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문은 왜 진주일까?

송영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2/28 [11:50]
©Alex Turcu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같이 할 일이 쏟아진다. 돈도 벌고, 자녀도 교육하고, 자동차도 고쳐야 하고, 집도 사야 하고 …바쁜 일상, 이렇게 살다 보니 머리 속에는 온통 이 세상과 그 속에서의 삶만 가득해진다. 우리는 이곳이 영원히 누릴 나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국을 묵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우리가 앞으로 누리게 될 영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성경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냥 막연하게 천국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고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음이 감사하다.

 

요한이 본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 성, 이것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 나라의 마스터 플랜이자 완성될 교회의 모습이다. 이 거룩한 성은 그 영광의 광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각 종 보석으로 표현한다.

 

지금은 성경을 통하여 천국의 모습을 그려보지만 그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천 배 만 배 좋을 것이다. 너무 좋아서 우리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 천국을 못 들어간다면 아무리 이 땅에서 누리고 살았다고 해도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열두 진주 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두 진주로 되어 있다. 새 예루살렘성의 진주 문은 천국의 랜드마크 같은 느낌이다. 진주 문은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3개씩 12개가 있다.

 

“또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그 대문들이 각각 진주 한 개로 되어 있었습니다…” (계 21:21)

 

왜 천국 문은 12개일까? ‘12’는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완전수이다. 모두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보인다. 하나님은 구원할 택한 자들의 수가 완전히 찰 때까지, 천국 문을 열어놓으실 것이다.

 

예수님은, “동서남북에 사는 세상 모든 민족들이 천국 문으로 들어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럼 구원받을 의인들의 수가 과연 몇 명일까? 인침 받은 자들이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 대로라면 수많은 무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냥 들어가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눅 13:23-24)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힘을 다해 사탄의 유혹, 시험과 싸워 이기지 않으면 천국 문 안으로 못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씀한 것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지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이다. 나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왜 천국의 문은 진주로 되어 있을까?

 

진주가 사람들에게는 보화일지 모르지만 진주 조개 자신에게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몸 안에 박힌 의미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돌조각 같은 것이다. 연한 조개의 몸 안에 그냥 놔두면 이물질로 인해 썩어서 죽는다.

 

그래서 연한 조개는 몸 안에 들어온 이물질 때문에 몸부림 친다. 그런데 박혀서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몸부림 치고 애를 써도. 이물질은 나오지 않는다. 조개는 끈쩍끈적한 진액를 뿜어 낸다. 고통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육체의 가시 같은 돌조각을 매 순간마다 감싸면서 하루가 가고,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면서 어느덧 그 돌은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게 진주다.

 

성도의 삶이란 진주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이 땅에 진짜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려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주님 뜻대로 살려면 , 주님의 원하는 복음을 전하려면 … 어느 누가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좁은 길을 가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성도의 삶이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눈물을 본다. 형제도 자녀도 모르는 눈물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진통과 고통이 있었다. 내가 왜 이 길을 가야 하는가? 몸부림쳐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될까? 저렇게 하면 될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이유만이라도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그 이유마저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진주는 조개가 죽을 힘을 다해서 이물질과 싸워 이긴 아름다운 증거물이다. 흔적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한 흔적이다. 죄와 싸운 흔적… 성도의 삶은 진주조개 같은 삶이다. 성도는 천국 문 앞에서 하나님께 보여줄 진주 같은 삶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살아온 흔적들

 

천국의 진주 문을 통과하면 수정같이 순금으로 된 넓은 길이 펼쳐진다. 그 도시의 순금길 한 가운데는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열두 종류의 나무 열매를 맺는다.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모든 민족이 이 문을 통과하여 들어와 보좌 앞에 설 것이다. 모든 민족에서 구원받은 이들이 영광과 명예를 가지고 그 도성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흔적을 가지고 그 분 앞에 설 것이다. (계 21:23-34)

 

한참을 묵상했다, 영광과 명예가 뭘까? 성령께서 조명해 주셨다. “네가 살아간 흔적이란다.” 눈물이 핑 돌았다. 좁은 문, 그리고 좁은 길 그길 끝에서 주님의 위로가 있을 것이다. 그가 빛 가운데 걸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성도의 영광과 명예를 가지고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사람들의 삶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영광은 주님 뜻대로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이다. 명예는 주님의 자녀, 제자로 살아가며 받은 흔적이다

 

이 땅에 삶에는 수없이 많은 상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처로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성도는 상처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통하는 성도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무슨 흔적을 남기기 원하는가? 성도의 삶은 상처가 되어 썩어지면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 흔적이 되어야 한다. 바울도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 6:17)

 

진주조개 같은 삶의 흔적, 그런 흔적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자랑스러운 영광이며 명예이다.〠

 

송영민|시드니수정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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