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교회
 
서을식/크리스찬리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누가복음 18:16)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습니다. 피부색, 문화, 언어에 하등 관계없이 잘도 놀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인 양 티 없이 맑아 마냥 행복한 표정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덧 조심하는 경계와 욕심내는 계산이 스르르 녹아내려 무장해제됩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거나 즐겁게 뛰노는 모습은 있는 그대로 낙원의 한 장면입니다.
 

천국
 
천국은 어른들의 세상이 아니고 아이들의 세상이리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린아이가 등장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 18:3-4).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8:17).
 
어른이라도 어린아이처럼 되고 낮춰 받아들여야 들어가는 천국이니, 천국에 있는 어른은 분명 어린아이 같을 것이고,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천국 백성입니다.
 
하늘나라와 교회는 영적 공동체라는 특성을 공유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서 ‘어른이 돼라’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풍성(?)한데, ‘어린아이같이 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5월에 그저 한 번 듣고 지나가는 행사라면 참으로 섭섭한 일입니다.
 

교회
 
어린아이를 예수님께서는 긍정적으로, 반면에 바울은 부정적으로 언급합니다. 바울에게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며(에베소서 4:14)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히브리서 5:13)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린도전서 3:1)는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아직 어린 성도들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배려한 표현임이 분명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린도전서 13:11)는 바울 자신의 간증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이라는 대조되는 개념이 이후 여러 교회의 골치 아픈 실생활 현상을 많이 다루게 되면서 미성숙과 성숙이라는 신학적 프레임으로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어린아이의 살같이
 
물론, 예수님께서는 영접 단계에서 필요한 어린아이 같은 겸손을, 바울은 믿음 공동체의 건덕과 사역을 위해 믿음과 생활의 성숙을 도전했다고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에는 자꾸 오늘날의 교회가 웃자란 어른이 되면서 경화 내지는 상실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세먼지처럼 작고 가벼워 인식이 어렵지만, 짙게 널리 퍼져 질식 직전까지 몰아가는 죄와 허물이 가득한 세상에 교회가 산소와 생수를 공급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5월을 맞으면서 개인 믿음, 가족 관계, 교회 문화의 화석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혼탁한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병들어 신음하고 순수함에서 떠나 온전치 못한 교회가 치유 받고 어린아이같이 순전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겨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듯(열왕기하 5:14), 상처 입은 지상의 교회가 어린아이의 살같이 깨끗하게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서을식|버우드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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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30 [17:5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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