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리에 마친 창립 10주년 “감사예배와 축하 음악회”
르포 캄보디아 헤브론메디컬센터, 눈물의 찬양 3
 
글|김명동,사진|권순형
▲ 1975년 전까지 뚜얼 슬랭은 고등학교였다. 크메르루즈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이곳은 감옥이자 심문소로 바뀌었다. 수감자들은 조직적으로 고문을     ©크리스찬리뷰

 
▲ 킬링필드 시절 당시 사용하던 각종 고문 기구들     ©크리스찬리뷰
 
한국에서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축하사절단으로 온 (사)위드헤브론 일행과 함께 프놈펜 시내에 있는 뚜얼슬랭 학살박물관을 찾았다. 여기에는 성산 장기려기념사업회 손봉호 이사장(80. 기아대책. 샘물호스피스 이사장), 그리고 한국에서 32년간 의료선교활동을 한 바바라 마틴 호주선교사(84)가 함께했다.
 
안내를 맡은 헤브론병원 김우정 원장은 “학살 장면을 촬영해 놓은 잔인한 사진도 많기 때문에 관람하기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을 하라는 뜻의 ‘크게 이야기 하거나, 웃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붙어있다”고 설명했다.
 
뚜얼슬랭 학살박물관 안은 담장 밖과 달리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관광객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방안에 놓인 고문용 철제침대와 물고문 도구, 낡은 철조망과 족쇄에서는 아직도 고통과 비명이 들리는 듯해 기분이 섬뜩했다.
 
뚜얼스랭은 원래 여자고등학교 건물이었지만, 1975년 집권한 크메르루주는 ‘S-21'이라는 비밀감옥으로 개조해 사용했다. 지식인과 기업가, 예술가, 교수, 선생, 장관, 외교관 등 1만 8천여 명이 이유도 모른 채 이곳으로 끌려와 무자비한 고문과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크메르루주를 몰아낸 반군이 이 감옥을 발견 했을 때 살아있던 사람은 단 6명뿐이었다고 한다.
 
옆 건물로 이동하자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462번 번호표를 단 모자의 사진, 눈빛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처형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삶에 대한 희망을 놔 버린 초점 없는 눈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했다.
 
이들은 당시 외무부차관의 부인과 아이이다. 첫돌도 지나지 않았을 아이는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무표정한 얼굴에 본능적인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다. 이 모자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보게 되었는데 기분 탓인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기자를 바라보고 있는 듯해 콧등이 시큰하면서 가슴이 떨리는 것이었다.
 
학살현장 구석구석을 꼼꼼히 들여다본 바바라 마틴 선교사는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대해 들어봤지만 직접 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라며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 한국에서 32년간 헌신한 민보은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바바라 마틴 선교사 ‘한국은 제2의 고향’
 
1964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 땅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한 바바라 마틴(Dr. Barbara Martin)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민보은.
 
“한국 의사 중에 한 분이 지어주셨어요.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죠. 한국에서는 늘 ‘민 선생’이었어요.”
 
마틴 선교사는 “약 20년 전 한국을 떠나온 뒤 최근까지 5차례 다녀오는 등 한국은 ‘제2의 고향’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정정해 보였으나 옛날의 그 눈부신 미모는 간 곳이 없는 여든넷의 할머니였다.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한국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멜본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마틴에게 호주의 한 교회가 한국행을 타진해 온 것이다.
 
당시 부산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에서 활동 중인 호주 의사가 안식년을 가게 돼 일 년 정도 대리 의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31살의 한창나이에 한국행을 결정한 마틴은 생활여건은 열악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 불편했지만, 한국인들의 넉넉한 인심에 빠져버렸다. 덩달아 애초 예정한 한국체류는 일 년에서 31년으로 더 늘어났다. 마틴은 50여 년 전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한 여성의 모습을 잊지 않고 있다.
 
“머리에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등에는 아기를 업고, 한 손에는 아이 손을 붙잡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치료와 함께 의사와 간호사를 임상적으로 훈련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마틴은 1970년 초반 한 산모를 치료한 일을 보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뱃속의 쌍둥이가 몸이 붙어 있었는데 아이가 잘 나오지 않았고 수술 끝에 산모를 살렸지만, 쌍둥이는 숨졌어요. 1-2년 후 그 산모가 다시 임신했고 아이를 다시 낳았죠.”
 
마틴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도착 첫 해 가을에 찾은 설악산을 꼽으면서 “나무들의 다양한 색깔, 장엄한 바위 정상들, 깨끗한 계곡물이 여전히 선하다. 3년 전 겨울에도 설악산을 찾았다”고 밝혔다.
 
뜻밖의 인연으로 31살부터 62살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한국에서 보낸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한국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녀는 “일하는 재미가 있었고, 한국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문화도 배울 수 있었다”며 “호주에만 있었던 것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됐고,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틴 선교사는 호주로 돌아와 뉴카슬에서 8년, 멜본에서 5년 호스피스에서 일했다. 호주에선 ‘민보은’이라는 이름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아 섭섭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1985년 대한적십자사 박애상을 받았고 1993년에는 부산 명예시민이 됐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귀한 일 없어”
 
▲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찬양하는 캄보디아 직원들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메디컬센터는 10주년 감사예배와 기념식을 크마에 예배실(환자대기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감사예배에는 오륙선교회 회장 김일재 목사를 비롯하여 일산예일교회 류우열 목사, 일산동안교회 김해수 목사, 서울 충무교회 이기엽 목사 등 교계 지도자들과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 이근희 회장, 캄보디아 한인회 김현식 회장, 성산 장기려기념사업회 손봉호 이사장, 캄보디아 의과대학 쌩 쏙피읍 부총장,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김원진 대사 등 총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부 감사예배와 2부 기념식으로 진행됐다.
 
충무교회 이기엽 목사 사회로 드린 예배는 호주크리스찬리뷰 편집자문 단장 황기덕 목사 기도, 김일재 목사 성경봉독, 헤브론병원 현지인 의사 심콘 간증, 류우열 목사 설교, 김해수 목사 축도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예배에서 류우열 목사는 ‘치유의 연못’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헤브론병원이 실로암 연못처럼 온전한 치유의 연못이 되어 캄보디아 민족을 살리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열매가 맺길 바란다”고 전했다.
 
헤브론병원 김우정 원장은 이날 “10년의 긴 시간 동안 좋은 협력자로 함께 수고하신 여러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의 땀과 헌신이 헤브론의 기초 위에 부어졌다”며 헤브론가족과 도움을 준 많은 분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 김우정 원장은 헤브론 가족과 후원자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크리스찬리뷰

 
▲ 축사를 전한 손봉호 장로     ©크리스찬리뷰

손봉호 이사장은 축사에서 “어제 무자비한 학살의 현장인 킬링필드를 둘러봤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아프게 하고 죽일 수 있는지를 보며 몸서리를 쳤는데, 이곳에서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분들을 보니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손 장로는 헤브론병원이 캄보디아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김우정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과 선교사들이 환자를 돌보며 순수하게 헌신한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김우정 원장은 누 꾼띠어, 눌 스레이 뚜잇, 눈 리닌, 누 마까라, 호이 끼어 등 5명의 직원에게 장기근속 표창을, 이영희(약국 봉사), 최수일(약사), 이철(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황대영(소아과 전문의), 최정규(치과 전문의), 송영옥(간호사), 오지수(검사원), 이좌동 목사 등 8명에게 공로상을 각각 수여했다.
 
이어 김 원장은 병원 증축 경과보고를 한 뒤, 전 직원을 대표하여 새로운 도약과 비전을 제시하는 비전 선포를 했다.
 
* 비전: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로 치료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병원(Hospital treating patients and developing staff with christ's love compassion)
 
김우정 원장의 목소리는 씩씩했고, 진심으로 들렸다. 참석자들도 감동에 젖은 얼굴들이었다. 이날 기념식 특별강사로 초청된 바바라 마틴 선교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시간 이상 서서 한국에서의 의료경험을 전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 한국에서의 의료 선교 경험을 강의하고 있는 민보은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강연 내용도 치밀했고 음성도 청청했다. 기자는 마틴 선교사의 두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감사함을 전했다. 순간 그의 눈과 마주쳤다. 기자가 활짝 웃으니 그도 웃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웃음이다. 사람을 향해 웃어주는 것, 이보다 더 큰 기도가 또 있을까.

▲ 개원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비전 선포식     ©크리스찬리뷰

 이어진 비전 헌판식은 자리를 옮겨 헤브론메디컬센터 로비에서 진행됐다.
 
기념식을 마친 직후 손봉호 이사장은 기자와 만나 “우리 블루크로스 의료봉사단은 물론 이곳에 와서 봉사하는 분들은 모두 자비를 들여 헌신하고, 더 해줄 것이 없는지 고민 한다”며 “그분들이 돈이나 명예를 버리고 한 일이라면 이렇게 오래 이어오지 못했고,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많은 분들의 성원을 모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표상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그는 “한 사람이 민족정신과 국격을 얼마나 고상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는 우리 역사의 여러 위인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장기려 박사님의 청빈한 정신과 숭고한 가르침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한국을 넘어 이곳 캄보디아에서까지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을 보라”고 말했다.
 
“이번에 캄보디아에 와보니 한국기독교의 자랑인 헤브론병원과 장기려기념사업회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올바른 뜻을 세우고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일, 이보다 고상하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 호스피스 사역을 위해 2개 층(4,5층) 증축 공사에 들어간 헤브론병원     ©크리스찬리뷰
 
현재 3층 건물인 헤브론병원은 건축허가를 받고 4층과 5층 증축 공사에 들어갔다. 올해 말 증축이 완료되면 입원실 병상은 현재 25개에서 75개로 늘어난다. 헤브론병원은 특히 한 층 전체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꾸밀 계획을 갖고 있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돌보고, 삶을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한국내 최고 호스피스병원으로 꼽히는 샘물호스피스 이사장이기도 한 손봉호 이사장은 헤브론병원에 호스피스 운영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캄보디아에서는 의사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헤브론을 찾아오는 환자가 많았다고 해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십시오’라고 돌려보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던 거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샘물호스피스의 경험을 살려 많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현지인 의사 심콘의 간증
 
10주년 감사예배에서 간증을 한 현지인 의사 심콘(44)은 모범 직원이다. 그는 프놈펜 빈민지역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그저 그런 젊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연히 소문을 듣고 찾아간 헤브론병원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헤브론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그의 머릿속에는 “그래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헤브론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헤브론병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생 설계가 달라졌다. 

심콘은 “헤브론병원에 오기 전까지는 나밖에 몰랐다”며 “하지만 헤브론병원 생활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면서 나라와 이웃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의료진의 나눔을 통해 힘을 얻었다. 헤브론병원의 나눔을 통해 캄보디아에 복음의 물결이 넘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심콘은 열혈 크리스찬인 아내 벤데이(40)사이에 딸 다섯을 두고 있다.

▲ 감사예배에서 간증하는 현지인 의사 심콘 씨     ©크리스찬리뷰

 심콘은 간증을 통해 하나님과 헤브론병원에 감사했다.
 
‘저는 농부의 아들로 쁘레이 벵에 살고 있습니다. 형제는 두 명인데 불교도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전도하러 집으로 찾아오면 핀잔과 모욕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전도하러 와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고 말하면 크게 웃으면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들이 더 열심히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하려 하면 아예 그들을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2010년 저는 헤브론병원에 입사했습니다. 헤브론병원은 아침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저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2-3개월은 그저 설교를 듣기만 했고 전혀 믿지를 않았습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몇 개월이 지나자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씩 성경에 대해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집근처에 있는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아내는 제 얘기를 듣더니 얼굴색이 변하면서 헤브론병원 일을 그만두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내는 제가 예수 믿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으면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이해를 시키려 애썼습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우리 가족 모두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나가자고 다시 권유했습니다. 바로 그날 교인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복음을 친절하게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심장을 터치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런 후 아내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함께 우리 고향 마을을 찾아가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도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집안 어른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어머니에게 화를 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를 믿는다고 어머니를 꾸짖었습니다.

▲ 양순식 선교사에게 헤브론 카페 사진 작품을 증정한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아내와 저는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해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아마 믿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곳에 한국 선교사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선교사님들은 고향과 가족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곳에 오셔서 사랑으로 우리들을 섬기고 계십니다.
 
저와 우리 가족들은 이곳 헤브론병원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곳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황기덕 목사, 권순형 발행인과 함께 ‘헤브론병원 카페’를 찾았다. 사실 우리 모두는 김우정 원장이 약을 처방해 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황 목사와 권 발행인은 서울의 한 병원에 예약까지 해놓은 상태다. 특히 황 목사는 얼굴이 부어오를 정도로 심각했는데 아침 예배 설교, 10주년 감사예배 기도 등 맡은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 있다. 무사히 여행을 끝낼 수 있을까? 마음이 어두워졌다.
  
헤브론병원 카페는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커피 목사가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든다. 양순식 선교사(49)다. 양 목사는 커피와 카페를 통해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이다. 현재 헤브론 카페를 운영하면서 현지인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장로교신학대학 졸업 후 목회에만 전념하던 그가 이 같은 비즈니스 선교에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자비량으로 선교할 수 있고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양 선교사의 꿈은 커피 지점을 늘려나가는 것이고, 이를 통해 ‘청소년 자립센터’를 세우는 일이다. 양 선교사는 직접 커피를 내려 우리에게 건네줬다. 사랑과 섬김의 그 마음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커피 향기가 좋네요.”
 
황 목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맛을 칭찬했더니 양 선교사는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좋은 커피는 몸과 마음을 고칠 수 있다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재능기부로 섬긴 음악회 출연진

▲ 헤브론병원 창립 10주년 축하 음악회가 열린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대학 전경     ©크리스찬리뷰

 오후 5시쯤 우리는 창립 10주년 축하음악회가 열리는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이하 캄장신)으로 갔다. 바쁘다 바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캄장신은 프놈펜 뚤툼펑 지역에 있어 헤브론병원과는 그리 멀지않은 거리이다.

▲ 헤브론병원 개원 10주년 음악회는 김정희 권사, 김우정, 이수엽 선교사, 기타리스트 함춘호 교수와 제자들 그리고 테너 김재우 집사의 재능기부로     ©크리스찬리뷰

 캄장신은 2004년 10월 5일 설립됐다. 2003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던 한국인 장로교 선교사들은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를 조직했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서로 연합하고, 각기 다른 교단적 이해와 배경을 뛰어넘어 ‘캄보디아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세우자’는데 뜻을 같이 한 것이다.
 
공의회는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사들을 비롯해 한국교회 주요 7개 장로교단 선교사들이 참여했다.

▲ 음악회 사회를 맡은 양강용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공의회 조직 후 이듬해 캄장신을 세웠고 첫 입학생은 32명이었다. 2008년 첫 졸업생 배출을 앞두고 고신 전호진 박사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으며, 2009년 7명의 학생으로 신학대학원 M.Div 과정을 개설했다. 2010년부터는 학부에 신학과 과정과 기독교교육과정을 개설했으며 2011년 교회음악과정이 신설됐다. 2014년 대신 증경총회장인 김재규 총장이 취임하면서 신축교사 건축이 시작됐으며 2016년 2월 준공예배를 드리고 안정적인 학교운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캄장신 교목실장 조봉기(68) 목사는 “연합사업은 더 발전해 2013년에는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조직됐다. 참여 교단 수도 14개로 늘어났다”며 “첫 독노회에서 한국인 선교사들은 캄보디아인 목사 6명과 장로 5명에게 안수를 베풀었다. 하나의 장로교단을 캄보디아 현지인에게 이양하자는 꿈이 첫 열매를 거둔 것이다”라고 독노회와 캄장신의 발전상을 설명했다.
 
캄장신 대학 건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구조와 구색도 많이 갖추었다. 그러나 캄보디아인을 이 대학의 정교수로 세우고 이곳이 이 나라와 주변 국가에서 선교센터로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시설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6시 30분 캄장신 강당은 헤브론병원 직원들과, 가족, 학교관계자, 자원봉사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관객은 거의 현지인들이었다. 축하음악회는 헤브론병원 간호대학 대외협력처장 양강용 선교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1부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로 나온 일산예일교회 김정희 권사는 한오백년 우리가락에 맞춰 ‘십자가의 사랑’을 춤으로 선보였다. 이어 뱃노래 가락에 ‘선한목자 예수님’을 몸으로 표현할 때는 관객들도 어깨를 들썩이면서 객석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무대 위의 뮤지션이 아니라 무대 아래의 관객이었다.
 
이어서 김우정, 이수엽 선교사가 나란히 무대 위에 오르자 객석에선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소 긴장한 표정의 두 선교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생명의 양식’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 등 주옥같은 우리 성가들을 클래식 선율과 어울려 환상적인 하모니를 연출했다.  .
 
김우정 선교사는 경기고 총동문회 신우회 소속의 남성4부 성가합창단(2011년 경기 OB남성합창단으로 변경)창단 멤버이며 여러 해 교회합창단을 섬겼다. 이수익 선교사(소아과의) 역시 과거 여러 콩쿠르에서의 입상한 경력과 ‘의사 가요제’에서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일까? 수상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는 더욱 커졌다.
▲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함춘호 교수가 제자인 싱어 김광용의 노래에 반주를 맡았다     ©크리스찬리뷰

이수엽 선교사는 2017년 5월 창천교회에서 파송되어 캄보디아에 왔다. 의사로서 편안한 노후를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은 인생의 시간을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았다.  이 선교사의 해맑은 웃음이 캄보디아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리라.
 
2부 공연의 문은 기타리스트 함춘호 교수와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제자들(건반 신가희, 보컬 김광용·이혜연)의 합동공연으로 진행됐다. 이번 공연은 함춘호 기타리스트가 엄선한 '가시나무' '새벽' 'Moon Rive' 등 6곡으로 마치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도 같았다. 부드럽게 흐르다가 어느새 강을 이루고 넓고 깊은 바다와도 만났다. 
 
함춘호 교수는 1986년 ‘시인과 촌장’ 2집으로 데뷔하여 유수의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기타리스트로 최근 드라마 ‘태양의 후예’ OST (Original Sound Track)에 참여하는 등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테너 김재우는 앵콜곡으로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을 열창했는데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합창하며 하나되는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 테너 김재우의 열창에 앵콜을 외치며 환호하는 청중들     ©크리스찬리뷰

공연의 피날레는 국제적 명성을 지닌 테너 김재우 집사가 장식했다. 그는 피아니스트 윤은경 교수(프놈펜 국제예술대학교)의 반주로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레온카발로의 ‘아침의 노래’ 쿠르티스의 ‘물망초’ ‘가고파’ 등 6곡을 선보였다. 마지막 피날레 곡은 이탈리아 칸소네 ‘오! 나의 태양’으로 장식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앙코르 요청에 그는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를 선택했다.
 
잔치 분위기가 반전된 건 이때, 그가 앙코르 곡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아티탄 썸랍 껌뿌 찌아)를 캄보디아어로 부르면서부터였다. 의아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던 캄보디아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럴수가! 캄장신 강당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압권이었다.
 
‘먼 다엘 쓰다이 다엘 반 썸랒 쩓 쩬 떠으 다음 바이 트버 까 트와이 쁘래야 예쑤 (아쉬워하지 않고 결심하여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나아가네)/ 쏙 르 똑 양 나 꺼 뜨로 암 떠으 찌웓 반 쭈읍 끄더이 엄너 리에이 럼 뜩 프넥(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이 참고 가니 삶이 눈물에 섞인 기쁨을 만나네)’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쪼 번떠 엄 삐유 니유 록 뜨롱(계속해서 그분을 찾아 간청하세)’
 
그의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 노래는 한 차례 더 반복됐고 강당에는 ‘쪼 번떠 엄 삐유 니유 록 뜨롱’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모두가 음악을 통해 함께 어울리며 즐거워진 소중한 시간이었다.
 
음악회가 끝난 직 후 기자가 “감동과 충격 그 자체였다”라며 인사를 건네자, 김재우는 “자신도 노래 부르면서 가슴이 울컥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이 ‘캄보디아를 위한 기도’라는 노래는 언제 배웠습니까?”
 
“재작년 캄보디아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배웠죠.”
 
아 아,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캄보디아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회복이었다. 지금 헤브론병원은 인구의 대부분이 차세대인 특성에 맞춰 캄보디아의 미래를 이끌 영적 리더를 길러낼 생각에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번 헤브론메디컬센터 창립 10주년 축하음악회는 출연자들 모두의 재능기부로 이뤄 졌다. 여기에는 평소 선행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던 테너 김재우가 자원해서 음악총감독을 맡으면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팬들에게 받아온 사랑을 주위 사람들을 위해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이번 재능기부를 통해 몸소 실천에 옮긴 것.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름다운 음악회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에 신경을 써주었다.
 
테너 김재우 집사
 
제11회 ‘유엔참전용사 추모평화음악회’가 지난해 11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테너 김재우(46. 김재우 뮤직스튜디오 대표. 시드니새순장로교회)가 이 음악회에 초청되어 쿠르티스의 ‘Non Ti Scordar Di Me’(물망초)를  불렀을 때 2천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듯 그의 노래에 탄성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었다. 4천 개의 눈동자를 모으고 2천의 가슴을 두드린 무대의 사나이 김재우. 그 순간 그는 분명 세계적인 슈퍼스타였다. 때로는 누르고 또 눌러 신음이라도 하듯, 때로는 피라도 토하듯 터뜨려 쏟아내는 소리. 몸짓과 손짓만으로도 무대를 휘어잡아가는 원숙미. 이 무대에서 그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 쓸리고 다듬어진 자신의 음악세계를 유감없이 쏟아냈다.
 
2009년 그가 영국국립오페라단(ENO) 주연으로 발탁되었을 때 언론은 그를 주목하며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110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 동양인이 주역을 맡기는 김재우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11회 유엔참전용사 추모평화음악회에 출연한 테너 김재우(오른쪽 2번째)기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롯데콘서트홀, 2     ©크리스찬리뷰
 
그는 영국국립오페라단의 2010년 첫 공연작품 ‘루치아’의 남자주인공역을 맡았다. 특히 이 오페라단은 역사에 걸맞게 오디션 과정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어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지 않고는 외국인, 특히 동양인의 주역 발탁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었다.
 
6년 만에 호주로 돌아온 그는 현재 호주, 유럽, 미국, 영국 등지에서 활발히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서울예고 출신으로 호주 퀸즐랜드음악원과 호주국립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2000년 호주 오페라아리아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호주 국립오페라단을 거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특히 모차르트 오페라 전문의 정상급 가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7년 10월 ‘음악의 본고장’ 유럽무대로 활동을 옮긴 그는 영어 성악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개인지도를 받는 등 치밀한 준비과정을 거쳐 오디션을 통과, 영국을 대표하는 오페라단에 합류하게 됐던 것.
 
그는 호주에서 정상급 성악가로 활동하는 동안 현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적극 참여해 2000년 대한민국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 (계속)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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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30 [11:2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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