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아프다

송영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1/27 [09:47]

교회 때문에 눈물을 흘려보았는가?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곱지 않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 교회들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던 힘든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주일이면 예배당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던 당연한 것이 어려워졌다.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가나안 교인들의 수는 더 늘었다. 2021년 21세기 기독연구소와 몇 기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기독청년 인식조사’ 보고 기사를 보았다.

 

기독청년 20%가 가나안 교인이고 그 숫자는 코로나19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 앞으로 2배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교회를 떠난 그들의 77%가 가족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었다고 했고, 교회를 떠난 이유에 대하여 교회지도자들의 권위적인 태도와 교인들의 형식적인 사랑을 우선으로 꼽았다.

 

사람들은 교회의 위기라고 말한다.

 

아픈 성도, 아픈 교회

 

코로나19가 한참 확산될 때 교회연합으로 ‘평신도를 위한 세미나’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었다.

 

첫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성에 대하여 주님의 마음을 전하였다. 참가자 중에 연세도 좀 있으신 모메님(연세가 있으신 어머니 같은 자매)이 계셨다. 무릎 수술로 다리도 불편하여 비행기를 타고 와서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차 관계로 새벽부터 강의를 들어야 했고 식사도 짬짬이 하셔야 했음에도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세미나 강의를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나누어 주실 때 "교회가 아프다", "성도가 아프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고 눈물을 흘리며 공감을 해주셨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보시고 살리실 때, 눈물을 흘리시며(요 11:35) 주위를 둘러선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하게 여기시고 우신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께서 아픈 교회, 성도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라고 해주셨다.

 

교회가 아프다는 표현에 성령님이 함께 참가한 모두의 마음을 만지셨다. 참여한 여러 분들이 눈물을 훔치는 것이 화면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아플까?

 

주님이 원래 꿈꾸셨던 하나님 나라의 가족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영적 불임 상태로 영혼의 탄생에 대한 안타까움도 없이 성장만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닌가?

 

단지 개인이 구원받고 복받고 주일에 한 번 예배 드리는 것만을 신앙생활의 주 목표로 생각하며 살아온 결과는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픈 교회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주님의 눈물이 느껴진다면 그럴 수 없다. 어찌 보면 아픔 뒤에 사명 있음을 보아야 한다. 병들고 아픈 성도들과 교회를 향한 이 시대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과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회 데이터 연구소’에서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 가?”를 조사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 했다. 그러면서 수개월 동안 코로나19 속에 교회들을 비교 조사한 것을 발표하면서 위기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교회들의 특징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것은 ‘공동체성이 강한 교회’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공동체성의 회복을 통하여 교회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과 운명을 함께 하는 조직체” 라는 뜻이다. 현대 교회가 예배중심, 건물중심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성도들 간의 진정한 삶의 나눔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인들과 같이 나누고 위로받고 해결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술친구를 찾아간다. 교인들을 찾아가면 교과서적인 답만 주거나 욕이나 먹기 일 수기 때문이다.

 

예배드리는 것만 주 관심으로 삼으니 교회 밖에서는 서로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남자들은 주일에 예배만 잘 드리면 굉장히 신앙이 좋은 것으로 여긴다. 직책 중심, 프로그램 중심이라 교회가 커져도 몇 사람만 지칠 정도로 일을 하고 나머지는 구경꾼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의 재생인 비신자 전도가 어렵다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의 탄생하고 자라서 영적의 가정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생명을 얻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은 사라지고 교회성장은 대부분 수평이동이다. 공동체성이 사라진 교회에서 성도들은 여기저기 유리 방황한다.

 

아픔 뒤에 숨겨진 사명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성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가르침에 몰두하면서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사도행전 2: 42-47, 새번역)

 

현대의 교회가 신약교회의 모습에서 많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신약교회의 모습은 집집이 돌아가면서 모이는 가족이 되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생명을 나눈 가족공동체이다.

 

그들의 집은 교회였다. 그들은 집집이 돌아가면 함께 예배했다. 신약교회의 일시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주님도 그 마음에 꿈꾸셨던 교회의 모습은 가족이 되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신약교회처럼 생명을 나누는 가족 공동체성이 회복되면 진정한 나눔과 필요가 채워질 수 있다. 구제부를 통하여 사역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신약교회처럼 서로의 진정한 필요를 나누는 공동체의 모습이 회복될 것이다.

 

신약교회처럼 공동체성이 회복되면 자기 노출을 할 수 있으므로 진정한 치유와 회복도 가능하다. 많은 분들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산다.

 

크리스찬의 1/3이 결손가정이라고 한다. 사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상처가 있고, 받지 못한 사랑의 목마름이 있다. 치유가 일어나려면 자기를 노출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으면 된다.

 

신약교회처럼 공동체성이 회복되면 비신자 전도가 가능해진다. 기존의 성도들은 설교가 좋아서 자신들을 만족케 해줄 프로그램이 좋아서 모이지만 믿음 밖의 비신자들은 따듯한 분위기에 끌린다.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주님의 마음속에 꿈꾸던 교회를 꿈꾸고 싶다.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데 그러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시절 신앙생활을 생각해보면 교회가 놀이터였고, 삶이었다. 아끼지 않는 사랑과 헌신으로 인한 추억이 가득하다. 너무 그 시절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많다.

 

아픔 뒤에는 사명이 숨겨져 있다. 교회와 성도의 아픔이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주님의 부르심으로 들려지기를 고대한다.〠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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