혹은 간식 등을 제공하여 준다.

새벽에 버스가 정차한 곳은 ‘파묵칼레’가 아니라 ‘데니즐리’(Denizli)였다.  파묵칼레는 작은 도시라서 ‘돌무쉬’(미니버스)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버스를 타야할 지 몰라  헤매다가, 드디어  파묵칼레 행 ‘돌무쉬’를 탈 수 있었다. 가는 도중 표지판에 ‘라오디게아(Laodicea)’란 글씨를 보았다. 여기가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는 곳이다.  

‘라오디게아’는 물이 귀하여 9km 떨어진 ‘파묵칼레’에서 뜨거운 온천수를, 14Km 떨어진 ‘호나즈 산’에서 차가운 식수를 끌어다 썼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까지 오는 도중 온천수는 미지근하여 지고, 식수 또한 작열하는 태양 빛을 받아 더 이상 차지 않게 되었다. 교인들의 신앙도 물과 같이 차지도 더웁지도 않고 미지근하였다.

그래서 주께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경고 하셨던 것이다.         

 
파묵칼레 (Pamukkale - Cotton Castle) 

 ‘파묵칼레’는 성서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골4:13)의 현재 이름이다. 터키어로 ‘목화 성’이란 뜻이다. '파묵칼레’는 ‘하얀 솜’을 쌓아둔 것 같기도 하고, ‘하얀 눈’이 싸인 것 같기도 한 신비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하얀 석회층 위에 담긴 옥빛의 물은 만년설이 녹아 호수를 만든 것 같다. 파묵칼레는 터키 최고의 비경과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지이다.

▲ 파묵칼레     © 김환기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하얀 눈으로 덮인 산을 연상하게 한다.  석회층을 따라 올라 가려고 하니, 신을 벗으라는 표지판이 버티고 있다. 이곳이 ‘거룩한 땅’이라서 아니라 석회층의 훼손을 막기 위해 벗으라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니 온천수가 굉음을 내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자,  온기와 함께 피곤이 몰려온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히에라폴리스’(성스러운 도시)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 히에라폴리스     © 김환기
 

원형극장은 최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이렇게 큰 원형극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도시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곳에 갔을 때 유적 발굴 팀이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넘어진 것은 세우고, 부서진 것은 보수를 하고 있으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도시를 건설한 세월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산언덕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엄청나게 많은 석관들이 언덕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넘어지고, 뒤집어 지고, 흙에 묻힌 석관들 사이로 세월의 무상함이 흐르고 있다.      

 
성 빌립의 순교지(St. Philip Martyrionu)  

초대교회 무대를 장식한 두 사람의 ‘빌립’이 있다.  사도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던 집사 빌립(행 8)이다. 요한복음에는 사도 빌립이 여러 번 기록되었으나 사도행전에는 단 한 번 나온다.(행 1:13)

▲ 성 빌립 순교지를 안내하는 이정표     © 김환기

‘성 빌립의 순교지’(St. Philip Martyrionu). 어느 빌립일까? 사도 빌립인가? 아니면 빌립 집사인가? 호기심에 가득차, 가파른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올라갔다. 그는 사도 빌립이었다. 빌립은 선교 활동 중 로마의 황제에게 핍박 받아 돌에 맞고 감옥에 갇혀 이곳에서 순교했다. 뿐만 아니라 늙은 처녀로서 그와 함께 지냈던 그의 두 딸도 이곳에 함께 매장되었다 한다. 

나는 '파묵칼레’에서 남은 여행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여행 중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메모리스틱’에 여권, 비자카드, 운전면허증 등을 스캔하여 가지고 다녔다. '파묵칼레’의 일정을 마치고 '에베소’(셀축)에 도착한 후, 문제의 '메모리스틱’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김환기|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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